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다함 Jun 29. 2023

오늘은 삶의 자유로, 내일은 경제적 자유로


새벽 5시가 되면 눈이 떠진다. 일찍 동이 터 오는 해가 긴 계절이다. 밤 9시가 되면 내가 아들 요한이를 재우는데, 퇴사 이후에는 나도 그 시간에 같이 자서 일찍 일어난다. 그때 박차고 일어나지 못하면 다시 잠에 들어 7시에 하루를 시작한다. 그 시간에도 박차고 일어나지 못하면 9시에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도 새벽 5시에 집 앞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이런 삶이 퇴사 후 나의 일상이 되었다. 사실 회사를 다니면서도, 9시에 요한이 재우며 같이 자면 5시에 눈이 떠져, 산책을 하고 회사에 갈 수 있었다. 산책을 하고 집에 들어오는 아침 7시가 회사에 다닐 때 내가 일어나서 출근하는 시간이니 말이다. 그런데 회사에 다닐 때는 요한이를 재우며 같이 잠에 들 여유가 없었다. 요한이를 재운 후 작은 방에서 늦게까지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하거나 글을 썼다. 새벽 5시 동이 터 오를 때 소변이 마렵기도 해서 잠깐 눈을 떠도 피곤해서 다시 잠에 들어 7시에 겨우 일어나 출근을 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는데, 산책을 나서며 우산을 가져 나오지 못했는데, 다행히 오늘 그 새벽 시간 때에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았다. 집 앞 호수공원을 지나서 옛 농촌진흥청 자리에 새로 선 국립농업박물관이 있고 그 뒷편 힐스테이트 수원 테라스가 있는 데까지 간다. 산책을 하며 음악과 오디오북도 듣고, 또 벤치에 앉아서 밀리의서재로 책도 본다.


오늘 아침 '경제적 자유'라는 화두가 나를 사로잡았다. 요즘 여기저기서 '경제적 자유'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밀리의서재에서 '경제적 자유'라는 주제의 전자책을 검색해 보았다. 많이 있었다.


나는 요즘 많이 말하는 '경제적 자유'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돈으로 살 수 있는 자유를 말하는 것이라 이해하고 있었다. 올해 12월 준공 오픈하는 우리 동네 스타필드 옆에 짓고 있는 10억 즈음할 푸르지오에서 살고 싶으면 현찰 박치기로 사고, 내가 제네시스 GV80을 타고 싶으면 현찰 박치기로 사고, 스타벅스에 가고 싶을 땐 언제든 가고, 해 먹기 귀찮으면 아무 때나 가고 싶은 식당 가서 먹고.


내가 여러 책을 훑어보며 본 요즘 소위 말하는 '경제적 자유'는 조금 의미가 달랐다. 돈 때문에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빨리 회사를 은퇴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처럼 아무것도 없이 은퇴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를 최소화하고 주식 부동산 등 투자해서 돈을 불려 악착 같이 평생 쓸 돈을 모아, 평생 먹고살 것을 다 마련해 놓고 조기은퇴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써도 써도 남아도는 아주 많은 준재벌 슈퍼리치 정도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10억 대의 아파트에서 살고, 20억 대의 예금 부동산 주식이 있어, 거기서 아무 일 안 해도 월 500만 원 정도 타는 정도를 말한다고.


어떤 면에서는 나의 욕망과 같고, 어떤 면에서는 나의 욕망과 다르다.



돈 때문에 못했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돈 때문에 했던 내가 하기 싫은 일을 안 하고 살고 싶은 것은 같다. 올해 준공 오픈하는 스타필드 백화점과 브리지로 연결되는 10억 즈음하는 푸르지오에서 살고, 제네시스 GV80을 타고 싶은 것은 비슷하다. 대출 말고 현찰 박치기로 그 정도는 맞다. 나의 욕망의 마지노선이 그 정도다. 사치스러우면서도 소박한 것이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바라지도 않지만 내가 조앤 롤링처럼 해리포터 같은 작품 하나 써서 재벌이 된다 해도, 내가 살고 싶은 삶은 수원의 우리 동네 스타필드 옆 10억 즈음하는 푸르지오에 살며, 제네시스 GV80을 타는 정도다. 사치스러우면서도 소박한 나의 욕망의 끝이다. 우리 동네 스타필드에 별마당도서관이 들어오는데, 거기서 글 쓰며 스타필드에 혹시 문화센터가 들어오면 강연도 하고, 그렇게 사는 것이다. 거기까지는 비슷하다.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위해 모든 것을 아끼고 희생해 평생 살 것을 마련해 놓고 은퇴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즐겁게 평생 할 수 있으면서, 그것으로 돈도 벌 수 있는 것을 하면서,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수익으로 그 수준에 맞추어 사는 것이다.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그 없는 가운데서 자유롭고, 있으면 있는 대로 그 있는 가운데서 자유롭고 말이다.


나도 예상치 못하게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예상보다 일찍 아무 대책 없이 하던 일을 놓게 되었다. 매달 200만 원씩 들어오는 돈이 없어졌다는 것 외에 모든 것이 좋다. 앞으로 언제까지 이럴지 모르는 불확실성 외에는 모든 것이 좋다.


일주일에 한 번 네팔인 아내 에미마를 데리고 네팔어 예배 다녀오는 길에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오는 자유가 없어졌을 뿐이고, 돈을 내야지 사 먹을 수 있는 것을 사 먹을 자유가 없어졌을 뿐이고, 주말에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눈으로 맛으로 보는 재미가 있는 외식을 하는 자유가 없어졌을 뿐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하기 싫은 것을 안 할 자유가 생겼다. 그리고 쫄쫄 굶는 것은 아니다. 돈을 안 쓴다 뿐이지, 먹는 것은 다 먹고 산다. 나만 행복해진 것이 아니라, 아들 요한이도 행복해졌다. 아내 에미마 입장은 좀 복잡하다. 더 행복해진 부분도 있고, 더 재미있어진 것도 있고,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진 것도 있고, 아내 에미마의 입장은 복잡하다.


그러니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책 내서 성공하는 것이다. 한 방에 뜨는 것이다. 신인작가로서 한 방에 대형사고를 치면 좋고, 무명작가라도 작가로서 존재감이 생겨 지속적으로 책 내고 강연 다녀서 호구지책이 해결되면 좋다.


경제적 자유는 말할 수 없는 처지이지만, 삶의 자유는 분명 있는 처지다. 나는 지금 행복하다. 아들 요한이도 지금 행복하다. 아내 에미마는 좀 복잡하다. 더 행복해진 부분도 있고, 오늘과 내일이 불안하기에 불행한 부분도 있다. 그러니 빨리 글로 대형사고를 쳐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무 살, 조울증에 걸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