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게 그런 사람이 나고, 내게 그런 사람이 너였으면...
입사한 지 얼마 안 돼 큰 회식에 갔을 때였다. 같은 서비스를 담당하는 여러 팀이 모여 50명이 조금 넘는 사람이 한 자리에 모였고, 고기에 와인을 곁들이며 이야기를 나누다 동갑인 친구들이 몇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한 명이 동갑끼리 한 번 모이자는 의견을 냈고, 그로부터 6개월 뒤 우린 첫 모임을 갖게 됐다. 유부 한 명, 솔로 한 명, 그리고 연애 중인 사람이 둘이었고 나도 그중 하나였다. 자연스레 연애와 결혼 이야기가 오갔다. 유부인 동료는 임신 7개월 차로 새로운 만남을 준비하고 있었고, 솔로인 동료는 1년의 시간이 지나 이제 새로운 사람을 만날 준비가 됐다고 했다.
나와 같이 연애 중이던 다른 한 동료는 얼른 결혼을 하고 싶다며 6살 연하의 여자 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집에서 너무 귀한 딸이라 빠른 시일 내에 결혼하긴 힘들 것 같다며 꺼낸 이야기는 살짝 충격적이었다.
약속이나 회식이 있을 땐 주도해 인증숏을 찍어 보내라고 하고, 30분마다 연락을 하지 않으면 다음날 싸움이 자동 예약된다는 얘기였다. 셀카를 찍는 게 익숙지 않아 다른 사람이 찍어준 사진을 보내는 걸로 어렵게 협상했다는 말엔 다들 혀를 내둘렀다.
연락 기한이 30분이라는 데 놀라 다른 이들에 동조하긴 했지만 사실 속으론 뜨끔했다. 그 자리에선 짐짓 쿨한 척하며 "그냥 자리 옮길 때만 연락하면 되는 거 아냐?"라고 했지만, 그에게도 1시간 간격의 연락을 강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만 좀 길었을 뿐 도긴개긴이었다.
"우린 왜 이렇게 연인의 연락에 집착하는 걸까?"
더 들어보니 예의 그 여자 친구는 남자 친구가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는 와중에도 본인을 생각해줬으면 하는 마음에 그런 부탁(혹은 요구)을 했다고 한다. 돌이켜보니 나도 그랬다. 쇼윈도에 걸린 셔츠를 보며 자신을 떠올렸으면 좋겠다는 여느 노래 가사처럼, 언제나 나를 처음으로 떠올려줬으면 하는 마음이 근저에 깔려있었던 것이다.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그의 일상이 궁금한 것도 있었지만, 맛있는 걸 먹을 땐 나중에 나와 같이 먹을 생각을 하고, 내가 아플 땐 집에서 혼자 힘들어할 생각에 말이라도 밥이 잘 안 넘어간다고 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더 컸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특히 내가 충분히 행복하지 않을 때 더 존재감을 드러냈다. 다음 메시지를 기다리며 핸드폰을 들었다 놨다 할 때는 보통 그는 밖에서 친구나 직장 동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난 집에서 TV를 동반 삼아 라면으로 끼니를 때울 때였다.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는, 하루 중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건만 그때는 그게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것이다. 어느새 그런 혼자만의 휴식보단 그와 함께하는 또 하나의 일과가 더 행복한 시간이 되어버린 걸까?
동료는 그 전 여자 친구를 위해 회사를 옮겼다 새 회사에 출근을 하기도 전에 차인 전력이 있지만, 지금의 여자 친구를 위해 이번엔 집을 옮길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다. 처음엔 두 번째로 충격적인 이야기라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하나보다 둘이 행복한 동료는 이미 잦은 연락에 숨은 행복의 우선순위를 간파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 쇼윈도를 운운하는 그 노래는 바로 김경호의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이다. 앨범 이름이 <1997>로 무려 20년도 더 된 이 곡의 가사를 공유하고 싶다. 누군가는 잠시 아련한 추억에 잠길 수 있도록...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 김경호
아무 때고 네게 전활 해 나야 하며 말을 꺼내도
누군지 한 번에 알아낼 너의 단 한 사람
쇼윈도에 걸린 셔츠를 보면 제일 먼저 네가 떠올릴 사람
너의 지갑 속에 항상 간직될 사람
네게 그런 사람이 나일 순 없는지 네 곁에 있는 내 친구가 아니라
언젠가 그가 너를 맘 아프게 해 너 혼자 울고 있는 걸 봤어
달려가 그에게 나 이 말해 줬으면
그대가 울리는 그 한 여자가 내겐 삶의 전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