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틈새
무더운 날씨에 바닥의 잡초들 조차 고개를 푹 숙인다. 힘이 전혀 나질 않고 입맛도 돌지 않는 정오의 뜨거운 햇살이 원망스럽다. 내가 누워있는 것인지 쓰러진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몸을 움직이기 싫어져 그저 누워서 가만히 선풍기 바람만 느끼고 있다. 이런 날에 시원한 계곡물에 들어가 과일이나 먹는 것이 행복하겠거니 하면서도 10리도 되지 않는 거리에 있는 물에 가기 부담스러운 날에 상상만 할 뿐이다. 하늘을 원망했더니 눈물을 흘렸다. 멈출 줄 모르는 거센 빗줄기 소리는 시원함을 가져다주었으나 정작 몸은 시원하긴커녕 당장 어딘가에 달라붙을 정도의 끈적함을 가져다주었다. 바닥에 닿아 있는 것 마저도 싫어서 누워있지 못하고 잠시 앉아서 가만히 비를 보았다. 하늘에서 내려올 때 길고 긴 물줄기처럼 보이며 쏴아아-하는 소리와 함께 떨어진다. 땅바닥에 닿을 때는 작은 물방울 하나로 돌아와 톡, 톡 하는 소리와 함께 물 웅덩이에 일렁이며 합쳐져 한 방울에서 한 웅덩이로 변한다. 한 번씩 튀어 올라 빠져나오는 작은 방울이 마루 위로 튀어 오를 때면 독특한 애구나-하며 빗방울에 혼을 내곤 하는 것이다.
그렇게 멍하니 시간을 챙기지 않다가 배고픔에 눈이 뜨였다. 움직이기 암만 귀찮아도 사람인지라 어쩔 수 없이 부엌으로 향해 간단히 챙겨 먹었다. 그러고 다시 마루로 돌아왔을 땐 거센 비는 사라지고 하늘에서 한 두 방울씩 천천히 가랑비가 떨어지고 있다. 두껍고 길쭉해 보였던 물방울은 없고 얇고 힘없는 물방울 조각이 보이는 듯하다. 이젠 시원함도 찝찝함도 없고 처량함만이 남았다. 비가 그치고 하늘이 개어 다시 햇빛이 비춘다면 밝은 날의 아름다움과 무더위의 증오스러움이 공존하는 속세로 떠나버릴 테지만 이렇게 마지막 하나까지 쥐어짜 내어 그늘을 만들어내는 빗물의 배려에 안쓰러움이 느껴질 따름이다.
하늘이 눈물을 멎었다. 구름 틈 사이로 빛이 내려쬐기 시작한다. 구름 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빛들이 마치 칼날이 꽂히듯 땅에 내리꽂는다. 웅덩이에 닿은 빛이 반사되어 세상에 뿌린다. 어리석게도 개어버린 날에 내려오는 빛이 아름답다 생각했다. 지독한 날씨가 돌아왔다. 이 전보다 더욱 습하게. 처마 끝에 맺힌 물방울이 떨어져 물웅덩이에 닿을 때, 수십 개가 되어 사방팔방으로 떠나간다. 시간이 꽤나 흘러서일까 해도 잠이 오는지 점점 빛이 사그라든다. 정말 해가 입으로 쨍쨍이라는 소리를 내는 듯이 강렬했던 빛이 은은하게 바뀌어 날이 조금은 나아졌다. 빛이 있을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하루를 보냈다. 서양의 흡혈귀마냥 빛을 피해 다니는 일상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결국 나는 햇빛을 원망하면서도 동경한다. 빛이 사라져 버린 시간, 대지는 생기를 잃었고 하늘은 색을 잃었다. 해를 흉내 내려 달이 뛰쳐나왔지만 우리의 눈에 보이는 달은 해에 비하면 그저 재롱을 부리는 아기의 모습처럼 귀여울 뿐이다.
그 아름다움을, 생기를 가져오는 해를 쳐다볼 수 없음에 원통하던 나는 사라지고 나서야 겨우 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달이 자신도 밝지 않느냐며 시위하듯이 존재를 뽐내고 있고 그 옆으로 흩어진 물방울들이 뿌려진 듯이 여러 빛 조각들이 수놓아져 있다. 마루에 쓰러져있다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 가만히,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땅의 물웅덩이를 내려 보았다. 그 순간, 물방울이 하나 웅덩이로 떨어져 내가 앉아있던 마루에 튀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