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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밤일기 Jan 01. 2019

천둥 번개 치던 몽골의 날씨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건 아니겠지요?

비가 오는 밤, 게르 안으로 떨어지기 시작한 빗줄기에 놀라 이사를 시작한 건 태어나서 처음 하는 경험이다. 게르가 침수될 위기에 처해 정신없이 방을 옮겼다. 그러니까, 지금 이 상황이 참 기가 막힌단 소리였다.




우리의 여행은 늘 비와 함께였다.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비구름을 보았다. 가까이 있든, 멀리 있든 하루에 한 번씩은 꼭 보았던 비구름. 회색 구름 아래로 떨어지는 회색 빗물의 모습에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상태였다.


바양 작을 구경한 이후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맑던 하늘에 구름이 한두 점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왠지 모르게 답답한 날이었다. 평소와는 달리 비가 쏟아지기를 바랄 정도로 갑갑했다. 마침 마련되어 있는 샤워실에 들어가서 차가운 물로 샤워를 했다. 몸에 닿아오는 차가운 물에 도도록하니 소름이 돋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운했다. 마음 어딘가에 쌓인 먼지가 조금은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유 없이 답답한 날이 있다. 뭐가 답답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목구멍이 꾹 막힌 것 같은 기분에 뭘 먹어도 체할 것 같은 순간들. 마음의 무게가 1그램쯤 무거워진 것 같은 날. 그럴 때면 무엇을 씻어내야 할지 몰라 몸을 괜히 더 문질러 씻는다. 그렇게 열을 식히듯 찬물을 잔뜩 뒤집어쓰면 갑갑한 기분이 조금은 나아지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의 식사는 게르의 바깥에 준비되었다. 점점 몰려오는 구름이 사방을 감싸기 시작했지만 바람은 그리 많이 불지 않아 밖에서 함께하기에 딱 적당한 날씨이기도 했다. 새콤한 김치가 가득 든 제육볶음을 한 입 가득 넣고 우물대는 틈틈이 웃고 떠들어댔다. 그리 중요치 않은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잠시간 순간을 꾸미고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것으로 제 역할을 다할 법한 이야기들 말이다. 가령 어떤 모습들이 재미있었다거나, 혹은 오늘은 왠지 맥주가 먹고 싶다는 말들이었다.


가벼운 이야기가 우리 사이를 가볍게 맴돌고 또 공기 중으로 가볍게 흩어졌다. 이야기들이 흩어진 자리엔 다른 이야기들이 들어서고 다시 흩어졌다. 붙잡을 이유도, 붙잡고자 하는 마음도 없던 순간이었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조차 몰랐기에 흘러간 시간에 대한 아쉬움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떠들던 동안 하늘엔 구름이 쌓이다 못해 잔뜩 무거워지고 있었다. 한쪽엔 맑은 하늘이, 그리고 조금 옆엔 검게 물든 구름이 공존했다. 층층이 쌓인 검은 구름은 무게를 버티다 못해 결국 비가 되어 땅으로 쏟아졌다. 그래,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늘에 구름이 뚫린 것처럼 비가 내렸다. 마치 회오리바람이 하늘로 솟구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로 비가 거세게 쏟아졌다. 


우리가 앉아 있는 이곳을 제외한 대부분의 곳에 비가 내렸고, 놀랍게도 그 두꺼운 구름들 사이로 햇살이 함께 스며들었다.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것들이 공존하던 하늘. 검은 구름을 빛의 베일이 가르고 있는 것 같은 풍경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그 순간 온 세상을 커다랗게 울리는 천둥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놀란 사람들이 하나둘씩 게르의 뒤쪽으로 모여들었다. 저마다 카메라와 삼각대를 손에 든 채였다.


그 순간이 얼마나 경이로웠느냐 하면, 마치 신화의 한 장면을 보고 있다는 착각을 할 정도라고도 할 수 있겠다. 토네이도를 닮은 빗물과 그것보다 더 검은 구름,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햇살과 또 다른 빛으로 사방을 가르던 번개까지. 땅으로 내다 꽂히는 벼락을 볼 때마다 신기함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번쩍, 밝은 빛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사방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고 우리 모두는 그 순간을 담기 위해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땅이 얼마나 넓으면 비 한 줄기 맞지 않고도 저 멀리 떨어지는 번개를 구경할 수 있을까? 이런 경험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귀한 경험임에 틀림이 없다. 그래서 나는 이 비가 굉장히 기꺼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저 비가 이곳에도 쏟아지기를 바랐다. 그렇게만 된다면 왠지 속이 시원해질 것 같다는 이유 모를 확신이 들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기도는 이루어졌다. 열심히 구경하는 동안 착실히 우리의 머리 위로 다가온 비구름은 이내 우리의 게르 위에도 소나기를 뿌려대기 시작했다. 우르르 쏟아지는 빗물과 그 사이로 떨어지는 번개. 쏟아지는 빗물이 마음속까지 스며들었다.


몽골의 햇살에 바짝 말라 답답함이 느껴졌던 마음에 물기가 스미자 지금까지 느꼈던 갑갑함은 거짓이었다는 듯 마음이 개운해졌다. 공기 속의 먼지를 씻어내는 빗물을 보며 나는 나 스스로를 열심히 빨아댔다. 다음날의 일정도 즐겁게 시작할 수 있도록, 힘들고 지친 마음들을 모아 모아 털어냈다. 침대 위로 빗물이 떨어지기 전까지.



바야흐로 대참사의 시작이었다. 게르 천장에서부터 새기 시작한 빗물은 이내 게르 전체로 번져 여기저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급하게 가이드 언니를 불렀고, 그동안 우리의 방은 점점 더 젖어갔다. 동그랗게 천장에 번지는 빗물을 피해 이사를 시작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이 늦은 저녁에 팔자에도 없는 이사를 하다 보니 온몸에 진이 빠졌다.


번개는 쾅쾅 잘도 떨어졌고 우산을 쓰고 돌아다니는 내내 인간 피뢰침이 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움에 떨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한바탕 전쟁을 치른 기분이었다. 다들 잔뜩 어이없는 표정으로 새로 배정받은 각자의 침대에 앉아 헛웃음을 지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며 웃다가, 곧 다시 평화를 되찾았다. 잠깐 지나가는 소나기였던 듯 게르의 천장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잦아들었다. 이렇게까지 쏟아냈으니 다음날은 조금 더 맑기를.


비 냄새를 즐기려 게르의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 먹물을 뿌린 듯 새까맣던 하늘에 달빛이 조금 섞였다. 거짓말같이 평화로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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