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병원에 갔다. 격주로 상담받고 약 타러 정신과 병원에 다닌다. 회사 다닐 때는 토요일에 갔는데 퇴사 후 집에서 놀고 있는지라 금요일에 간다.
2000년 봄 스무 살 조울증에 걸렸다. 조울증은 약 잘 먹으면 괜찮은 병이다. 조울증으로 환자와 가족이 불행해지는 것은, 대부분의 조울러들이 약을 먹다 끊어 조울증이 재발하기 때문이다.
지금 다니는 병원 선생님은 2014년 내 조울증 인생 중 3대 위기가 찾아왔을 때 입원한 병원에서 주치의로 만났다. 그 후 개원을 하셨고 2018년부터인가 그 병원으로 외래 진료를 다닌다. 여선생님이신데 나에게 잘 맞는 선생님이시다. 대학병원도 다녀보고, 조울증의 세계적인 권위자도 만나봤는데, 자신에게 맞는 선생님이 있다.
"어머니께서 보내 주신 왕대추 잘 받았어요."
"올해는 수확량이 적어서 많지 않아 많이 보내드리지 못했데요."
"아니에요. 왕대추가 사과처럼 크고 너무 맛있어요."
아버지께서 정년퇴직 하시고 어머니랑 논산 시골집에 내려가셔서 왕대추 농장을 하신다. 대추는 주로 약재로 사용하는데, 왕대추는 품종개량으로 과일처럼 먹는다. 원래 아버지께서 왕대추 농장을 시작하신 것은 내 평생직장을 만들어 주시기 위해서였다. 아버지랑 귀농교육을 받고 같이 시작했다가 나는 털고 올라왔고, 아버지께서는 어머니랑 농장을 하시며 노년을 보내시고 계시다. 전량 지인들에게 직거래로 파신다.
왕대추 철이 되면 어머니께서는 정신과 주치의 선생님께 한 박스 보내드린다. 올해는 날씨 관계로 열매가 많이 달리지 않았는데, 그래서 아버지 어머니께서 대신 가지치기를 열심히 하셔서 열매가 크고 달다.
병원은 봉담이다. 한참 돌아가기는 하지만, 집 앞에서 병원 앞까지 다이렉트로 가는 시내버스가 있다. 병원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버스를 잘못 타고 종점까지 가는 바람에 화성시청까지 갔다. 어머니께서 일이 있으셔서 오래간만에 올라오셔서 기다리고 계셨는데, 늦게 집에 돌아와 늦은 점심을 먹었다.
나는 조울증을 극복했다. 약 끊고 완치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조울증의 세계에 그런 달달한 것은 없다. 두 주에 한 번 병원에 다니며 매일밤 알약 몇 알 먹으며 조절하며 별 일 없이 산다는 의미의 극복이다.
조울증의 문제는 약과 아내 에미마와 아들 요한이와 행복한 가정생활로 해결했지만, 몇 가지 과제는 남아있다. 스트레스, 분노조절,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직장. 뭐 이런 과제가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