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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밤일기 Dec 04. 2018

어쩌면 내가 가장 좋아할지도 모르는 순간들

몽골의 스위스, 욜링 암을 가다

한국인들에게는 독수리 계곡으로 더 잘 알려진 곳, 욜링 암. 스위스를 연상시킨다는 소문이 자자했던 그곳은 내가 평소에 상상해 오던 몽골의 모습과 꼭 같은 형태를 띠고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푸릇푸릇한 느낌이 만연한 곳이었다.


우리는 계곡으로 향하기 전, 가이드 언니에게 이 지역에 대한 설명을 간단히 들었다.


“언니. 이 그림은 독수리예요? 여기 독수리가 많다던데.”

“욜은 수염수리라는 뜻이에요. 비슷하게 생겨서 한국 사람들은 그냥 독수리라고 하더라고요.”

“아, 그럼 이게 수염수리라고요?”


안내판 그림 속의 새는 독수리가 아닌 수염수리라는 이야기와 그래서 ‘욜링 암’이란 수염수리를 뜻하는 ‘욜’과 계곡을 뜻하는 ‘암’이 합쳐져 ‘수염수리 계곡’이라는 뜻이라는 이야기들을 잠시 듣고 계곡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기온이 낮아졌다. 그래도 순간순간의 풍경들이 너무나 아름답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높이 솟은 바위들 사이로 작은 계곡이 흐르고, 우리는 그 계곡을 따라 더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갈수록 지형은 조금씩 험해지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조각품을 파는 사람들이 있었고 이런 곳에 왔으니 소비를 하고 가야 한다며 작은 사치도 부렸다. 여기는 모든 것이 자유로운 곳이니 지금까지의 것들보다 조금 더 멋대로 지내보겠다고 다짐한 지 오래였다. 그런 우리의 주변으로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거대한 돌산 사이로 햇빛이 비쳐오던 순간들이 그립다. 어쩌면 내가 여행에서 가장 좋아하는 순간일지도 모르는 것들은 대개 햇빛이나 별빛과 함께한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햇살에 사방이 따뜻한 색으로 물든다거나 쏟아지는 별빛에 어린 왕자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 주변의 모든 것들이 다가와 행복한 이야깃거리를 속살거리는 그 순간들 말이다. 괜히 감성이 차오르고, 어쩌면 너무 행복하다고 마음속으로나마 울게 될 때. 나는 그런 순간을 가슴 깊이 사랑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종종 카메라 세팅을 붉은 톤으로 맞춰둔다. 노란 색감이 왜 그렇게도 좋은지. 찍고 싶은 풍경 아래에 좋은 모델들이 함께하는 것은 꽤 드문 일이어서, 나는 이번 여행에서 그런 드문 순간들을 제법 많이 만났음에 감사하곤 한다.


한참을 걷다 보니 하늘에 웬 새가 보였다. 까마귀라고 여기기엔 너무 큰 것들. 그 순간, 가이드 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하늘에 욜이 보여요! 수염수리!”


욜링 암에서 욜과 산염소를 보면 운이 좋은 것이라 했다.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을 가르는 욜의 모습을 보며 다음 생에는 저런 아이들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저기 하늘의 아이들처럼 아무런 방해도 없이 하늘을 훨훨 날아보고 싶었다. 내 오랜 꿈 중 하나였던 ‘다시 태어나야 한다면 부잣집 고양이로 태어나기’가 잠깐 흐려지는 순간이었다.



좋은 풍경 아래엔 좋은 것들이 함께하기 마련이다. 욜링 암은 참 아름다운 곳이었으나, 그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그곳을 함께 거닌 사람들이었으며 또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나는 앞에 보이는, 제법 깊은 계곡에 겁을 잔뜩 집어먹은 상태였다. 가이드 언니가 옆에서 붙잡아주며 올라갈 수 있도록 해줬지만 긴장한 발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해줄 리가 없었다. 번번이 미끄러지고 또 넘어지며 내 앞을 가로막는 계곡, 아니, 계곡 옆의 바위 앞에서 헤매던 때였다. 


“Here.”


그렇게 끙끙대는 내 앞에 웬 손이 하나 뻗어져 왔다. 마침 그 바위를 넘어가려고 했던 외국인이었다. 어느 나라 사람인지, 어디서 왔는지 알 수는 없지만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어 붙잡아주었던 그들. 


아래에선 가이드 언니가 나를 받쳐주고 위에선 웬 외국인들이 붙잡아 끌어주는, 상당히 우스꽝스러운 형태였지만 왠지 든든하고 기분이 좋았다.


나는 그렇게 나의 키보다 조금 높았을 바위를 무사히 넘었다. “땡큐!” 하고 말을 건네니 대꾸 없이 웃으며 목례하던 그들. 그렇게 옷깃만 스친 인연들에게 참 많은 도움을 받곤 했던 곳이었다.


욜링 암을 거닐며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한 기분, 혹은 꿈에 그리던 이상형을 만난 것 같은 기분에 잔뜩 사로잡혔다. 내가 보고 싶었던 몽골의 모습이 바로 눈앞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고는 이곳에 산다는 산염소를 보지 못한 것이었다. 자기가 죽을 때를 미리 알고 높은 절벽으로 올라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는 산염소. 대체 어떻게 죽을 순간을 직감하는 것인지, 또 그곳에서 염소들은 어떤 생각을 할지 괜스레 궁금해졌다.


우리는 다시 숙소로 향했다. 아쉬움이 남긴 했지만 그것보다 더 아름다운 것들을 보았기에 충분히 만족스러운 하루였다. 그리고 그때였다.


“얘들아! 저기 산염소가 보여요. 저기 산염소 있어요!”


약간의 미련조차 남지 않게 하겠다는 듯, 멀리 바위산 위에 서 있는 산염소가 포착되었다. 우리를 위해 사방을 살피던 기사님들의 멋진 결과물이었다. 잔뜩 들떠 소리 지르는 우리에게 자기가 가지고 다니던 쌍안경을 내밀던 우리의 기사님, 토모루. 그분들의 숨겨진 노력 덕에 욜링 암에서는 그 어떤 아쉬움도 남기지 않고 돌아올 수 있었다. 굉장히 충만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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