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첫 임장기 : 살기 좋은 동네엔 맛집이 있다

결혼 준비 최고봉, 집 구하기 #1

by Dahl

화장실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한 기사를 봤다. '집 사는 신혼부부 늘어..' 집값이 오를 것을 생각해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30-40대, 특히 신혼부부가 많다는 글이었다.


바로 우리 이야기였다.




예의 그 '생선구이 집' 사건 후로 우리 맘 속엔 '결혼'이란 단어가 자리 잡았고, 자연스레 결혼을 하고 같이 살 집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다. 그러게, 집은.. 어떡하지?


고향인 광주를 등지고 상경해 자취생활만 어언 9년. 1-2년마다 다니는 이사에 지칠 무렵이었고, 남자 친구도 나와 비슷한 처지였다. 되든 안되든 일단 매매로 알아보자는 데 의견이 합쳐졌다. 그동안 회사에서 점심시간에 주워듣던 '임장'이란 걸 해야 할 순간이었다.


임장 : 현장을 가보는 것. 부동산 답사.




때는 여름, 첫 임장지는 성남이었다. 판교가 직장인 나를 배려한 것도 있지만, 비싸기만 한 서울의 다 스러져가는 아파트보단 가성비가 좋은 곳을 선호한 남자 친구의 선택이었다. 동네 구경도 할 겸 일찍 도착한 우리는 먼저 점심을 먹기로 했다. 근처에 맛집이 많은지도 확인해봐야 했으니까.


포탈에 'xx맛집'이라고 치고 검색을 하는데, 딱히 눈에 띄는 곳이 없었다. 대부분 고깃집이라 점심으로 먹기엔 부담스러웠고, 그 외는 대형 마트 안에 자리한 프랜차이즈 상점들뿐이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검색을 더 해보다 티비에 나왔다는 중국집을 찾았다. 탕수육과 짬뽕이 맛있단 후기가 많았고, 무엇보다 짬뽕의 종류가 다양해 전문점의 느낌이 났다. 짬뽕을 즐기는 나는 바로 고! 를 외쳤다.



과연 중국집에 도착하니 사람이 많았다.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가는 길 내내 인적이 드물고 가게는 문을 닫아 산한 기분이 들 정도였는데... 사람들이 다 여기 와 있던 건가? 싶을 정도였다.


지하로 안내받은(지하에도 자리가 많았다!) 우리는, 엄마와 함께 온 남매 옆에 자리를 잡았다. 내부는 활기가 넘쳤고, 테이블마다 탕수육이 하나씩 놓여있었다. 맛집을 제대로 찾아왔단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여기 탕수육 하나, 짬뽕 하나요!"


곧 음식이 가득 담긴 접시들이 1층에서 전용 엘리베이터에 실려 내려왔고, 그중 일부는 우리 테이블에 놓였다. 한 술 훔친 얼큰한 짬뽕 국물의 맛은 평타 이상이었고, 튀김옷을 얇게 입혀 고기의 식감을 살린 탕수육도 맛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곧 자주 가는 동네 중국집의 짬뽕과 탕수육이 더 맛있단 데에 동의했다. 입은 만족스러웠지만 배가 적당히 차자 슬슬 질렸고, 결국 그릇을 다 비우지 못했다. 어지는 주말, 화로 주문해 먹는다면 괜찮은 아점이 될 것도 같았지만, 배달은 하지 않는 곳이었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나오는데 건너편에 같은 이름의 빈 가게가 보였다. 자세히 보니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한 대기공간이었다. 두 개 층을 다 쓰고, 대기실까지 따로 있다니! 먹을만한 짬뽕과 탕수육을 내오는 이 가게가, 바로 이 동네 제일가는 맛집이었던 것이다.


살기 좋은 곳엔 맛집이 많아야 하는데, 제일가는 맛집이 동네 중국집보다 못하다니... 첫인상에 빨간 경고등이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 표지 사진 : Photo by Charles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