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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Nov 13. 2020

11월 11일 빼빼로데이

네팔 아내 에미마도 빼빼로데이를 안다.

11월 11일 빼빼로데이 날이었다. 전날 아내 에미마에게 빼빼로데이가 무슨 날인지 설명해 주었다. 내 설명이 아니더라도, 아내는 틱톡에서 한국의 남편들이 아내에게 빼빼로데이 이벤트를 해 주는 것을 보았다.


그동안 피로가 누적되어 있었기도 하였고, 최근에 우울증 모드여서, 아침에 늦게 일어나고,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대신에, 드라마나 영화를 틀어 놓고 스크린에 중독되어 있다.


21살 때부터 조울증인 나는 조증과 우울증이 왔다 갔다 하는데, 특별히 치료가 필요할 정도가 아니더라도, 기분이 좋을 때랑 기분이 좋지 않을 때와 차이가 있다. 기분이 좋을 때는 아침 7시에 일어나서 밤 10시까지 글을 쓴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늘어지게 자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기보다는, 드라마를 몰아서 본다.


아내 에미마도 그런 나의 상황을 이해하지만, 빼빼로데이 때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이벤트를 해 주지 않아서 입이 퉁퉁 불어 있었던 것 같다. 네팔 문화가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내가 네팔에서 아내와 신혼생활을 보낼 때, 네팔에서는 21일 날 가족의 생일이면 21일 자정 0시가 될 때까지 안 자고 기다렸다가, 21일 0시가 되는 순간 축하를 해 주는 문화가 있는 것 같다. 네팔의 문화가 그런지, 아내의 문화가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컨디션이 좋을 때는 아내가 말하지 않아도 아내가 원하는 것 같으면 내가 알아서 청소도 해 주어 아내 기분도 좋게 만들고 그러는데, 최근의 나는 완전히 물에 젖은 수건 같다. 기분이 좋지 않은 아내가 청소를 하니, 억지로 소극적으로 퉁퉁거리면서 아내의 일을 도와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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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빼로 사 올까? 빼빼로 사 온다."


아내가 아무 대답이 없다. 아내의 스마트폰에서 아내의 카드를 꺼내었다. 최근에는 내 통장으로 돈이 수입이 입금되면 모두 아내에게 보내준다. 한동안 공부하는 동안 따로 다닐 때는, 일단 아내에 통장에 다 넣어 주고, 필요하면 다시 받아서 썼다. 요즈음에는 같이 다니니까, 필요할 때는 아내의 카드를 받아서 쓴다.


마트의 빼빼로 선물세트 가운데, 빼빼로가 3개 들어 있는 세트를 샀다. 선물세트 뒤에 편지처럼 되어 있어서, 간단한 메시지를 쓸 수 있었다. 아내에게 간단한 편지를 썼다. 아내가 뒤늦은 빼빼로 선물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아니면 내가 쓴 작은 편지 메모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다시 웃었다.


아내가 갑자기 씻으라고 한다. 면도도 하라고 한다. 그러더니 쓰레기 버리러 가자고 한다. 쓰레기 버리는데 나 혼자 보내면 되는데, 교회에 가서 피아노 연습을 할 가방까지 준비한다.

나는 빼빼로데이 이벤트로 아내에게, 빼빼로 세 개들이 선물세트 한 상자 사주었고, 아내는 후라이드 치킨을 사 주었다. 며칠 전부터 내가 치킨 치킨 노래 불렀던 것을 에미마는 기억하고 있었다.


"에미마, 후라이드 치킨 먹고 싶지?" 하고 난데없이 아내에게 물어보는 게 내가 아내 앞에서 치킨 노래 부르는 방식이다.


나는 내 생일도 잊어버릴 때도 있었는데, 아내는 작은 기념일에 작고 소박하게라도 챙겨주고 기념해주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아내의 고국 네팔을 힌두 문화여서 크고 작은 축제들이 네팔에는 많은 것 같다. 크리스천이 된 아내는 힌두교도처럼은 아니지만, 작은 기념일이라도 소소하게 기념하고 그런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빼빼로데이 날 교촌치킨에 갈 수 있었던 것은, 이번 달 허리띠를 졸라 매고 살아서 통장 잔고가 여유가 있어서 그랬기도 하다. 싼 동네 카페 마실 다니는 것도 안 가고 아꼈더니, 이번 달은 여유가 좀 있다.


이번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당선이 되어 작가로서의 길이 열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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