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준비 최고봉, 집 구하기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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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폭 베란다에 이미 마음을 뺏겼지만, 몇 억짜리 집을 덜컥 계약할 순 없었다. 예정대로 길 건너 연식이 비슷한 다른 아파트도 가 보기로 했다. 역시 광폭 베란다가 있는 데다, 평수가 열 평정도 더 작은 탓에 가격이 오천만 원이나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언덕을 내려와 횡단보도를 건넌 후, 계단을 한 번 더 내려가야 했다. 먼저 본 아파트가 높은 지대에 있다면, 이 아파트는 반대로 낮은 지대에 있었다. 그 때문인지 아님 가까이 붙은 동들 때문인지, 여름 한낮인데도 곳곳에 그늘이 져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걸으며 이것저것 얘길 나누다, 우리가 뷰를 중시한단 걸 알게 된 중개인 아주머니는 몇몇 집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이 아파트 숲에서 그나마 뷰가 괜찮다는 곳으로 말이다. 그중 한 군데는 풀 인테리어를 한 지 얼마 안돼, 당장 들어와 살아도 될 정도였다.
하지만 서너 군데를 돌아본 후에도, 여전히 첫 번째 집이 잊히지 않았다. 동남향인지 서남향인지 모를 애매한 방향에 그나마 나은 뷰는 단지 가운데의 놀이터 뷰인 곳보단, 정남향에 단지를 감싼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 단연 좋았기 때문이다. 왠지 그곳에서라면 몇 년이든 오랫동안 만족하며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평수가 열 평이나 큰데 가격은 오천만 원밖에 차이가 안 난다는 것도 메리트로 다가왔다. 어찌 보면 가격 차가 얼마 안 나는 이유(단점)가 있겠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언덕이란 점만 빼면 빠질 게 없는 아파트이기에 저평가가 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덩치가 큰 만큼 조금 느린 것뿐이라고.
중개소로 돌아와 바로 가계약을 하기로 했다. 내 얼굴과 핸드폰 화면을 번갈아 보며, "진짜 이체해? 한다?"라고 제차 묻는 남자 친구에게 yes! 를 날렸다. 그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짐짓 단호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실은 넓은 집에 살게 된다는 설렘과 함께 이게 정말 잘하는 짓인가-싶은 걱정이 뒤섞인 마음이었다.
중개소 문을 나서는데 문득, 대형 평수의 아파트를 사려면 그곳의 주차장에 가보라고 했던 어느 유투버의 말이 떠올랐다. '나 OO 대형 평수 살아~'라고 하면 다른 사람들이 우와-할 정도로 부자들이 살고 있는 집이라야 하기 때문이라나.
아직 큰 일을 저질렀다는 흥분이 가시지 않은 채, 다시 언덕을 올라 주차장으로 갔다. 과연 눈을 돌리는 족족 외제차가 있었다. 간혹 국산 브랜드의 경차도 보이긴 했지만, "에이, 세컨드카(second car)겠지~"라고 생각하며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잔금을 치르러 간 날. 매도인을 마주한 우리는 살짝 미안한 마음이었다. 가계약 후 잔금을 치르기까지 고작 2개월 반, 그동안 아파트 가격이 수천만 원이나 올랐기 때문이다. 덕분에 중간에 안 팔겠다고 하면 어쩌나-걱정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잔금을 치르고, 곳곳에 우리의 도장이 찍힌 계약서를 보니 마음이 벅찼다. 직장생활 오 년 만에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뤘다는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그때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단 사실에 더 행복했다.
그렇게 난 수용성*에 입성한 삼십 대 유주택자가 되었다.
*. 수용성 : 수원, 용인, 성남을 일컫는 줄임말
*. 표지 사진 : Photo by bruce mars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