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23일 금요일 날짜로 퇴사했다. 회사를 안 나간 것은 6월 15일부터였다. 그 이후로는 병가 내고 우리 동네 도서관에 나가 노트북으로 내가 하던 업무 인수인계 작업을 했다. 내가 전 회사에서 맡은 일이 이 일 저 일 다하는 일이었고, 그때 그때 해야 할 일을 처리하는 일이다 보니, 업무 파일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았다. 클라우드에 파일을 정리해서 전 회사에 공유하고 사직서를 제출하는데 일주일이 걸렸다.
나는 이제 우리 동네 도서관에서 책 읽고 생각하고 글 쓰는 작가가 되었다. 아직 글이 돈이 되는 것은 아니나, 전업으로 글을 쓰니 이제부터 나는 직업으로서의 작가다.
나의 원래 계획보다 6개월 빨랐다. Plan A와 Plan B가 있었다. Plan A는 다니던 회사를 올해 말까지 다니는 것이다. Plan B는 다니던 회사를 당장 그만두고 집 근처 내가 할만한 일이라면 아무거나 당장 찾아 올해 말까지 하는 것이다. 올해 안에 회사 다니며 글 써서 돈 버는 수익구조를 만드는 것이 원래 플랜이었다. 그런데, 정신적으로 내가 벼랑 끝에 몰렸다. 조울증이 재발한 것까지는 아니고, 이렇게 가다가는 재발할 수도 있는 상황이 되었다. 글 써서 돈 버는 수익구조를 만들어 놓고 퇴사를 한 게 아니라, 일단 퇴사해서 글만 쓰며 사는 직업으로서의 작가가 되는 운명을 선택했다.
어머니와 아내 앞에서 일단 6개월 글만 써 보기로 했다. 6개월 써서 돈이 안 되면 다시 일자리를 알아보겠다는 타협은 아니었다. 6개월 간 beta 작가 생활을 하기로 한 것은, 일단 내가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글을 써서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테스트하기로 했다. 지금처럼 계속 전업작가로 살지는 그때 가서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나는 다시 돌아갈 생각이 1도 없다. 하지만, 나는 놀지 않고 글을 일처럼 쓰는 것 자체도 중요하지만, 최대한 빨리 책을 내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던가 다작을 하여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
지난주 금요일 퇴사를 했으니, 작가로서 이번 주 월요일 오늘이 첫 출근 날이다. 우리 동네 도서관은 매주 월요일 휴무라, 매주 금요일 휴무인 옆 동네 도서관으로 출근했다.
월 200만 원이 안 들어온다는 것을 빼고는 모든 것이 좋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내가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는다. 누구 밑에 있지도 누구 위에 있지도 않다. 어떤 날은 도시락을 싸 가지고 도서관에 출근하는 길에 아내 에미마 대신 아들 요한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줄 수 있다. 회사 다닐 때는 아침 7시에 회사에 출근하여 밤 8시에 집에 들어왔었는데, 지금은 밤 9시에 아들 요한이 재울 때 같이 자서 새벽 5시에 일어나 집 앞 공원 산책을 한다. 여유가 생기니 아내 에미마와 아들 요한이를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밤 8시 교회 성경 읽기 줌 모임에도 들어간다.
월 200만 원이 주는 자유를 빼앗긴 대신, 내 삶의 주인이 내가 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아내와 주말에 아들 요한이 데리고 스타벅스에 가고 롯데몰에 갈 자유를 잃은 대신, 나 혼자 있을 시간과 아내 에미마와 아들 요한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의 자유를 얻었다.
소비를 극단적으로 줄였다. 소비를 최소화한다기보다, 소비를 안 한다. 아들 요한이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과 엉덩이를 감싸는 기저귀만 전처럼 구매한다. 회사에 안 가니 동네를 벗어날 이유도 없고, 차를 운행할 일도 없으니 기름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배고프지는 않다. 최소한의 식자재로 집에서 해 먹는다. 외식도 안 한다. 소비로부터 자유를 얻었지만, 소비가 주는 자유를 잃었다. 그 자유를 되찾기 위해, 나는 다른 회사를 알아보는 대신, 최소한의 기간 안에 작가로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본다. 지금까지 여러 채널에서 써 왔던 글을 모아 퇴고해서, 공모전에 응모하고 출판사에 투고해 보려고 한다.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돈 빼고는 모든 것이 지옥에서 천국으로 바뀐 잘한 선택이었다. 물론 나도 지금 이 선택을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상황이 그렇게 되어 6개월 일찍 아무 대책 없이 글만 쓰게 되었다.
나의 전략은 계속 글을 쓰는 것이다. 한 권 두 권 세 권 네버엔딩으로 계속 책을 써서 출판사에 투고하거나 공모전에 응모하여 출판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다. 수학계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가 모교인 서울대에서의 강연에서 근거 있는 자신감은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지만 근거 없는 자신감은 유연성을 길러준다고 했다. 근거 있는 자신감이라면 불가능해 보이는 난제에 부딪혔을 때 절망할 수 있지만, 근거 없는 자신감은 불가능한 상태에서도 불가능을 넘어 Go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근거 없는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