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는 뭐 사고 싶어?"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편은 초코머핀을 향해 돌진했다. 초코머핀 6개와 블루베리 머핀 6개, 1+1 구성 세트를 카트에 싣고 미소 짓는 남편의 모습은, 당황스러움 그 자체였다.
"아니, 아니. 안 돼! 밀가루와 설탕 덩어리잖아." 카트 끄는 남편의 손을 붙잡으며 말렸다.
"차라리 오렌지를 사자. 달콤한 골드키위를 사자." 하지만 남편은 큰 눈을 더 크게 뜨며 "좀 먹자!" 하고 외쳤다. 더 말렸다가는 여섯 살 악동처럼 코스트코 바닥을 뒹굴 기세다. 결국 속으로 '남편이랑 다시는 쇼핑하러 같이 오지 않겠다!' 다짐하는 순간이었다.
어찌 보면 남편 탓이 아니다. 글루텐 탓이다. 글루텐은 중독성이 강해서 자꾸만 먹고 싶게 만든다고 한다.
사실은 나도 단맛을 좋아했다.
진한 초콜릿의 쫀득한 브라우니를 떠올려 보라.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작고 멋진 브라우니를 외면하기란 정말 힘들다. 달콤한 팥앙금을 품은 개피떡(바람떡)도 거절하기 힘들다.
어릴 적 엄마는 일터로 나가시기 전, 제과점에서 컵케잌 세트를 사다 놓곤 하셨다. 아이들과 함께 있고 싶지만 생활 전선에 나갈 수밖에 없었던 엄마의 마음은, 맛있고 달콤한 빵으로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고 싶었던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달달한 빵을 좋아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건강 관련 책을 읽으며 입맛을 바꾸려 무던히 애썼다. 어쩌다 사탕이나 단것을 싫어하는 사람을 보면 참 많이 부러웠다. 우여곡절 끝에 이제는 살짝 찐 양배추와 방울토마토를 아주 좋아하게 되었다.
결혼 후 남편에게 "뭐 해줄까?" 하고 물을 때마다 남편은 떡볶이를 해달라고 했다. 떡볶이가 다이어트의 최대 적이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 수년 동안 무수히 많은 떡볶이를 만들었다. 분식집을 개업해도 좋을 만큼 떡볶이를 잘 만들 수 있다.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는 남편과 건강한 입맛을 고집하는 내가 연애기간 포함 30여년째 잘? 살고 있음에 감사한다.
집에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도서관 강좌니 각종 모임에 다니기 좋아하는 나의 빈자리는 라면이 꽉 잡았다. 남편은 반찬을 해놓고 가라는 부탁을 하지 않는 대신, 나만 없으면 라면을 끓여 먹었다. 어쩌면 그는 라면을 사랑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가끔 된장찌개나 고등어구이를 해놓기도 했지만, 정신없이 나가기 바쁜 날들이었다.. 육아 스트레스 등으로 뛰쳐나가지 않고는 견디기 힘든 시기였다.
따뜻한 밥상을 잘 챙겨주지 못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두고두고 미안하지만 요리 잘하는 남자들도 많은 세상인데, 간단하게라도 건강식으로 끼니를 챙기는 남편이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바쁠 예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