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만큼 미련한 감정이 또 있을까.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모른다. 자신이 지금 빠져 있는 감정이 맞지 않은 옷임을. 분명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느낄 것이다. 이 감정이 서서히 잘못되었음을. 그렇게 시작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이렇게 끝내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그 미련함에 놓지 못하고 기대하고 원한다. 하지만 그 감정이 타인에게 내어줄 수 없을 때 해결 방법이 사라진다. 분명 내놓았을 때는 한없이 소중한 보물이지만 내어놓지 못할 때는 다른 감정을 막아서는 댐과 같다. 그렇게 잠식돼버린 감정이 이성적인 생각을 막고 자신의 결정을 부정시키고 막아선다. 점점 쓰리고 아파오기 시작할 것이다. 놓지 못하는 감정에.
그런가 하면 이만큼 이기적인 감정도 없다. 사랑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누군가를 사랑해야겠다는 마음가짐만으로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이제 사랑하지 말아야겠단 생각으로 없앨 수 있는 감정도 아니다. 마음대로 시작해 버린 감정을 어떻게든 꺼내놓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랑을 거부하고 싶어 어떻게든 받기 싫어서 노력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잃어버리기 싫은 다른 감정과 시간, 추억이 있음에도 마냥 생겨난 감정을 멋대로 무시할 수는 없어 애써 밀어내려 해 보지만 차마 그렇게만 못하는 것도 현실이다. 거부하는 사람에게 잔인하다.
하지만 그런 만큼 간절하고도 소중한 감정이다. 함부로 가질 수도 다룰 수도 없는 감정. 자신 마음대로 주체할 수 없는 그런 감정. 사랑에 빠진 사람은 조울증에 걸린 것 마냥 하나하나 모든 일에 기쁘고 슬프며 그립고 아쉽다. 자신의 사랑이 타인에게 짐이 될까 숨기지만 그러면서도 없애진 못하는 이에게 아픔을 주고 있으며, 타인의 사랑을 받는 것을 바라는 이에게 하나 주어지지 않는 것이 잔인하고 그런 사랑을 거부해야 하는 이에게 부담을 주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단 것에 행복을 느끼고 그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이런 삶에서 여유로움을 찾아내는 것 또한 사랑이다.
사랑은 말하면 말할수록 복잡하지만 느끼면 느낄수록 단순한 감정이다. 간단히 ‘사랑해’란 단어 하나 건네는 것보다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2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를 달려가서 잠깐 얼굴 보는 것이 쉬운 것처럼. 나는 사랑을 위해서 아득히 먼 길도 시간도 아깝지 않을 자신이 있지만 사랑하는 이에게 이를 약속하고 믿을 수 있게 표현하는 것은 힘들다.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세상에는 이미 수많은 사랑의 표현이 있다. 그런 수백 수천 가지의 표현으로도 차마 내 진심을 모두 보여주기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사랑인데. 그냥 옆에서 손을 맞잡고 눈을 맞추며 속으로 사랑을 삼켜 전해주는 것만이 내 사랑의 표현일 것이다.
사랑은 나에게 다가설 수 있는 용기는 주지만 물러설 용기는 주지 않는다. 마치 잡초처럼 알게 모르게 자라나지만 이를 쉽게 사라지게 할 수 없다. 아무리 뽑고 뽑아도 그 옆에서 새로이 자라나는 것이 사랑이다. 긍정의 반대는 부정이다. 사랑의 반대는 무엇인가. 분명 사랑의 성공과 실패는 있을지언정 그 감정은 다른 이름으로 남아 내 속에 떠돌아다닐 뿐,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사랑했던 감정은 지나면 지날수록 행복을 안겨주고 그 행복을 앗아갈 때 슬픔에 잠기며 빠져나와 미련을 가지고 그 미련을 견뎌내어 추억으로 회상한다. 이 중 그 무엇이 사랑의 반대말이 될 수 있는가.
아마 사랑의 반대말은 호감일 것이다. 사랑인 줄 알았으나 닿지 못했던 그 감정이 사랑을 부정할 수 있게 해 주니까. 내가 사랑이라 생각했던 감정이 단순히 호감일 뿐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포기할 수 있게 만드니까. 그렇게 도망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