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에 두서없이 꽂힌 책 중에 몇 권을 골랐습니다. 제게 충동구매했을 때 실패 경험이 가장 많을 때가 언제였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책을 온라인으로 구매했을 때라고 말할 거예요. 독서 모임 때문에 읽어야 하는 책을 사는 경우를 빼고, 제목에 이끌려 또는 누군가의 한 줄 추천사를 읽고 순간 마음에 이끌려 산 책들은 기대치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아요.
오늘 고른 책 6권도 그런 부류의 책들이 몇 권 있었고, 또 몇 권은 타인에게 받은 책이었습니다. 책을 좋아한 이후부터 저도 제 지인들에게 책 선물을 종종 하곤 했는데, 중고서적에 팔 책으로 분류하고 있는 저를 보면서 앞으로는 선물 아이템으로 웬만해서는 책을 고르지 않기로 했습니다.
언젠가 제가 책을 낸다면, 이 생각은 바뀔 여지가 충분히 있습니다만..... 그때가 언제가 될진... 뭐..
고른 6권 책들의 발행 시점을 살펴봤더니, 출간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책들이었어요. 새 책들인데 좀 미안한 마음도 들더군요. 하지만 책장에 꽂아둬 봤자 분명 읽지 않을 테고, 이미 미어터지는 책장의 공간을 좀 확보하려면 읽지 않을 책들에 좀 단호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혹시나 나중에 이 책들이 읽고 싶어지면 그때 다시 책 사기로 한 것이죠.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중고 서점 ‘책 되팔기’ 창구에 가서 에코백에 담아 왔던 책들을 펼쳤습니다. 책 상태는 모두 ‘최상’으로 분류해주시네요. 그럼요. 거의 새 책입니다. 책에 밑줄 긋기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이 책들에는 밑줄 흔적들이 하나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한번 밑줄 긋기 시작하면 그 후로는 아예 연필을 들고 어디 괜찮은 문장 어디 한번 나와봐. 제대로 줄 그어 주려니깐 하는 모드인데, 첫 밑줄을 긋기로 하는 데까지 꽤 신중한 편입니다. 일단 읽어봐 줄게 식이네요. 기대에 못 미친다면 넌 아웃이야! 뭐 이런 태세로 책장을 넘기는 것 같군요.
팔려는 책들이 다 최상이라고 하니, 기분은 좋습니다.
이제 책 한 권씩 가격이 얼마로 측정되는지 포스기 화면을 예의 주시합니다. 1,300원, 3,700원, 7,200원, 4,300원, 매입 불가(적정재고 초과), 2,100원. 6권 중 5권을 팔고 18,600원을 현금으로 돌려받았습니다. 새 책 한 권은 충분히 살 만큼의 돈은 벌었네요. 판 책들은 장편소설 1권, 산문집 4권, 그림 에세이 1권이었는데 가격을 매기는 기준이 궁금했어요. 1,300원인 책은 가볍게 한번 읽기 좋았던 소설이었는데, 책 내용의 깊이에 따라 가격이 매겨지는 것인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정가의 10 프로도 안된 금액이라 안타까웠어요. 시장의 원리에 따라 매겨진 상품 등급이고, 그 기준을 반증한 값어치일 텐데 이 책을 쓴 작가는 이 가격을 모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씁쓸했던 마음은 잠시 제 손에 쥐어진 현금 18,600원 때문에 금세 마음의 온도가 뒤바뀝니다. 사고 싶은 책이 있는지 검색대로 향합니다. 이번 달 모임에서 읽기로 한 책은 이 중고 서점에는 없네요.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시 매대 이곳저곳을 어슬렁거립니다. 분류가 잘 되어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렬로 정갈하게 꽂혀 있는 책들을 보니 눈이 반짝반짝해집니다. 발길 닿는 대로 구경하다가 멈춘 곳은 한국 소설 작가 코너였어요. 제일 위에 단부터 한 권씩 제목과 소설가 이름을 꼼꼼히 봅니다. 그러다 반가운 소설가의 이름을 발견합니다. ‘정용준 소설’ 요즘 저의 최애 한국 소설가입니다. 그의 단편소설 집 <선릉 산책>과 장편소설 <프롬 토니오>를 서가에서 뽑아 들고는 의기양양하게 계산대로 향합니다. 얼마 전에 ‘검색 불가’로 떴었는데 그 새 누군가 이 책들을 팔았나 봅니다.
타이밍 굿~ 유년 시절에 불렀던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노랫말처럼 읽은 책 주고 안 읽은 책을 얻은 기분이었어요. 5권 팔아서 번 금액으로 2권의 책을 얻었습니다. 시장 원리에 군림당한 느낌을 지울 순 없지만 어쨌든 읽고 싶은 책을 2권이나 얻었으니 손해 본 것은 아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