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보다 깊은 상처, 그리고 변신
요즘 주 1-2회 정도 강남에 있는 영어학원을 다니고 있는데, 매 수업마다 다른 주제로 회화 수업을 한다. 지난번 주제는 바로 Mind and Body로 운동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운동을 좋아해 신이 나서 꾸준히 해온 필라테스에 대한 이야기를 했더니, 선생님 Joan이 흥미를 갖고 이것저것 물어봤다. 필라테스로 유산소 운동을 할 수 있냔 말에, 필라테스 기구 중에 점핑 보드라고 누워서 점프를 할 수 있는 게 있다고 하니 신기해했다. 집에서도 필라테스를 할 수 있냐며, 집에 갖다 놓을 수 있는 기구는 없냐고 묻길래, 보수를 소개해줬더니 짐볼보다 안전해 보인다며 시도해보고 싶다고 하기도 했다.
그리고 두 명씩 짝을 지어 각자 하고 있는 운동이 뭔지, 그걸 시작한 계기는 뭐고, 그 운동의 장점과 단점은 뭐라고 생각하는지를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당시엔 그냥 뭔가 취미를 갖고 싶어서 필라테스를 시작하게 됐다고 했지만, 실은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원래 나는 운동을 굉장히 싫어했다. 중고등학생 때는 일주일에 겨우 한번 있는 체육시간도 반갑지가 않았다. 유연성은 자신 있었지만, 손이 발끝을 한참 벗어나자 다리가 짧아서 그런 거 아니냔 친구들의 놀림에 마냥 즐겁지는 않았다. 달리기를 하면 땀이 흐르고 숨이 가빠오는 게 싫었고, 윗몸일으키기는 최악이었다. 체력장 날짜가 다가오면 아프다고 하고 학교에 가지 말까 생각할 정도였다.
그렇게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교 때부턴 누가 억지로 시키는 일이 없으니 운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 회사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입사 2년 차가 됐을 때,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3년 전쯤. 나는 우연히 큰 병을 발견해 수술을 받았고, 일주일 넘게 병실에 누워있어야 했다.
다행히 충분히 몸을 회복할 수 있는 휴가를 받을 수 있었고, 몇 달 후 다시 회사로 복귀했다. 그리고 운동을 시작했다. 병에 걸린 게 운동을 하지 않아서는 아니었지만, 그냥 뭐든 해야 할 것 같고 또 뭐든 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엄마 아빠도 많이 걱정을 하셨기에, 잘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픈 마음도 있었다.
그렇게 집 근처 필라테스 학원으로 갔고, 워낙 운동과 멀었기에 선생님의 밀착 지도가 필요할 거란 생각에 일대일 수업에 등록했다. 막상 시작해보니 할 만했고, 그렇게 몇 개월이 훌쩍 지나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필라테스를 하기로 한 게 참 잘한 일이었던 것 같다. 헬스장에 가거나 구기종목 등에 도전했다면, 너무 지루하거나 기가 죽어 금방 포기했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필라테스는 내게 딱 맞는 운동이었다.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았고, 일대일로 들으니 남보다 뒤처져 자괴감에 빠질 일도 없었다. 그렇게 내 속도에 맞춰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니 자신감이 붙었고, 운동이 좋아졌다.
전엔 친구들이 그렇게 같이 해보자고 했던 마라톤을, 이젠 지쳐버린 친구들 없이 혼자 나가서 뛰었다. 10킬로를 뛰어야 하는데, 3킬로부터 힘들어 걷다 뛰다를 반복했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완주를 했다. 도대체 왜 하는지 몰랐던 달리기를 하는데, 기분이 좋았다. 성취감은 덤이었다. 그렇게 몇 번의 마라톤을 혼자 뛰다 1년 뒤 남자 친구와 커플 마라톤을 뛰었고, 최초로 중간에 한 번도 쉬지 않고 10km를 내리 달려 골인했다.
크게 아픈 뒤론, 언제 내일이란 게 없어질지 모른단 생각에 새로운 것들에 많이 도전했다. 언젠가 돈을 많이 벌게 된다면, 언젠가 날씬해진다면, 언젠가 시간이 많아진다면 등으로 조건을 붙여 무한정 뒤로 미뤄놨던 것들을 하나씩 해보기로 했다.
한강 한가운데까지 카약을 타고 가 흐릿한 달 아래에서 맥주를 즐기기도 했고, 모르는 남자의 손을 잡고 열정적인 살사 춤을 추기도 했다. GX 프로그램을 통해 요가, 발레핏도 배우고, 줌바라는 새로운 운동을 알게 되기도 했다. (줌바는 정말 신나고 재밌다.) 몸짱이 되고 싶었던 마음을 다시 되새기며 PT를 등록해 웨이트 트레이닝, 일명 쇠질에 매진하기도 했다. 마카오에서 번지점프를 하고 아빠한테 혼나기도 했고, 다신 '그런 거'하지 말라는 아빠한테 거짓말을 하고 타우포에서 스카이 다이빙을 하기도 했다. (이 이야기는 <브리즈번에서 타우포까지> 연재에서)
남자 친구를 만나고선 둘이 등산을 하기도 했고, 스노 보드도 같이 배웠다. 둘 다 활동적인 걸 좋아해, 가끔은 스포츠몬스O 같은 스포츠센터에서 농구나 사격을 하며 데이트를 즐기기도 한다. 그리고 아이슬란드에서 캠핑을 하며 오로라를 보고, 사막에서 보드를 타보자고 약속했다.
그렇게 운동은, 아니 아픔은 내 삶을 바꾸고 나를 변신시켰다.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했고, 좀 더 적극적으로 살게 했다. 만약 그때 아프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나중에', '언젠간'이란 말로 하고 싶은 것들을, 살고 싶은 삶을 미루고, 마른 비만의 집순이로 살았을 수도 있다. (물론 지금도 집에 있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팠던 게 행운이었단 건 아니다. 여전히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녀야 하고, 아직 완치가 된 게 아니라 매번 마음 졸이며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수술했던 부위도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좌우 균형이 잘 안 맞고, 운동할 때도 그 부분이 조금 신경 쓰인다.
하지만 아픈 것도 나고, 남들 눈엔 마냥 건강해 보이는 모습도 나다. 나는 여전히 주 2-3회는 필라테스나 발레를 하며 몸을 가꾸고, 또 마음을 가꾼다. 예전에는 운동을 하며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이젠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푼다. 운동이 없어서는 안 될 내 생활의 일부가 된 것이다. 아, 운동의 단점은 뭐냐고? 음... 사람들이 나를 엔지니어가 아닌 필라테스 강사로 본다는 점?(ㅎㅎ)
내일은 약속이 있어 운동을 못 간다. 슬프지만, 수목금에 연달아 운동을 하는 걸로 마음을 달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