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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hi Oct 17. 2023

[강제여행] 오니까 좋네요 | 포르투

여행객과 현지인의 그 중간쯤인 나의 시선

떠나는 아침은 추웠다. 남편의 오토바이가 시동이 잘 걸리지 않아서 이 마을을 제시간에 빠져나갈 수 있을지 잠깐 의문이 들기도 했다. 항상 순탄하지는 않은 편. 다행히 덜거덩덜거덩 시동이 걸렸고, 작은 오토바이 위에 두 몸을 싣고 시내로 나갔다. 시내로 가는 길은 굽이친 산길인데 경량패딩을 입었는데도 몸이 덜덜 떨려왔다. 그렇게 30분가량을 달려 버스터미널 근처에 주차를 하고 카페로 향했다.


남편과 마시는 올해 마지막 커피. 이건 생이별이 따로 없다. 한편으로는 이게 무슨 호강이냐 싶다가도 쓸데없는 큰 지출을 하는 것 같아 마음 한편이 먹먹했다. 큰 머그잔에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호호불어 마시며 몸을 녹이고 싶었지만 아메리카노는 없다. 에스프레소 두 잔과 디저트 하나를 주문해서 먹었다. 차가워진 몸은 진정이 되지 않았지만 아침을 잘 먹지 않는 나를 든든히 보내주려는 남편의 마음에 애써 괜찮은 척해보았다.


무슨 일인지 버스는 제 시각에 도착했다. 남편의 잘 가라는 말에도 이번엔 눈물이 나지 않은 이유는 곧 돌아올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을까. 그렇게 포르투로 향하는 버스는 출발했다. 9시 반에 출발한 버스는 포르투로 곧장 향하지 않고 굽이굽이 모든 도시를 다 지나쳐가는 듯했다. 그렇게 4시간을 달려서야 포르투 캄파냐역에 도착했다. 시각은 1시 반 언저리. 배가 고팠던 나는 예약해 둔 숙소로 가는 길에 있던 공원 벤치에 앉아서 집에서 싸 온 도시락을 꺼냈다. 비둘기가 여기저기서 몰려오고 저 멀리서 고양이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지막 집밥은 쿠스쿠스샐러드. 참 좋아한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숙소로 향하는 길에 미리 봐둔 카페도 가고 싶었고, 카메라도 사고 싶어서 이곳저곳 들렀지만 인생은 항상 계획한 대로만은 흘러가지 않는 법. 온종일 아무 수확 없이 걸었어도 새로운 곳에 왔다는 설렘 때문이었을까 그다지 피곤한 기색은 없었다. 그렇게 숙소를 찾아 체크인을 하고 나서려는 생각 불현듯이 수건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부터 나는 수건을 찾아야만 한다. 그런데 대체 어디서 찾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가격이 저렴해서 아무것도 알아보지 않고 예약한 숙소는 무슨 일인지 엄청난 관광지 바로 앞이었고 그래서 수건을 살 만한 곳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몇 시간을 돌아다닌 뒤에 내가 찾은 수건이라고는 기념품 샵에 있던 어깨에 두르는 축구 응원 타월이 전부였다.



수건 그게 뭐 대수냐 싶어서 포기하고 슈퍼에서 과자와 맥주 한 캔을 샀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관광객과 현지인의 사이 그 어디쯤인 나는 아름다운 경치에 감탄하며 맥주를 마셨다. 그날 저녁, 수건은 없었지만 어찌어찌 샤워를 했다. 어쩐지 짐을 꾸릴 때부터 뭔가 너무 가져갈 게 없다 싶었는데 역시나였던 것이다.


다음 날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짐을 싸서 포르투 공항에 갈 준비를 했다. 환승을 하기 싫었던 나는 조금 더 걸어서 다음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남는 건 시간이고 체력이었고, 보이는 건 아름다운 풍경들이었으므로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이렇게 한국으로 돌아가기까지 나의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떠나기 참 싫다고 생각했는데, 나오니까 좋네요.


[더 자세한 일상은 유튜브 - dahi 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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