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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밤일기 Nov 27. 2018

상상 이하, 혹은 상상 이상의 몽골

차강 소브라가의 첫 인상

맑은 건지, 흐린 건지 구분이 안 되는 날씨가 우리 앞에 펼쳐졌다. 곧 비가 올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급하게 바깥으로 달려 나왔다. 그렇게 만난 차강 소브라가의 첫인상은 단순했다. 조금 애매한가, 하는 마음. 처음 마주했을 땐 ‘이게 멋진 건가?’ 하는 의아함이 앞섰다. 멋있는 것 같긴 한데 이게 끝인가, 싶기도 한 오묘한 기분. 어쩌면 상상 이하의 모습일 수도 있겠다며 마음을 다잡았다.


일단, 무지 넓다는 것 하나는 잘 알겠다. 이것이 우리말로 ‘하얀 불탑’인 차강 소브라가의 첫인상이었다.


바람이 온 사방에서 강하게 불어댔다. 곧 얼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옷을 여미고 주위를 조금 더 살폈다. 얇은 셔츠 사이로 파고드는 바람이 제법 매서웠다. 바람도 조금 피할 겸, 제대로 구경도 할 겸 아래로 향했는데, 그렇게 내려가다 보니 차강 소브라가의 진면목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조금 전까지 서 있었던 곳은 삐죽 솟아오른 절벽이었으며, 아직 비에 젖지 않아 마른 모래들은 하얗고 붉은 색을 띠며 제 위용을 뽐냈다. 어두운 돌들로 이루어진 바가 가즈링 출루와는 다르게 하얀 모래가 곳곳을 장식한 아름다운 절벽이 눈에 들어왔다.


붉거나, 혹은 하얀색으로 가득한 지형 덕분에 화성이나 중생대 언젠가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마치 공룡이 살았을 것 같은, 혹은 아주 척박한 외계 행성의 어딘가를 보는 것 같은 기분. 그렇게 한참을 머물며 우리는 바위 위로 올라가기도 하고, 언덕 위를 오르기도 했다.


차강 소브라가를 면면이 살피기 위해 여러 방향으로 움직이며 그곳을 구경했는데 비슷한 듯 다르고, 다른 듯 비슷한 곳이었다. 웅장하면서도 극적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아주 멋진 곳이다.높은 바위로 올라가면 아래로 펼쳐진 울퉁불퉁한 지형이, 아래의 언덕으로 내려가면 삐죽삐죽 솟은 암벽이 보였다. 한눈에 모든 것을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넓고 또 넓었다. 외계인이 지구에 떨어진다면 꼭 이런 곳에 떨어지지 않을까. 알려진 것보다 알려지지 않은 게 더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러나 차강 소브라가는 정말 볼 게 없었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 울퉁불퉁한 지형, 옆에 솟은 암벽. 처음엔 분명 숨겨진 게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직접 돌아다녀보니 그저 보이는 게 전부인 장소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발을 옮길 순 없었다. 다른 이유에서라기보다는 미끄럽기도 했거니와 너무 넓은 터라 자칫 길을 잃거나 발을 헛디디기 십상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강제로 발을 붙들려 차강 소브라가의 어딘가에 잠시간 머무르게 되었을 때, 할 것이라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며 혼자 생각하는 것밖에 없었기에 이내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들었다. 별 특별한 생각은 아니었다. 이 풍경과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리는 아기 공룡 둘리라거나 중생대의 공룡 같은 것들이 그 생각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렇게 이어진 생각은 흐르고 흘러,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풍경은 한국의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이겠구나,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이렇게, 정말 아무것도 없는 풍경을 언제 어디에서 또 만나볼 수 있겠느냔 생각까지 해내고서야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실감했다. 내 생각과는 다른 몽골, 그러나 그렇기에 더 소중한 이곳.


몽골 하면 사람들은 대개 초원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직접 만난 몽골은 푸릇푸릇한 초원이라기보다는 어쩌면 척박해 보일 수도 있는 풍경들의 연속이었다. 풀은 손가락 한 마디 정도로만 자라났고, 풀의 비율만큼이나 황토색 모래의 비율도 높았다. 물론 북쪽 지대로 올라가면서 조금씩 달라지긴 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래서 더 놀라웠다. 내가 상상하던 모습과는 다른 몽골이, 마냥 평평하기만 할 것 같았던 몽골의 초원 위에 나타난 이런 지형들이, 그래서 더더욱 비현실적인 풍경의 일부가 되어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이.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땅 위에 비죽이 솟아오른 돌산. 멀리서 볼 땐 신기루라고 착각할 만한 모습이기도 했다. 누군가 옮겨 둔 것처럼 갑작스럽게 튀어나오는 모든 것.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고, 어울리지 않는 듯 어울리는 참 묘한 곳이다. 그러니까 순간순간이 마법 같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래서일까, ‘지금 이 순간, 마법처럼’ 하는 노래 가사가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오늘의 주제곡 되시겠다.


또다시 만난 어워의 주변을 세 바퀴 돌며 다 잘 되기를, 모두 건강하기를 빌었다. 일단 많이 빌어놓으면 그중 하나는 이루어지지 않을까. 워낙 이것저것 바라는 게 많은 성격인지라 소원의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하기로 했다. 뭐든 이루어지기를.



보정하지 않아도 합성처럼 보이는 풍경 속, 제대로 씻지도 못해 질끈 머리를 올려 묶은 내 모습이 새삼 행복해 보인다. 그 풍경 속에서 벗어나 다시 익숙한 곳으로 돌아온 나는 여전히 그때를 그리워하고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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