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사이트에 '집주인' 표시가 있는 이유

결혼 준비 최고봉, 집 구하기 #2

by Dahl

*. 이전 글



강렬했던 동네 맛집의 기억을 뒤로하고 근처 커피숍에 앉아 재정비를 하기로 했다. 때는 무더운 여름이었고, 점심 한 끼 먹자고 찾아간 맛집은 너무 멀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일명 아아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역 근처 별다방에 들어가 마침 어플에 저장되어있던 원 플러스 원 쿠폰으로 아아 두 잔을 시켜놓고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금방 나온 시원한 커피를 쪽-쪽- 들이키며 한숨 돌리고 있자니, 부동산 아저씨의 전화가 왔다.

아, 근처예요. 지금 갈게요.




길을 건너 다시 역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발을 돌렸다. 좀 더 걸어가자 차가 눈에 띄게 줄었고, 우측으론 넓은 공원이 펼쳐졌다. 2025년엔가 생긴다는 지하철역의 위치를 가늠하며 더 걷다 보니 큰 아파트 단지가 나왔다. 그리고 도착했다는 전화를 걸려는 찰나, 상가 1층 가게에서 아저씨가 문을 열고 나와 우리를 맞이했다.


원룸 월세나 구하러 다녀봤지, 오피스텔도, 빌라도 아닌 아파트를 사러 간 건 처음이라 순간 긴장이 됐다.

집을 살 것처럼 보이진 않아
무시당하는 거 아냐?


괜한 걱정이었다. 아저씨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시며, 신혼집을 구하려는 우리를 첫 번째 집으로 안내했다.



첫 번째 집은 젊은 부부와 아직 옹알이 중인 쌍둥이들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좁은 복도를 지나니 적당한 채광의 거실이 나왔고, 두껍게 깔린 매트 위로 아이들이 보행기를 타고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었다.


뭘 봐야 할지 잘 몰랐고, 한편으론 남의 집이란 생각에 조심스러워 잠시 그렇게 거실에 서 있다, 아저씨가 이끄는 대로 방을 하나씩 찬찬히 살폈다. 아이들 짐인지 방마다 물건이 제법 쌓여, 당시 살던 곳에 비해 3배가 넘는 넓이였지만 여유롭단 생각이 안 들었다.


집주인 부부도 우리를 따라다니며 이것저것 설명을 해줬다. 이사를 가기로 한 이상 집을 팔아야 했기에, 부동산 아저씨보다도 열심히 집을 홍보(?)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중에 집을 팔 걸 생각해 못을 박는 대신 액자 레일이란 것을 설치했다고 했다. 안방을 둘러볼 땐 '아, 아까 나가면서 에어컨을 환풍으로 돌려놓고 갔네~'라며, 막 덥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시원하지도 않던 집을 대신해 변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집주인보다 덜 인상적인 집이었다. '여기 들어오면 쌍둥이 생겨요~'라는 말을 뒤로하고, 두 번째 집으로 향했다.



두 번째 집은 중년의 부부와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자식 둘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첫 번째 집보다 좀 더 넓었고, 살짝 각져 애매한 곳을 화장대로 만들어 공간 활용도가 높은 곳이었다. 거실과 부엌이 직사각형으로 이어져 있는 건 전 집과 같았으나, 베란다와 대피공간이 띄어져있지 않고 부엌 뒤편에 모여있는 게 맘에 들었다.


무엇보다도 첫 번째 집에 비해 확실히 더 크고 넉넉한 느낌이었다. 실제 평수는 3-4평 정도로 크게 차이가 나진 않았지만, 매트 없이 시원하게 트인 확장형 거실에 공간 구획이 잘 되어있었기 때문이리라. 우리 예산보다 가격이 높아 아저씨가 그냥 한 번 보라며 데려간 집이었는데, 이렇게 눈이 높아지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 집은 할머니와 함께 한 가족이 전세로 살고 있는 곳이었는데, 전세여서인지 그 전 집들과 확실히 달랐던 게 있다. 바로 집에 대한 홍보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를 따라다니며 좋은 점을 늘어놓던 집주인들과 달리, 세입자는 우리가 묻는 것에만 답할 뿐 첨언을 하지 않았다. 계약이 만료되면 다음 세입자가 들어오는지와 상관없이 그냥 나가면 되니, 그럴 필요가 없었을 거다.


부동산 사이트에 '집주인' 표시가 왜 있는지도 알게 됐다. 전의 두 집에서 입을 모아 자랑하던 게 바로 베란다에 탄성코트를 해서 곰팡이가 안 생긴단 거였다. 그땐 그냥 그런가 보다-하고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실제로 탄성코트를 하지 않아 곰팡이가 가득한 베란다를 보니, 탄성코트가 정말 중요하구나-란 생각과 함께 주인의 거주 여부에 따라 확실히 집 상태가 다르단 걸 깨달았다.


물론 시간에 따른 집의 상태 변화는 전세인지, 자가인지-보다는 사는 사람의 성격, 습관 등의 영향을 더 크게 받을 것이다. 하지만 첫 입주 때 본인이 살 집엔 베란다에 탄성코트를 하거나, 바닥을 마루나 타일로 바꾸는 등 옵션을 추가하지만, 전세로 내놓을 집엔 별다른 옵션을 추가하지 않고 선택할 수 있다면 자재도 저렴한 것으로 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이 점을 감안하면, '주인이 살아서 집이 깨끗해요~'란 말이 아주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




세 번째 집을 끝으로 다시 부동산 사무실로 가 잠시 목을 축이며 아저씨와 담소를 나눴다. 곧 가까운 곳에 지하철이 생길 거고, 저 앞에 관공서가 있어서 사람도 많으며, 그래서 아파트 가격이 오를 거라는 이야기였다. 아직 지하철 공사는 시작도 안 했고, 관공서는 큰길을 하나 더 건너야 했지만 말이다.


다시 연락을 드리겠단 말을 남기고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일부러 왔던 길과는 다른, 아저씨가 알려준 지름길로 가보기로 했다. 아파트 단지 안을 통과하는 길이었는데, 도로와 멀어져 차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고 할머니들이 단지 내 벤치에 두런두런 앉아있는 모습이 마냥 평화로워 보였다.


하지만 외부와 차단되어 고립된 마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니, 어두운 밤 나무가 울창한 길을 혼자 걸을 생각에 살짝 무서워졌다. 천천히 걸어 지하철역에 도착하니 15분이 조금 넘었다. 매일 이 길을 걸어 지하철을 타고, 또 한 번 갈아타야 했다.




*. 표지 사진 : https://unsplash.com/@pujohn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