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태어나지 않는다. 다만 만들어진다.
* 필자는 영화를 전문적으로 공부한 적 없으며, 이 글은 인상깊게 본 영화에 대한 주관적인 후기, 장면 해석을 담은 글임을 먼저 밝힙니다. 스포 있습니다!
거꾸로 가는 남자(I’m not a easy man)
2018 /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사회적 성의 개념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여성과 남성을 구분짓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여성은 긴 머리를, 남성은 짧은 머리를 고수하게 했을까. 무엇이 여성에게 자신을 혹사시키면서까지 다이어트를 하게 했을까. 왜 여성의 '자기관리'는 남성의 그것과 다르게 나타나는가. 왜 여성은 남성보다 몇 배나 많은 돈을 꾸밈을 위해서 쓸까.
꾸미는 것은 정말 권리인가? 여성은 남성보다 '꾸밀 자유'를 가지고 있는 걸까? 그래서 여성이 남성보다 더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 영화는 나의 물음 중 많은 것들에 답을 주었다. 여러모로 인상깊은 영화였기에, 영화의 각 요소들과 주요 장면들을 리뷰해봄으로써 생각을 정리하고자 한다.
1. 미용에 집착하는 남성들
말 그대로, '거꾸로 가는 세계'의 남성들은 아름다움에 집착한다. 살을 빼기 위해 여러 기구들을 위해 운동을 하고, 피부를 관리하기 위해 팩을 한다. 또한 여성은 이들의 아름다움을 품평한다. 길거리에서 여성이 남성에게 "Hi, sexy"라고 캣콜링하는 것은 너무나 일상적이다.
영화 초반, 그리고 우리가 실제 살아가는 세상과 비교했을 때, 꾸밈의 주체와 평가의 주체가 완전히 바뀐 것이다. 남성은 아름다움을 위해 털을 관리한다. 실제로 한 여성은 다미앵과 섹스하기 전, 그의 가슴털을 보고 "못 만지겠어. 정신적인 거부감이 있어서." 라며 질색한다. 결국, 다미앵은 제모를 결정한다.
반면 여성들은 특별히 꾸미지 않으며 핫팬츠가 아닌 셔츠와 슈트를 입는다. 이러한 옷차림 덕분인지, 그들의 모든 행동은 굉장히 당당해 보인다.
여기서 재밌는 것은, 열심히 자신을 치장하는 남성들이 어딘가 우스꽝스럽게 그려진다는 것이다. 사실 그들의 행위들은 여성들이 흔히 해오던 것이다. 그 어떤 것도, 누가 저런 걸 할까 싶을 정도로 유별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왜 그들은 우스꽝스러워 보일까?
나는 '낯설게 하기'가 이 영화에 적용되었다고 생각한다. 여성들에게는 '디폴트'인 것들이 남성들에게 새롭게 적용되면서, 관객은 엄청난 어색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생각하게 된다. 아, 여성들이 '자기관리'랍시고 자신을 꾸며오던 것도, 충분히 우스꽝스러운 행동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2. 여남, 사회적 지위의 차이
직업에 귀천은 없다. 그러나 직업이 가지는 사회적 위치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런 관점에서 살펴볼 때, '거꾸로 산 세계'는 우리의 세계와 완전히 뒤바뀐 모습을 보인다. 다미앵의 친구 크리스토프는 알렉산드라의 비서였다. 그러나 그가 아내의 출산 후 육아휴직을 내게 되면서, 다미앵이 새로운 비서로 들어가게 된다.
기존의 세계에선, 크리스토프가 작가. 알렉산드라가 그의 비서이다. 그러나, 뒤바뀐 세계는 정확히 그 반대로의 변화가 나타났다. 여성이 남성 비서를 구하는 것, 우리 사회에선 결코 일반적이지 않다. 우리의 상식 속에서도, 남성인 기업 총수와, 그를 돕는 여성 비서의 그림이 익숙하지 않은가. 이 영화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과감히 깨뜨린다.
3. 바람피는 여성들, 그것을 정당화하는 사회 통념
크리스토프는 아내 롤로가 바람을 피는 것 같다며 다미앵에게 하소연한다. 결국 폭발한 그는 롤로를 내쫓고, 롤로는 다미앵을 찾아온다. 롤로는 말한다.
임신 중이라 호르몬이 솟구쳐서 자제가 안 됐어.
정말이지 남성들의 변명과 흡사하지 않은가. 현실세계에서 남성들은 외도와 성매매에 대해 수많은 변명을 늘어놓는다. "아내가 임신 중이라 성적 욕구가 쌓여 어쩔 수 없었다.", "순간적인 충동 때문에 자제하기 힘들었다." "그 업소에 방문한 것은 다 회사 차원의 비즈니스 때문이었다." 라고.
그리고 여성들은 이들에 의해 '가스라이팅' 된다. 남성들의 되도 않는 변명에 익숙해지고, 받아들이게 된다. 한마디로 말해 체념하는 것이다. 남성들은 원래 그런 존재니까, 내가 참아야 한다고 말이다.
4. '남성주의'를 폄하하는 여성들
알렉산드라와 다미앵이 언쟁을 벌일 때, 알렉산드라는 "고루한 남성주의 담론인가요?" 라고 묻는다. 다미앵이 알렉산드라와 고용인, 비서의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라 평등한 관계로 서고 싶다고 할 때마다 알렉산드라는 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알렉산드라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여성들이 '남성주의'를 폄하한다. "가만히 있으며 여성들의 칭찬과 보호를 받으면 되는데, 대체 무엇이 그리 괴롭냐" 묻는다. 무엇보다 이들은 그 남성들이 피켓을 들고 나와서 시위하는 이유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남성 여러분들, 난 개도 수컷만 키웁니다.
여러분의 적이 아니라는 거죠.
이들은 본인들은 남성을 혐오하지 않으며 오히려, '좋아한다'고 말한다. 우리 집은 아들밖에 없고, 혹은 수컷인 개를 더 선호한다, 와 같은 이유들로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여성들이 '여성혐오'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때, "여러분 전 여성을 혐오하지 않습니다. 제가 얼마나 여성들을 좋아하는대요. 당신들의 굴곡진 몸매와.... 하여튼 전 여성을 혐오하긴 커녕 사랑합니다." 라고 답하던 이들이 떠올랐다. 모 랩퍼는 아예 자신의 랩 가사를 통해 이런 무지를 드러냈으니, 말 다했다.
여성혐오라는 것은, 단순히 여성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을 무시하거나, 동등한 사람으로 보지 않고 '꽃' 혹은 '성녀' '악녀'로 프레임씌워서 간주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아직도 이에 대한 인식이 한참 떨어진다. 이 영화는 미러링을 통해서 그 점을 정확히 보여준다.
5. '남성성' 을 무시하는 여성들
네 제안은 너무 섬세해. 그러니까 여자들한테 밀리지.
다미앵이 자신의 프로젝트에 대해 상사에게 들은 피드백이다. 이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섬세함'은 남성의 영역으로 간주된다. 뿐만 아니라, '섬세함' '아름다움' 과 같은 남성성은 여성에 의해 쉽게 무시된다.
반면 알렉산드리아의 작품은 "아주 힘이 넘치죠, 정말 여자가 쓴 작품 같아요."라는 평을 받는다. '강인함'은 여성의 영역으로 분류되며, 감정적이지 않고 동적인 그의 소설은 세기의 인정을 한몸에 받는다. 쉽게 대작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어떤가. 여성 작가들의 작품은 "감정적이다"고 쉽게 결론 내려지며, 그들의 섬세함은 남성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렇게 남성들의 작품은 여성들보다 쉽게 인정받고, 문학분야에 있어 남성들은 자신들의 카르텔을 형성한다. 어디 문학분야에서만 그러던가.
결론
이 영화의 결말은 정말 많은 것을 시사한다. 많은 분량을 할애해 '거꾸로 가는 세계'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익히 알아온 세계가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런 후 다시 다미앵이 살던 세계로 돌아가게 한다. 알렉산드리아는 짧은 치마와 구두를 신는 여성들, 여성인권을 위해 시위하는 여성들을 보며 아연실색한다.
세상에 고정적인 성 역할은 없다. 여성이 해야 할 일, 남성이 해야 할 일. 여성이 입어야 할 옷, 남성이 입어야 할 옷 등은 결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온 역사와, 기득권들이 '만들어놓은 것'이며, 일반 사람들. 특히 여성들은 이를 수용한 것이다.
아직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투블럭을 한 여성들에게 "남자같다" 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화장을 하지 않는 여성들에게 "예의없다."고 하거나, "어디 아파보인다." 라며 걱정을 빙자한 간섭을 하기도 한다. 우리가 익히 알아오던 여성성과, 남성성이 얼마나 허상인지 이 영화를 통해 더 많은 이들이 깨달았으면 좋겠다.
새로운 시도를 함으로써 제고의 기회를 준 넷플릭스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