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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hl Jul 26. 2019

고양이는 종(種) 일뿐, 재이는 재이고 와니는 와니예요

고양이와 시간을 보내는 법#2

*. 본 콘텐츠는 <하루 20분 나는 한다> 매거진에 여러 작가들과 공동으로 연재하고 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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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으로 오자마자 처음 보는  신경도 안 쓰고 큰 캔 하나를 뚝딱 해치운 재이는 여전히 참치캔, 말린 북어, 닭가슴살 등을 가리지 않고  모든 간식을 참 잘 먹는다. 그리고 책상 밑 체중계 뒤에 숨어서 나오질 않던 와니는 여전히 구석진 곳을 좋아해 소파와 책장 사이, 침대와 벽 사이, 그리고 내 다리 사이에 꼬옥- 끼어있는 걸 좋아한다.

 

숨는 와니와 찾는 재이, 그들만의 숨바꼭질
간식을 좋아하는 재이와 숨는 걸 좋아하는 와니


하지만 재이는 그렇게 간식을 좋아하는 한편(냉장고 문만 열면 간식을 주는 줄 알고 온다), 와니는 간식엔 흥미가 없다. 다들 환장한다는 츄O는 예외지만, 가공된 게 싫어 보통 닭가슴살을 사서 삶아주는데 그건 잘 안 먹는다. 특이하게도 사료를 더 좋아한다. 사람으로 치면 간식은 안 먹고 밥만 좋아하는 바람직한 스타일!


근데 이상하게도 살은 와니가 더 잘 쪄서 어느새 한 달 누나인 재이보다도 몸집이 커졌다. 재이가 오히려 나와 식성이 비슷한데, 그렇게 많이 먹는대도 먹는 것에 비해선 살이 잘 안 찐다. 역시 밥을 많이 먹으면 살이 찌는 걸까, 아무래도 닭가슴살은 단백질이고 사료엔 탄수화물이 많이 들어가 있을 테니. 아님 재이가 마른 비만인 걸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내 얘기인가, 재이 얘기인가!




  그렇게 둘은 서로 너무도 다르다. 무늬가 비슷한 탓에 남매인 줄 알거나 쌍둥이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지만, 실제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다. 같은 엄마가 낳은 아이들도 다 다른데, 아예 엄마가 다른 재이와 와니는 서로 다른 게 당연하겠다. 자세히 보면 무늬도 다르고(재이는 턱 밑에 흰 털이 있고, 와니는 그게 코 옆에 있다. 콧물처럼 ㅎㅎ), 털 색도 재이는 검은색에 가까운 진한 갈색이고 와니는 그보단 옅은 갈색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가끔 하는 말이 있다. '고양이들은 건방져', '고양이들은 애교가 없어' 같은 말들이다. 이는 '사람들은 건방져', '사람들은 애교가 없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고양이는 인간과 같은 종을 지칭하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아마 재이와 와니를 쌍둥이로 착각하는 것도, 이런 고양이에 대한 지나친 일반화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한다.


털 색이 좀 더 진하고 몸이 길쭉한 아이가 재이, 그 옆이 와니다


식성 외에도 재이와 와니는 서로 다른 점이 많다. 일단 몸집부터가 다른데, 그 외에도 만져주면 좋아하는 부위, 흥미를 갖는 장난감의 종류, 즐겨하는 행동 등 외모가 아닌 성격에 관한 차이점 많다.


만져주면 좋아하는 부위

  재이는 와니에 비해 만져주는 걸 막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내가 소파나 침대에 앉으면, 그 옆에 와 누으면서도 만지면 귀찮다는 듯 손을 때린다. 하지만 가끔 얼굴을 만져주는 걸 잠자코 받아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이마에서 귀 뒤로 쓰다듬어주는 데도, 턱 밑을 살살 만져주는 데도 가만히 있는다. 그러다 기분이 좋아져 곧잘 골골 송을 부르기도 하고, 장난스레 내 손가락을 깨물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와니는... 스킨십을 정말 좋아한다! 그냥 얼굴을 만져주는 것도 물론 좋아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곳은 단연 엉덩이! 꼬리 밑으로 엉덩이 양쪽을 만져주는 것도 좋아하지만, 엉덩이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부위는 바로 꼬리 위다. 통통한 엉덩이를 만져주면 자연스레 요가 자세 중 하나인 아기 자세처럼 뒤를 들어 올리는데, 그때 사람으로 치면 꼬리뼈와 등 사이쯤 되는 곳을 톡톡톡- 주면 금세 골골 송을 부른다. 눈이 반쯤 풀린 채로. (ㅎㅎ)


흥미를 갖는 장난감의 종류

  사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은 내 손가락이다. 다른 장난감을 흔들 때 반응이 없다가도 내가 손을 이리저리 휘저으면 금세 그 손을 따라 둘이 똑같이 고개를 움직인다. 그래서 주위에 장난감을 없고, 애들은 놀아줘야겠고, 근데 움직이기가 살짝 귀찮을 때 손을 즐겨 사용한다. (물론 이건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다. 아이들이 처음부터 집사의 손이나 발을 장난감으로 착각하지 않도록, 어렸을 때부터 인지를 시키는 게 가장 좋다고 한다.)


 다행히 아이들은 내 손 외에 일반 장난감들도 참 좋아한다. 스킬이 좀 필요하지만, 보통은 낚싯대 장난감이 잘 먹힌다. 근데 그중에서도 재이는 이하게 억새풀 모양의 장난감을 좋아한다. 철사로 되어있어 움직임도 크지 않은데, 그 보송보송한 재질이 좋은지 첫날 그 장난감으로 놀다 결국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뻗어버렸다. 반면 와니는 필름 재질의 장난감을 좋아한다. 그 필름들이 서로 부딪히면서 내는 샤샤샥-거리는 소리라던가, 필름에 빛이 반사되어 나오는 투명한 빛깔을 신기해하는 것 같다.


즐겨하는 행동

   2년쯤 전부터 와니가 가장 좋아하는 게 있는데, 바로 내가 아빠 다리를 하고 소파에 앉으면 그 사이로 들어와 자는 것이다. 아마 좁은 곳을 좋아하는 와니의 특성상, 양다리로 울타리를 쳐놓은 그곳이 아늑하게 느껴져서인 것 같다. 나와도 아주 가깝게 있을 수 있고. (ㅎㅎ) 그리고 와니가 좋아하는 또 다른 건 바로 꾹꾹이. 다만 그 부위가 살짝 특이하다. 다른 아이들은 집사의 배나 가슴 등 지방이 많은 부위에 하는 걸 좋아한다고 하는데, 와니는... 목과 겨드랑이에 하는 걸 좋아한다. 내 목에 살이 쪘다는 건가? 겨드랑이는 인정. 요즘 부유방이.. 목에다 하는 건 정말 너무 아프고 가끔 생명의 위협(?)을 느껴 못하게 하다 보니, 요즘은 자다 깨면 자연스레 내 옆으로 와 눈도 못 뜬 채 겨드랑이에 꾹꾹이를 한다. 가끔은 발톱을 제때 못 잘라줘서 살짝 따갑기도 하지만, 그게 또 그렇게 좋다. (고양이를 좋아하면 그런 변태 같은 취향이 생기는 것도 같다. 다들 그렇게 꼬수운 발 냄새와 모래 투성이일 젤리 발바닥에 열광하는 걸 보면.)


손 베개를 좋아하는 재이

재이가 즐겨하는 행동은 좀 다르다. 일단 재이가 가장 자주 하는 행동은 매일 밖에서 들어온 내 냄새를 맡는 것이다. 바깥에서 묻혀온 새로운 냄새가 신기한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재이의 얼굴에 내 얼굴을 갖다 대면, 재이는 곧 내 냄새를 - 특히 입에다 코를 갖다 대고(;;) - 맡기 시작한다. 그 후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면 다리 사이를 8자 모양으로 지나다니기 시작하는데, 아마 탐색은 끝났으니 어서 간식을 달라는 뜻인 것 같다. 그럴 때면 마치 사냥을 다녀온 엄마 고양이가 된 기분이 든다. 또 재이는 와니와 달리 좀처럼 소파 위로 잘 올라오지 않는데, 그래도 가끔 내 옆에 와서 앉을 때면 내 엉덩이에 제 엉덩이를 찰싹 붙이고 웅크리고 있다, 내가 손을 얼굴에 받쳐주면 그대로 이마를 부비부비 하다 잠이 든다. 마치 좋아하는 마음을 대놓고 말하기엔 쑥스러워, 에둘러 표현하는 것 같다.





  요즘은 더워서 그런지 재이와 와니가 둘 다 좀처럼 침대나 소파에 오질 않는다. 마룻바닥이나 테이블에 배나 등을 깔고 누워있을 걸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온도로 치면 얼마 차이가 안나는 이 더위가 아이들이 즐겨하는 행동을 바꿔놓은 것이다. 순간의 온도 변화도 그럴진대, 하물며 어미나 아비로부터 물려받은 DNA나 몇 년을 살며 만들어진 습관이란 얼마나 아이들을 개성 넘치게 만들겠는가.


그래서 그냥 고양이가 아니다.
재이와 와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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