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유토피아>를 보고
한국 사람들에게 아파트는 주거공간 기능을 넘어 부와 성공의 상징이다. 어느 동네 무슨 아파트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부를 자랑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러다 보니 집값, 부동산 흐름에 대한 관심은 늘 열려 있고, 아파트에 관련한 새로운 소식들에 귀추를 세운다. 요즘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 철근 누락과 내부비리에 연일 시끄럽다. 답답한 현실을 단번에 뒤엎는 디스토피아 영화를 봤다. 그것도 아파트가 배경인 영화 <콘크리트유토피아>이다.
영화는 처참한 재앙에서 시작된다. 온 세상을 집어삼킨 대지진으로 서울은 하루아침에 폐허가 된다. 모든 것들이 붕괴된 가운데 황궁 아파트 103동 한 채만 무너지지 않았다. 건재한 황궁 아파트를 배경으로 운 좋게 살아남은 주민들의 생존 이야기가 펼쳐진다. 소문을 들은 외부 생존자들이 황궁 아파트로 몰려들자 103동 입주민들은 위협을 느낀다. 그들은 하나가 되어 외부인 출입을 철저히 막고 새로운 규칙을 만든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주민들은 그 새로운 규칙을 따라야 한다.
모든 게 파괴된 현실에서 상류층과 부의 기준 역시 재설정되는 장면은 흥미로웠다. 이를테면 외부인을 내쫓을 대책을 강구하기 위해 모인 주민회의에서 부녀회장인 금애(김선영)는 민성(박서준)에게 '자가'로 사는 집이냐를 묻는 다른 주민 부동산중개업자에게 은행이고 뭐고 다 무너진 판국에 그게 무슨 소용이냐고 대꾸하는 장면에서부터, 외부인이지만 지역구 의원이라면서 황궁 아파트 주민에 합류하려는 요행도 성립될 수 없다. 20년 넘게 아파트에서 일한 늙은 경비원도 아파트에서 지낼 수 없다. 전세나 월세나 대출을 많이 받고 아파트를 샀든 간에 황궁 아파트 거주민이어야만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따뜻하고 안전한 이 유토피아 공간을 누리는 것도 잠시, 끝도 없는 생존 위기 속에 주민들의 갈등한다. 나만, 내 가족만은 살아남아야 하므로 주민들끼리 의심과 경계를 일삼고 결국 분열한다. 마지막 남은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마저 파괴된다.
암흑세계인 현실 속에서 생존을 위한 보통 사람들의 아우성과 본심을 영화는 치밀하게 그려낸다. ‘믿고 보는 배우’ 이병헌 명실답게 그의 연기력은 단연 압권이었다. 눈알이 돌아간 것 같은 그의 미친 연기에 나 역시 아우성쳤다. 다만 내 주변 관람객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입을 틀어막은 채 음소거 비명을 질렀다. 영화감독은 관객 몰입에 방해될까 봐 그래픽 작업에 엄청 신경을 쓰며 여러 번 수정을 거듭했다는 기사를 영화를 본 후 읽었는데 그가 공들인 덕에 나는 빠져나갈 틈을 찾지 못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을 꼽으라면 음악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익숙한 음악 두 곡이 등장하는데 하나는 "즐거운 나의 집", 그리고 윤수일의 "아파트" 노래다. 파괴되고 붕괴된 콘크리트 세상 속에서 울려 퍼지는 “즐거운 나의 집”은 아이러니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 속에서 찾아낸 식량들로 마을 잔치를 벌이던 중 주민 대표 영탁(이병헌)이 노래 “아파트”를 열창하는 대목에서는 아파트란 대체 무슨 의미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며 싸늘한 감정마저 불러왔다.
구독하는 뉴스레터에서 잘 만든 영화의 기준이란 ‘이야기하고 싶게 만드는 영화’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제부터 나도 그 기준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그리고 내게 <콘크리트유토피아>가 딱 그런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