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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한 Oct 20. 2020

두 남자를 울린 음악인 예비신부의 직업병

꼭 그래야만 속이 후련했냐? (2)

음악을 전공한 예비신부 영희는 언제나 귀가 민감했다.

카페에 가면 카페에서 나오는 음악소리를 듣고 스피커의 사양을 논했고.

TV의 음악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노래하는 이들의 노래실력을 평가했다.

마치...,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처럼 말이다.


그런 그녀가 남자 친구 철수와 결혼 준비를 하며 큰 고민에 빠졌다.


축가를 연주로 할까? 지인들의 노래로 할까?


결국 영희와 철수는 지인들의 노래로 축가를 결정했다.

결혼식장에서 서비스로 연주팀을 세팅해주겠다 했지만, 연주자를 본업으로 하는 영의 언니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언니가 연주자인데, 왜 축가를 결혼식장 업체 사람들이 한대?"

하는 반응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그러다 부부의 절친한 고향 동생이 축가를 해주기로 했고.

뮤지컬 배우인 그 동생은 조심스레 예비부부에게 물었다.

"혹시 원하는 노래가 있어?"

"아니, 너 제일 잘하는 걸로 해."


그 동생은 주변 지인들의 결혼식 축가를 맡으면 항상 부르는 바로 그 노래.

'지금 이 순간'이라는 노래를 선곡했다.


결혼식을 한 달쯤 앞둔 때였다.

영희와 철수는 주말을 맞아 오랜만에 양평으로 바람 쐬러 가던 길이었다.

차 안에서 노래를 들으며 창밖을 바라보던 영희는 문득 동생의 축가가 궁금해졌다.


"걔는 그래서 축가로 뭐 부른대?"라고 물었다.

"몰라. 뭐 알아서 잘하겠지. 근데, 진짜 뭐 했으면 좋겠냐고 계속 물어보던데."

"글쎄..., '지금 이 순간'만 아니면 좋겠어."

"전화해볼까?"


잠시 후, 전화를 받은 뮤지컬 배우 동생에게 두 사람은 물었다.

"너 축가 뭐 할 거야?"

'지금 이 순간' 하려고.


!!!


그 뮤지컬 배우 동생은 그 날 이후로 부랴부랴 선곡을 바꿨다.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무대도 아닌 남의 결혼식에서 바들바들 떨며 노래를 했다.

영희와 철수의 결혼식 축가 무대가 그에겐 일생일대 최악의 무대로 남았다.




사실 뮤지컬 배우 동생의 최악의 무대에는 또 다른 비하인드 스토리가 존재했다.


결혼식 일주일 전.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친 영희와 철수는 신혼집으로 향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한껏 신난 철수는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이 노래 나랑 되게 잘 어울린대."

"누가?"

"만수랑 철민이가!. 다시 불러볼게. 들어봐!"


1절이 끝나고 철수는 다시 물었다.

"어때? 코멘트 좀 해줘 봐."


"음..., 일단. 자기는 비음이 너무 강해. 비염 때문인가? 콧소리가 심한데, 이 노래는 그러면 안 어울려. 그리고, 음역대도 안 맞아. 자꾸 플랫(b)이 되잖아."


영희는 아주 순수하게 그에게 코멘트를 날렸다.

"아..., 그래?"

철수는 덤덤히 그녀의 코멘트를 받아들이는 듯했다.

영희는 그때까지만 해도 알지 못했다.

그가..., 결혼식에서 이 노래로 서프라이즈 축가를 하려 기막힌 계획을 준비 중이었다는 것을....

그것도 절친한 뮤지컬 배우 동생과 함께 이 노래를 부르려 했다는 건 더더욱 알지 못했다.


결국, 철수는 셀프 축가의 야심 찬 꿈을 포기했다.

절친한 동생은 결혼식을 일주일 앞두고 부랴부랴 또 한 번의 선곡 변경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뮤지컬 배우 동생에게는 잊지 못할 흑역사가, 철수에게는 이루지 못한 꿈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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