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걸었다.

익숙함과 새로움

by 정다훈

늘 보던 천장을 보며 뜬 눈, 침대에서 내딛는 걸음, 익숙한 냉장고의 물, 매일 쓰는 세면용품이 가득한 화장실, 앞에 서서 한참을 고민하는 옷장, 신발장 앞의 내 모습을 비추는 거울, 몇 개 없는 신발과 우산이 있는 신발장을 지나서 현관을 나선다.


뚜벅뚜벅 걷다 보면 보이는 늘 보던 풍경. 변하지 않는 상가, 매일 걷는 거리, 한 번쯤 본 적 있는 듯한 사람들, 자주 가는 카페와 식당, 종종 들리는 서점, 지나다니는 수많은 차들, 귀에 이어폰을 꽂은 체 최근에 듣는 노래를 반복재생해 놓고 길을 걷는다.


늘 똑같은 것. 주기적으로 같은 음식을 먹고, 매일 같은 방에서 일어나 같은 행동을 해서 채비를 한 후에 같은 거리를 걷고, 매일 가는 카페를 가고 하루종일 똑같은 노래를 듣는다. 적응과 익숙함을 넘어서 완전한 일상이 되어버린 모든 행동과 공간. 누구를 만나던 어디를 가던 최우선은 '아는 곳'이다.


새로움을 두려워하기 시작한 것이 언제인지 모른다. 새로운 곳으로 떠나서 구경하는 재미,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색다른 얘기를 들으며 담소를 나누는 재미, 괜히 어딘가 가고 싶어 져서 다른 곳으로 떠나 걸으며 구경하는 재미, 여러 노래를 자동으로 추천해 들으면서 듣기 좋은 노래는 저장해 놓는 재미. 다른 곳, 음식, 거리에서 시작하는 하루가 즐거웠던 때. 이제는 계절의 변화조차 어색함에 시리게 느껴지는 연약한 화초가 되었다.


익숙함이 묻어있는 나의 시선과 발걸음이 닿았던 공간이 단순히 좋아서가 아니다. 내가 한 적도 본 적도 없는 공간이 두렵고 어색해 싫어서도 아니다. 하지만 몸이 굳는다. 우리는 시간이 지나 나이를 먹을수록 재미와 흥미를 느끼는 것이 달라진다. 똑같은 자극을 받더라도 시간에 따라 받는 정도가 달라지고 그에 따라 변한다. 헌데 이제는 어떤 자극이 나에게 높은 정도가 될지를 알고 싶지 않다. 마냥 재미와 강렬한 기억을 바라던 때와 다르게 지금은 그저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하루하루가 더욱 소중하다 느끼는 듯하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은 이런 뜻은 아니었겠지만 사람을 편안히 만드는 듯하다. 종종 사람이 보고 싶어 전화를 돌리거나 괜히 말을 걸어서 대화를 나누려는 시도를 하지만 평소에는 그저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즐거운 것도 사실이다. 사람을 만나는 것을 즐거워 하지만 혼자서 걷는 시간을 좋아하는 건 역설적이라기보다는 나 자신에게 놀이와 휴식이 어떤 것인지 아는 것이 아닐까.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계속해서 하는 것은 컴퓨터 게임이 아닐까 싶다. 지독하게 빠져서 몇 날 며칠 밤을 새우면서도 했고 그렇게 한 게임이 한두 가지도 아니다. 정말 열정적으로 빠져서 내가 게임이 질릴 날이 올까-싶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게임을 많이 하지 않는다. 정확하게 어떤 타이밍에 어떤 식으로 멀리하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옛날에는 재밌어서 했다면 지금은 할 게 없어서 하는 기분이다. 마냥 재밌던 것이 오히려 스트레스로 다가오면서 지쳐버린 것일까. 그렇다면 글을 쓰는 것이 재밌었던 고등학생 때의 나는 왜 더욱 열심히 하지 못했고 글을 쓰는 것에 열을 내며 잘 안 써질 때 스트레스를 받는 지금의 내가 더 열심히 하려는 것일까.


오늘도 책을 폈다가 3-4페이지를 읽고 덮었다. 잠시 밖으로 나왔을 때 내리는 거센 비는 다시 나를 집으로 돌려놓았다. 그 잠시동안 내가 봤던 풍경은 새로웠다기보다는 익숙함 속에 하나의 이벤트 같이 느껴졌다. 매일 지나다니는 거리가 우산으로 인해 조금 좁고 알록달록해 보일 뿐이었고, 해가 없는 세상이 마냥 어둡게만 느껴지지 않는 것일 뿐이었다. 이렇게 거센 비를 맞는다면 실내의 화초는 꺾여 죽어버릴 테지만 실외의 야생화는 달랐다. 그 연약한 민들레는 이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자신의 꽃을 숨기지 않는다. 무성한 풀들에 푸르게만 보이던 화단이 갑자기 무지개색을 뽐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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