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만남은 인연을 의미한다고 했던가요
“이 줄, 몽골행 비행기 체크인 줄 맞나요?”
인천공항을 헤매다가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에게 문득 그런 질문을 했다. 손에 든 빨간 우산이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그냥 그렇게 아주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의 애인인 듯한 남자가 합류하는 것을 끝으로 대화는 실없이 끊어졌다.
고작 그것뿐이었다면 거기에서 끝날 인연이었을 것이다. 인천공항 어딘가에서 빨간 우산을 든 커플을 본 적 있었지, 정도로만 떠올렸을 인연. 어쩌면 이런 대화를 했다는 사실조차도 잊었을 법한 아주 사소한 만남.
체크인을 한 후 탑승구로 이동했다. 같은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이었기에 탑승구에서 그들을 만난 것은 그리 특별하지도, 신기하지도 않았다. 내 앞자리에 앉아 사진을 찍고 장난을 치는 모습에 ‘서로를 참 좋아하나 보다’ 하고 다시 관심을 끊었다. 같은 비행기에 타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저 사람들은 유독 눈에 자주 띈다는 생각만을 가진 채였다.
다시 비행기에 올라타 기나긴 출발 지연에 시달리며 그들을 보았다는 사실을 잊었다. 늦은 새벽, 비행기가 날아올랐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몽골에 도착했다. 짐을 찾는 곳에서도 그들은 단연 눈에 띄어서, 나는 또다시 그 사람들을 인지하고야 말았다. 정말 지겹게도 마주치네, 이런 것도 인연이라고 볼 수 있나. 혼자 속으로 웃으며 마침 나온 내 배낭을 짊어지고 밖으로 나갔다.
만나야 할 사람들이 있었다. 이전에 예약해 둔 여행사의 사람들이었다. 픽업을 위해 그들은 이 새벽 나절에 공항까지 나와 자신들이 태워야 할 사람들을 애타게 찾고 있을 것이었다. 번듯한 대기 공간조차 없어 시장통처럼 북적이는 공항 안에서 나는 내 여행사의 이름을 적은 종이를 찾아 이리저리 헤맸다.
그러다가 여행사 사람들을 찾았고, 그들은 나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왔다. 빨간 우산을 들고 있던 그 커플이었다. 그때야 정말 인연일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던 듯하다.
서늘한 몽골의 새벽 공기를 느끼며 아무런 대화도 없이 자동차가 있는 곳까지 이동했으나 차 안에서만큼은 대화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희 아까 공항에서도 봤죠?”
“네. 여행 오셨나 봐요.”
“네, 어디로 가세요?”
“고비 쪽이요. 9박 10일 예정이에요.”
“아, 저희는….”
그런 대화들을 나누었던 듯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굉장히 서먹했던 터라 대화는 이어지다 끊어지고, 끊어지다 다시 이어졌다. 한참을 그렇게 침묵과 대화가 반복될 무렵 우리는 나머지 일행이 기다리고 있는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했다. 즐거운 여행을 하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신기한 인연이다, 하고 돌아섰다. 준비를 할 게 많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뭔가를 준비하고 차에 올라타 다른 일행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는 계속 이동이었다. 이어지는 일정에 나는 자연스럽게 그들과의 만남을 잊어갔다.
“어?”
“안녕하세요!”
그리고 우리는 첫 번째 목적지에서 다시 만났다.
“우리랑 같은 코스래요.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가야 할 코스와 숙소가 똑같아요.”
“그럼 그냥 같이 다닐까요? 차량과 숙소만 따로 쓰고, 나머지는 그냥 같이하는 거 어때요?”
“좋죠!”
만날 인연은 어떻게든 만나게 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나는 이곳에서 실감했다. 인천에서, 탑승구에서, 몽골의 공항에서, 같은 게스트 하우스에서. 네 차례나 만나 놓고서도 일회성 인연일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해왔으나 그 모든 것들이 지금의 이 순간을 위한 예고편이었음을 그때야 어렴풋이 깨달았던 것이다.
우리는 함께 여행을 시작했다. 셀프 웨딩촬영을 위해 왔다는 그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내 사진을 부탁했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끼니때마다 함께 모여 식사를 했다. 노래를 틀어놓고 춤을 추고, 가끔은 노래 없이도 춤을 췄다. 그러다가 종종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이어진 인연이었다. 한국에 돌아와선 아주 가끔 연락을 하고, 그것보다는 더 자주 SNS를 통해 서로의 소식을 확인하곤 했다. 그때의 좋은 추억들을 되새기는 것보다 눈앞에 다가온 각자의 삶이 더 중요했던 탓이다. 우리의 여행에 늘 함께했던 그들의 빨간 우산이 이따금씩 떠오를 때면 ‘그 사람들은 잘 지내고 있나’, 하고 궁금해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가 두 사람의 결혼 소식을 들었다. 왠지 둘의 결혼식만은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터라 주섬주섬 채비를 해서 서울로 올라갔다. 이리 돌고 저리 돌아 결혼식장이었다. 식장 여기저기에 우리의 추억이 있었다. 7개월이 지나 다시 만난 우리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손을 파닥대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결혼식 내내 그들은 행복해 보였고, 종종 틀어주는 영상에 내가 기억하던 모습들이 보여 반가웠다. 그간의 회포를 풀 수 있는 자리는 아니었던 탓에 우리는 훗날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결혼식에 사용되었던 꽃을 한 아름 받아 들고 집으로 내려오는 길, 어쩌면 이들과는 굉장히 드문드문, 그러나 오래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작은 확신이 들었다.
좋은 인연은 어떻게든 이어지기 마련이다. 몇 번을 스쳐 보내고서야 인연임을 눈치챘던 우리가 비로소 서로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었음을 확신하던 날, 나는 아주 기분이 좋았다. 만날 때마다, 대화할 때마다 기분 좋아지는 좋은 지인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나를 든든하게 했다.
몽골의 비는 좋은 인연을 데리고 온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우리의 몽골 여행은 늘 비와 함께였으므로, 이들과의 만남 또한 몽골의 비가 가져온 좋은 인연임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