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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Nov 03. 2020

베이스 라인이 귀에 쩍쩍 달라붙는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들린다.


어제는 다니엘 기도회 2일 차였다. 다니엘 기도회는 매년 11월 1일부터 21일 동안 매일 저녁 8시에 한다. 뜨거운 찬양으로 시작하여 마음의 문을 열고, 목사님 선교사님 또는 성도님들의 설교와 간증을 듣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진다. 이름은 기도회이지만, 기도보다는 말씀이나 간증을 듣는 시간이 중심을 차지하는, 일종의 부흥회이다. 오륜교회에서 LIVE 실황을 송출하면, 전국의 참여교회나 가정에서 함께 참여하는, 초교파 연합기도회이다. 올해는 코로나 사태로, 오륜교회나 전국의 참여교회에서, 대면보다는 비대면, 직접 교회에 나와 대면으로 참여를 하더라도 거리두기와 마스크 쓰기와 손 소독 등 방역수칙을 철저히 준수하면 참여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말씀을 듣기 전에 뜨거운 찬양으로 마음을 열고 시작한다. 21 동안 매일매일 찬양을 인도하는 찬양팀이 다르다. 전국에서 잘하기로 소문난 찬양단이 참여하는 것 같다. 어제는 서울 드림교회의 드림 워십이 찬양을 인도하였다. 





작가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글을 풀어 간다. 나는 글의 중심 내용을 서두에서 다루면서 시작하지 않는다. 서두부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두괄식이 가장 좋다고 한다. 일반 독자들은 참을성 있게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줄 마음이 없기 때문에, 처음부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라는 말이다. 디지털 세계에서의 글쓰기는 더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나는 그렇게 글을 쓰지 않고 있다. 내 글쓰기 스타일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이기도 하다. 주제가 뒤에 있는 미괄식도, 앞에 있는 두괄식도, 앞과 뒤에 있는 양괄식도 아니다. 나는 주제와 중심 내용을 글의 맨 앞에 두지 않고, 주제와 직접적 관계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썰을 풀어 판을 깔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글쓰기 과정에서 가장 어렵고 고민이 되는 것 중에 하나가, 글의 첫 문장과 문단을 어떻게 시작하느냐 이다. 나는 초장부터 본론과 중심 주제로 바로 들어가기보다, 본론과 중심 주제로 들어가는 판을 까는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가장 적절한 이야기보다는 지금 내 머릿속에 바로 떠오르는 이야기로부터 글을 풀어 간다. 어차피 나는 지금의 나의 글쓰기 능력을 넘어가는 이야기는 쓸 수 없으니, 내가 풀어갈 수 있는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다.


내 글쓰기 방식은 미괄식도, 두괄식도, 양괄식도, 두서가 없는 방식도 아니다. 내가 지금 풀어갈 수 있는 내 안에 떠오르는 하나의 이야기로 판을 깔고 시작한다. 하나의 판이 깔리면, 주제로 바로 들어갈 수도 있지만, 주제로 들어가는 다른 하나의 판으로 넘어가면서 주제로 들어가는 방식을 가장 많이 쓴다. 하나의 판을 깔고 그 판을 통해 바로 주제로 들어가거나, 초장에 주제로 바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으나, 하나의 판을 깔고 그와 연결이 되는 다른 판을 깐 후에 이를 통하여 주제로 들어가기도 한다. 주제로 들어가기 전까지 판을 까는데, 하나의 판일 수도 있고, 두 개의 판일 수도 있고, 여러 개의 판일 수도 있다. 다만, 각각의 판마다 스토리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독자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야 하며, 재미가 있어야 한다. 나는 주제의 힘으로서 독자들에게 재미를 주고 흥미를 끄는 작가는 아니다. 하나의 글은 다수의 이야기들과 그 이야기들을 담는 문단으로 구성이 되는데, 각각의 이야기와 문단들이 재미있으면 된다. 


다니엘 기도회를 설명하기 위해서, 다니엘 기도회 이야기로 이 글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서울 드림교회의 드림 워십 그 자체를 설명하기 위해서, 그 이야기를 꺼낸 것도 아니다. 오늘의 글의 주제 본론으로 들어가기 위한 판으로서의 문장과 문단 이야기로서, 그 이야기들을 하면서 시작한 것이다. 나는 주제 하나의 집중하는 스타일보다는, 이야기 썰을 풀어가는 스타일의 작가인데, 그렇다고 하여 주제와 전혀 상관없는 썰을 풀어가는 스타일 또한 아니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주제로 들어가는 판이 되는 썰들을 깔아가며 이야기를 진행한다. 작가로서의 나의 고유한 스타일이기도 하고, 내 능력의 한계 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나만의 글쓰기 공식이기도 하다.





어제 다니엘 기도회 2일 차에서는 서울 드림교회의 드림 워십의 찬양인도로 시작하였다. 전반적으로 프로 수준의 밴드였다. 작은 교회에서 베이스 반주를 하는 나로서는, 주변에서는 잘한다고 음악적 재능이 있다고 하지만 가라로 치기도 하는데, 대형교회 찬양단 세션들은 프로 세션 급이기도 하다. 교회 성도 안에 그러한 재원을 가진 인적 재원이 많기도 하고, 실용음악을 전공하거나 필드에서 뮤지션으로 일하는 세션맨들을 페이를 주고 쓰기도 하다. 단지 페이만을 주고 데려오는 것은 아니고, 찬양사역이기 때문에 사역에 대한 미션 소명을 심어 주고 세션맨들을 컨택 하지만, 대형교회에서는 찬양단 세션맨들을 페이를 주고 쓰기도 한다. 예배가 쇼가 되어 간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기가 막힌 연주와  함께 찬양을 하면서 예배를 시작하면 성도들의 마음이 사르르 녹아서,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어진다. 쇼를 하려고 쇼를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판을 옥토 밭으로 만들기 위해 쇼를 하기도 한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때로는 쇼가 필요하다. 거짓 쇼가 아니라, 리얼리티 쇼가 필요하다.


서울 드림교회는 처음 들어보는 교회인데, 서울 드림교회 드림 워십의 찬양단 세션은 기가 막혔다. 전반적으로 모든 악기의 세션맨들이 기가 막혔다. 프로급의 연주자들이나 뮤지션들을 모았을 수도 있다. 여기서 프로급의 연주자들과 뮤지션이란, TV에 나오는 유명한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실용음악 전공을 하거나 독학을 해서 실용음악 필드에서 경제생활을 하거나, 어떠한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KPOP이 아닌 크리스천 뮤직 CCM 필드에서라도 말이다. 


드림 워십의 밴드 세션 가운데서도, 베이스 라인이 내 귀에 들어왔다. 아는 게 보인다고, 내가 관심사들이 눈에 보이는 것이다. 한창 국비지원으로 출판 편집디자인 과정을 공부할 때는, 어디를 가나 디자인 요소가 눈에 보였고, 어디를 가나 길거리에 간판에 쓰여 있는 폰트가 고딕체인지 명조체인지 손글씨체인지 그런 것이 보였다. 교회에서 베이스 기타를 치는지라, 내가 가장 잘하는 나의 메인 악기가 베이스 기타인지라, 베이스 연주자의 베이스 라인만 내 귀에 들렸다. 기가 막히게 잘 쳤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빠, 저 악기는 키보드예요?"


아내는 오래도록 피아노를 배우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교회 사모님으로부터 재능기부로 그토록 배우고 싶었던 피아노를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아내 에미마에게는, 밴드 세션 가운데 키보드가 눈에 들어오나 보다. 스크린으로 다니엘 기도회 YouTube 라이브 영상을 함께 보면서, 아내가 옆에서 나에게 물어보는 말이다.


"아마도... 키보드일 걸... 왜, 키보드 배우고 싶어?"


"아니요."


아내는 키보드가 아닌 오직 피아노에게만 관심이 있는 것 같다. 키보드나 피아노나 치는 방식은 똑같을 텐데 말이다. 피아노를 열심히 배우고 있는 지금의 에미마에 눈에는 키보드가 들어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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