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
물웅덩이에 빗방울이 튀어 오르고 잔가지가 바람에 흔들린다. 짓궂음.
이 날씨를 표현하기에 이것만큼 적절한 단어는 없으리. 급히 거센 비바람을 피하기 위해서 근처 상가의 처마 밑으로 숨었다. 갑자기 찾아온 짓궂은 날씨를 예상치 못해 옷과 머리가 다 젖어버렸다. 이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언제 비가 그치려나 하며 기약 없는 기다림을 하고 있다.
덜컹
상가 문이 열리며 몸이 부딪혔다. 이런, 급하게 피하느라 실수로 입구를 가리고 있었나 보다. 당황해서 죄송하단 말도 건네지 못하고 목례를 하고 비켜섰다. 대뜸 눈앞으로 건네지는 수건 한 장. 주인분이 비를 맞은 것 같아서 나에게 선의를 베풀었다. 감사하단 인사를 건네고 받아들여 머리를 닦았다. 포근하고 부드러운 수건의 감촉이 찝찝하게 만든 빗물을 모두 닦아 내려서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상쾌함.
-잠시 안으로 들어와 피하고 가세요. 소나기 같아요.
주인분의 선의는 수건에서 그치지 않았다. 염치없지만 이런 날씨에 길을 다시 나서기는 어려워 안으로 들어섰다. 들어서는 순간 따스한 분위기로 잘 만들어진 카페가 들어온다. 내가 문을 막고 섰던 곳이 카페였구나. 커피를 내린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알게 모를 따뜻한 공기에 고소함이 묻어 나온다. 그 순간 울리는 타이머. 주인은 안으로 뛰어가 오븐을 열어 갓 구운 빵을 꺼낸다. 그 향긋한 버터향과 우유냄새가 따스하게 풍겨 나와 이미 따뜻했던 카페를 휘감아온다. 포근함.
이런 선의를 받고 가만히 비만 피하고 가기도 죄송스러워 커피와 빵을 하나 주문했다. 사실 이미 들어서는 순간에 풍겨온 짙은 커피 향에 견디기 어려웠던 찰나, 갓 구운 따뜻한 빵이 풍겨오는 고소함에 모락모락 눈앞에 보일 지경이라 너무 구미가 당겼다. 춥지는 않았지만 뭔가 이곳의 분위기에서는 따뜻한 커피를 천천히 음미하고 싶었다.
아무 테이블에 앉아서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몸을 녹이고 있었다. 창밖에 비가 자신도 따뜻하고 싶다는 듯이 가게 유리창을 두드리며 들어오려고 애를 쓴다. 그러고 보니 노래가 틀어져 있지 않은 카페는 오랜만이다. 조용함 속에서 따스함이 풍겨 나와 밖의 빗소리를 아름다운 악기의 선율처럼 바꿔놓는다. 다시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가만히 창 밖의 소나기를 구경했다. 한적함.
-산책 나오신 거예요?
빵 굽기가 끝이 났는지 여유가 생긴 주인분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집에 있기 답답해서 잠깐 걸으려고 나왔다가 비를 만나서 짜증이 났지만 배려 덕분에 여유를 느낄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주인분은 나와 말 상대가 되어주기보다는 함께 커피를 마시며 비가 내리는 밖을 구경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카페에서 비가 만들어준 우연한 만남이었지만 뭔가 낯설지 않다. 편안함.
-해가 뜨기 시작하네요.
정말이었다. 잠깐 빗소리를 뒤로 하고 빵을 먹고 있던 차에 비가 멎었다. 물웅덩이는 튀어 오르지 않고 빛을 받아 가끔 불어오는 바람에 떨어지는 물방울에 일렁거릴 뿐이다. 뭔가 새로움이 느껴진다. 단순히 비가 그치고 해가 떴을 뿐이지만 전혀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주인에게 감사의 의미로 목례를 하고 카페를 나섰다. 집으로 향하는 길. 어색하기만 했던 거리가 해가 뜨니 다시 익숙해진다.
새로운 발견을 했다. 갑자기 찾아온 소나기 덕에 발견한 집 주변의 따스한 카페 하나. 내일은 비가 오지 않아도 잠시 들어가서 여유를 즐겨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