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한 날씨

by 정다훈

비 내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장마의 시작. 눈에 띄게 습해진 날씨는 덥다는 기분보다는 사람을 찝찝하게 만드는 것이다. 살이 끈적하게 느껴지는 때에 누군가와 닿으면 달라붙는 듯한 기분이 들어 괜스레 더 예민해지는 그런 날씨. 비 오는 날의 밖은 어지럽다. 모두들 각자의 크기와 색깔로 한 손을 우산에 묶여 평소보다 더욱 좁은 길을 걷는다. 지나가는 차들이 한 번씩 일으키는 웅덩이의 파도는 나에게 튈까 두렵고 미끄러워진 바닥은 괜히 발가락에 힘이 들어가게 한다. 귀신을 믿지 않지만 으스스하고 무거워진 공기에 괜히 아무도 없는 골목길을 걸을 때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나에게 비는 단순히 이런 존재다.


그런 비 내리는 날에는 밖을 나가기 싫어했다. 안에서 구경하는 비는 생각보다 운치 있다. 마냥 무겁게만 느껴지는 분위기가 아니라 무언가 내 집에 새로운 인테리어를 가져다주는 듯한 기분. 오늘도 그런 여유를 즐기고 싶었지만 비에 안 닿으려 최대한 큰 우산을 들고 집을 나섰다. 장마라는 소리에 며칠 동안 우산을 몇 번을 접었다 필까 하는 생각뿐이었는데 밖으로 나오니 비가 그치고 해가 뜨고 있었다. 들려오는 새 울음소리와 떨어지는 물방울이 없어 잠잠해진 웅덩이, 그것에 반사되는 빛들, 우산이 접혀 넓어진 시야. 온 세상을 물청소를 한 듯한 기분이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비가 그치다니, 오늘은 재수가 좋으려나보다-하며 우산을 집에다 넣어두고 가벼워진 발걸음을 옮겼다. 볼일을 보고 잠시 카페에서 여유를 즐기던 중에 창가에 툭툭 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빛이 사라졌다. 까만 구름이 하늘을 몰래 뒤덮었고 우산을 접어둔 사람들을 놀리듯이 곧장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쏟아지기 시작한 폭우. 소나기이길 빌며 카페에서 잠깐 시간을 때워볼까 했지만 오늘 밤 내내 비 소식이 있는 것을 보고 고민에 빠졌다. 우산을 사러 주변 편의점에 뛰어간다 해도 이미 옷과 머리가 모두 젖어버릴 정도의 비. 집에 있는 우산을 놔두고 굳이 또 하나를 사기엔 아까우나 그렇다고 여기서부터 집까지 이 비를 모두 맞으며 가기에는 거셌다. 잠시 고민을 하던 찰나에 비가 조금 사그라들어 이제는 봄비처럼 잔잔히 내리기 시작했다. 이때가 아니면 집까지 뛰어가기 힘들 것이란 생각에 급히 뛰쳐나갔다.


밖으로 나와서 비를 맞으며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몸에 비가 닿았을 때는 마치 벌레가 몸을 타고 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내 피부를 타고 물이 흘렀다. 샤워할 때 와는 전혀 다른 느낌. 한데 점점 뛰면 뛸수록 맞는 비가 마냥 싫지 않았다. 마치 '쇼생크 탈출'에서 감옥을 탈출한 뒤에 비를 맞으며 자유를 만끽하는 기분을 느끼는 듯했다. 어느덧 집에 도착해 현관으로 들어서는 순간 비를 맞지 않으니 그제야 찝찝함이 몰려왔다. 비에 젖은 옷을 세탁기에 넣어두고 곧장 샤워를 하려고 들어갔다. 샤워를 하던 중 거울에 비친 내 눈은 짜증 나 보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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