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다함 Dec 17. 2022

집세권에 메가커피가 들어왔다


우리 동네에 메가커피가 들어왔다.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곳에 이미 메가커피의가 두세 군데 들어와 있었지만, 츄리닝 입고 슬리퍼 끌고 다니는 그야말로 우리 동네 집세권에, 아메리카노가 1500원부터 시작하는 메가커피가 들어왔다.


나는 주로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아내 에미마는 주로 카페라떼를 마신다. 스타벅스를 자주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맛이 괜찮은데, 아내 에미마는 스타벅스 라떼 맛이 별로다. 메가커피 라떼 맛이 아내 에미마 입맛에 맞으면 나랑 아내랑 아들 요한이랑 우리 세 식구 아지트가 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카페에 가면 별 일이 없는 한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아메리카노가 제일 저렴해서만은 아니다. 딱히 이유가 있어서라기 보다 그냥 그래 왔기에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것이기도 하는데, 짐작 가는 이유가 하나 있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처음으로 커피를 마셨다. 어머니께서 일찍 커피를 마시면 머리 나빠진다고 성인이 된 다음에 마시라고 하셨다. 어머니 말씀을 잘 들었다기보다, 하지 말라는 것 굳이 하지 않고, 하라는 것 굳이 하지 않지 않았다. 청소년 시기까지는 그랬다. 나의 세계의 질서에 순응했다기보다, 굳이 나의 세계의 질서를 들이받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어머니께서 원하셨던 것처럼 노래도 '세상 노래'가 아닌 동요와 찬송가만 불렀다. '세상 노래'에 알레르기를 일으켰던 것은 아니고, 내가 태어나고 자란 세계 밖을 벗어나지 않았을 뿐이었다.


우리 집 사람들이 술을 마셨다면 체질적으로 말술을 마셨을 텐데, 우리 집 사람들은 종교적 이유로 술을 마시지 않는다. 술을 마시지 않는 게 우리 집의 종교적 신념이라기보다, 우리 집의 종교가 술과 멀었다. 술을 아버지에게 배운 사람처럼, 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 어머니께서 타 준 커피로 커피를 시작했다. 요즘에도 그렇게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커피와 프림과 설탕 각각의 통에서 몇 스푼씩 떠서 적당한 비율로 배합하여 집에서 직접 조제해서 마셨다. 지금이야 그런 장르의 커피가 땡길 때는 믹스커피를 마시지만 말이다.


나는 첫 커피를 프림도 설탕도 섞지 않은 블랙커피를 마셨다. 건강을 위해서도, 커피 맛을 알아서도 아니었다. 그냥 그게 나의 것 멋이었다. 왠지 커피는 써야 할 것 같았다. 블랙커피로 커피를 시작한 나는 계속 블랙을 마셨고, 커피의 시대와 장르의 변화에 따라 블랙커피는 아메리카노가 되었다.


올해 가을에 아내 에미마랑 아들 요한이랑 충주의 넓은 잔디 마당을 가진 멋진 카페에 갔다. 그 카페에 시그니처 메뉴는 팜슈가라떼와 차가라떼였다. 아내 에미마는 뭘 마실까 고뇌하다가 차가라떼를 주문했고, 옆에 생각 없이 서 있던 나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아내가 차가라떼를 선택했으니, 나는 다른 시그니처 메뉴인 팜슈가라떼를 골라, 아내랑 같이 마시면 되는데 말이다. 거기까지 가서 나는 아메리카노를 마신 멋없는 사람이었다.


메가커피가 집세권에 들어왔다. 싸고, 양 많고, 맛도 나쁘지 않은, 가성비의 카페가, 우리 동네로 들어왔다. 메가커피 라떼가 아내 에미마의 입맛에 맞으면, 아마도 나랑 아내 에미마랑 아들 요한이 셋의 주말 아지트가 될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열은 내렸지만 평소처럼 건강해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