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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Jun 23. 2023

어쩌다 보니 계획보다 일찍 직업으로서의 작가가 되었다


2023년 6월 13일이었다. 벌써 지난주 화요일이다. 퇴근 즈음 나는 내일 당장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수원고용센터에 찾아가 집 근처 아무거나 내가 할 수 있는 적당한 일을 찾기로 했다. 내가 모든 일이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나, 내가 할 만한 일들은 있겠다 싶었다.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다. 세상에 다른 일은 다 해도 이 일은 못하겠다 싶은 상태가 된 지가 하루 이틀은 아니었다. 거의 2년 반을 일했는데 처음부터 그랬을런지도 모른다.


동생 회사를 다녔다. 동생은 선한 의도로 나를 위하여 나를 회사로 불렀다. 다만, 내가 회사랑 안 맞았을 뿐이다. 내가 잘하는 부분은 분명 있지만, 내가 아무 일이나 잘하는 사람은 아니다. 또 남들 보기에 내가 잘해도, 내가 그 일을 견디기 어려운 일도 있다.


누구나 그렇지 그런 것만은 아니다. 스무 살 때 조울증에 걸려 거의 이십 년 동안 조울증으로 방황하며 나는 정신적으로 쇄약해 졌다. 약을 꾸준히 먹으며, 아내와 아들과 행복하게 살며, 조울증을 극복했지만, 내가 보통 사람들보다는 스트레스에 취약하다. 작은 일에 스트레스를 잘 받는 것은 아니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스트레스 강도의 임계점이 낮다.


퇴근하며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께서는 아내 에미마랑 상의해서 하라고 했다. 퇴근 후 에미마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일단 회사에 다니면서 앱으로 구직활동을 해서 일자리가 생기면 그만두라고 했다. 아내 에미마의 말이 사려 깊고 일리가 있는데, 내가 오늘 당장 사직서를 내고 내일 당장 다른 일 알아보겠다고 말하는 것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나도 모르는 사이에 훌쩍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수원에서 내가 할 만한 아무 일이나 찾아서 하겠다는 마음이었지만 사실 그것도 미지수였다. 일단 취직이 되면, 내가 모든 일을 잘할 수는 없지만, 내가 할 만한 일들 중 아무거나 잘할 자신이 있지만, 취직이 되는 자체가 쉽지 않다. 그래서 다음 날 다시 회사에 출근했다.


그런 상태에서 출근하니 같은 일도 평소보다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런데다 업무 하나가 평소보다 난이도가 높았다. 그런데다 안 하던 업무 하나가 생겼다. 사업장 환풍기 먼지를 청소하는 일이었다. 밖에 보이는 것만 청소하면 되었는지도 모르는데, 내가 잘못 이해했는지 환풍기를 뜯어서 청소하느라 2시간 가까이 걸렸다.


그날이 2023년 6월 14일 수요일이었다. 퇴근 즈음 나는 지금 이 일뿐 아니라 다른 모든 일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책 읽고 글 쓰고 유튜브 하고 강연 다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내 계획은 올 하반기에 책을 내서, 내년부터는 모든 일을 정리하고 전업작가로 살 생각이었다. 동생 회사를 올해 말까지 다니며 마지막 회사로 남기느냐, 아니면 동생 회사를 그만두고 올해 말까지 다닐 다른 회사를 알아볼까 둘 중 하나였다. 2023년 6월 13일까지는 그랬다. 6월 14일이 되고 퇴근 즈음이 되니, 이제는 내가 다른 모든 일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 6시에 퇴근했는데 그날이 데드라인인 서평 하나가 있었다. 책 한 권 받고 리뷰 하나 쓰는 서평단이 아니라, 출판사에서 한 달에 두 권씩 두 달 총 네 권의 책을 제공받고 서평을 올리는 서포터즈 활동에 당첨되었다. 서평 하나를 써서 한 개의 블로그, 두 개의 카페, 두 개의 SNS, 세 개의 인터넷 서점에 올리는 활동이다. 그날 새벽 일찍 일어나 서평은 썼는데, 하나의 서평을 여러 군데 올리고 그 기록을 남기는 것도 일이다. 경험이 있으면 간단히 할 수 있는 일을, 처음 하는 일이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6시에 퇴근하고 카페에 가서 그 일을 마치니 7시가 되었다. 아내 에미마에게 전화가 왔는데 서평 작업을 하다가 못 받았다. 서평 작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며 아내에게 전화하는 게 원래 계획이었다.


7시 집에 돌아가려는데 블루투스 이어폰이 잊어버렸다. 잃어버리고 며칠 전 다시 산 블루투스 이어폰이었다. 잘 잃어버리지만 나에게는 블루투스 이어폰이 나의 귀를 심심하지 않게 하는 소중한 도구였기 때문에, 2만 원 대의 가성비 블루스트 이어폰을 썼다. 며칠 전 샀는데 또 잊어버렸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잊어버렸을 뿐이었다.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부산에 가기로 했다. 신촌에서 폰을 껐다. 수서역에 가서 SRT를 타고 부산역에 가서, 전철을 타고 해운대에 갔다. 생각이 정리가 되면 폰을 켜고 집으로 가겠다고 생각했다. 토요일 정도 되어야 내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약을 먹지 못해 잠이 오지 않아 밤을 꼬박 새우며 생각을 하니 다음날 오전 10시 즈음 생각이 정돈이 되었다. 폰을 켜서 아내 에미마에게 카톡으로 사진과 메시지를 보냈다.


부산역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수원역에 도착하니 6월 15일 목요일 저녁 6시였다. 수원역에서 아내 에미마와 어머니와 요한이랑 저녁을 먹었다. 집으로 돌아가 약을 먹고 못 잔 잠을 몰아 잤다. 저녁 8시에 한 시간 자고 일어나 9시에 아들 요한이를 재우며 잠에 들었는데, 일어나 보니 6월 16일 금요일 정오였다.



우리 동네 도서관에서 책 읽고 책 쓰기로 했다. 네버엔딩으로 계속 책을 쓰면서 공모전에 응모하고 출판사에 투고하다 보면 책이 돈이 되는 순간이 올 것이라 믿는다. 책 써서 돈 버는 작가가 되었을 때 책 읽고 책 쓰는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책 읽고 책 쓰는 삶을 살면 때가 되면 돈이 따라오겠지 하고 믿는다. 어머니에게 6개월의 기간을 약속했다. 일단 6개월 전념으로 책을 써 보기로.


어머니랑 약속한 6개월의 기간은 책으로 돈을 버는 것은 아니다. 내가 다른 회사원들이 회사 일을 하듯이 글을 쓸 수 있는지 체크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평생 글을 쓰며 살 수 있는지 체크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글 쓴다면서 놀 수도 있기 때문이다. 놀아야 글이 되지만 글과 상관없는 소모적인 노는 삶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6월 19일 월요일부터 도시락을 싸 가지고 아침 9시 즈음 도서관으로 출근해 저녁 6시 즈음 퇴근하고 있다. 물론, 이번 주에는 글을 쓰지는 못했다. 회사 인수인계를 해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파일을 클라우드에 정리하여 올리고 회사에 공유하는데 4일이 걸렸다. 회사에 나가지 않은 지난주 목요일부터 무급휴가 처리하고, 6월 23일 오늘 날짜로 퇴사하는 것으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조증으로 뜬 것도 아니고, 나의 기분은 평상을 유지했고, 나의 생각의 양과 속도는 평소보다 많지도 적지도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고 보통이었다. 다만, 스마트폰을 끄고 스마트폰을 다시 켠 15시간 사이에 조울증 원 사이클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일어났다. 그 정도가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벗어나지 않았을 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다음날 병원에 갔는데 아직 재발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렇게 가면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주치의의 소견이었다. 약 안 먹고 잠 안 자면 재발로 가는 것이다. 나의 상태는 보통 사람들의 보통 초조 불안 그 정도였다.



일단 대외적으로 공식적으로는 조울증 재발 방지를 위해 6개월 동안 쉬는 것으로 했다. 물론 나는 이제부터 나의 일을 한다. 내가 살아가면서 할 수 있는 내가 행복하고 세상에 의미가 될 수 일은 글 쓰는 일이라고 나는 믿는다.


일단은 회사를 다니며 썼던 업세이들은 발행을 취소하거나 보이지 않게 내렸다. 저 밑에 무의식처럼 그동안 내가 쌓아 온 글들 중 저 밑에 남아 있는 줄 모르지만, 일단 내 눈에 보이는 선 상에서는 다 내렸다. 나는 회사 이야기를 한 것이고, 회사에서의 인간관계로 회사 대표 이야기를 한 것이지, 내 동생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다. 내가 그 회사에 다니는 시점에서 노동자로서 회사 사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불만이 있었던 것이지 회사랑 관계가 끊어진 지금은 아무 불만 없다. 좋은 회사로 기억한다. 그리고 회사 불만을 적은 에피소드가 있다면, 내부고발 목적으로 쓴 것이 아니라, 글 쓰는 사람으로서 회사에서의 어려움을 쓴 최근 트렌드인 '좋소기업' 장르를 쓴 것이다. 그런 글 중에서도 회사의 부정적인 부분보다 긍정적인 부분을 먼저 이야기했고 더 많이 이야기했다. 읽는 독자에게는 부정적인 이야기가 더 많이 인식이 되겠지만 말이다. 회사와 회사 대표는 이제 나와 아무 관계가 없고, 동생은 나에게 여전히 좋은 동생이고, 전 회사 대표는 내 동생이기 때문에, 일단 회사 관련 일은 내 눈에 보이는 선상에서 나 내렸다. 회사원으로서의 애로사항에 대해서 언젠가 에세이나 소설로서 쓸 수 있는데, 이제는 내 위치와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시선으로 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직 퇴사 처리가 된 것은 아니다. 인수인계 자료와 퇴직원을 넘겼다. 인수인계를 마무리 짓기 위해 최종적으로 회사에 가야 하는지는 기다리고 있다. 회사 일은 어제 일로 다 끝났다. 우리 동네 도서관에서, 이렇게 인수인계를 하고 퇴사 마무리를 하면서, 이번 주는 갔다.


아직 글이 책이 되고 돈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글 쓰는 직업으로서의 전업작가가 되었다. 직업과 전업의 기준이 돈은 아니다. 직업인과 전업인 중 마이너스 인생도 허다하다. 도시락을 싸 들고 아침 9시에 도서관에 출근해 글 쓰다 저녁 6에 퇴근하는 삶이 되었으니, 이제 직업으로서의 작가라고, 전업작가라고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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