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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훈 Jan 18. 2024

앞으로 걸으며 뒤를 보다

 망각의 불완전함이 가져오는 것은 추억인가 미련인가. 분명 발걸음은 앞으로 향하지만 어찌하여 매일같이 뒤를 보는가. 잊지 못한 시간을 원망해서인가 잊지 않을 시간이 필요해서인가. 너는 네 뒤에 따라오는 시간을 뭐라고 부를 것인가.


 사랑을 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지나온 1년을 돌아보라. 시작은 어떠했고 과정은 어땠으며 그 속에서 나온 결과물은 어떠했고 끝내 마지한 결말은 어떠했는가. 그 속에서 너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가.


 물을 것이다. 뭘 했어야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가. 말할 것이다.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너는 고작 그런 시간들로부터 사랑을 찾는다는 것이 감히 그 사람에 대해 사랑한단 감정을 가졌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자격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래, 너의 사랑의 형태는 분명 다를 것이다. 너에겐 그 시간을 추억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할 수도 있고 앞날을 잘 살아가는 것을 사랑이었다고 할 수도 있으며 못한 것을 후회하는 것도 나누지 못한 감정에 대한 미련도 그 시간에 담긴 원망도 모두 사랑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잊지 못하는 이는 말한다. 이별한 사람의 특권이라고. 자신이 아닌 타인과 높은 농도의 감정선을 형성하고 깊은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쌓아온 그 기억들을 실컷 떠올리고 추억하며 후회하고 울고 웃는 것은 사랑했던 사람의 권리라고. 그래서 놓지 못한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에서 머무르는 법을 알지 못하면서도 애써 발 밑에 떠오르는 시간들을 보려고 뒤를 보며 걸을 뿐이다. 이 순간에도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흘러감을 인지하면서도 앞의 새로움보다 뒤의 익숙함이 보고 싶은 법이다.


 후회 없는 이는 말한다. 이별한 사람의 자세라고. 후회 없이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랑을 했기에 그 시간에 대한 생각에 묻혀 지내지 않고 자신의 앞날을 묵묵히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사랑을 했던 사람이라고. 그렇기에 뒤에 놓아진 것들을 신경 쓰지 않고 앞으로 또 앞으로 걸으며 한 번씩 그 시간들이 떠오를 때 아무렇지 않게 추억하며 상대의 평안을 빌어주는 것이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자신에 주어진 순간에 충실하며 사는 이들은 그 어떤 것보다 스스로를 소중히 여길 줄 안다.


 그리고 사랑은 말한다. 자신은 특별하다고. 모든 감정이 자신에게로 통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모든 감정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것을. 사랑은 곧 빛이다. 하나의 줄기로 내려와 형형색색으로 변하여 모든 감정을 떠올리게 하는 존재. 그와 동시에 어둠이다. 그 감정하나에 사로잡혀 다른 것을 알지 못하고 일상 따위는 떠오르지 않게 하는 존재. 사랑을 시작할 때 우리는 빅뱅을 경험하며 그 끝이 다가올 때 블랙홀에 들어간다. 우리가 들어간 블랙홀에서 나오기 위한 유일한 수단은 새로운 빅뱅이 찾아와 주기를 기도하는 것 밖에. 시간이 흐르면 나아진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다. 결코 잊히지 않는다. 다만 조금씩 무뎌져갈 뿐이다. 그 속에서 미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음은 당신이 스스로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사랑을 경험해 봤다고 쉽게 말하겠다. 나는 잊지 못하는 이가 되었었다. 지나간 사람을 직접 붙잡진 않으면서도 마음속에서, 머릿속에서 지우지 못해서 한참을 매달려 지낸 적이 있었다. 분명 우리가 했던 것은 사랑이라고 말하기에 부족한 것이었음에도 나는 정말 진심을 다해 사랑한다 말할 자신이 있었기에 결국 이뤄낸 결과를 짝사랑 따위로 단정 짓지 않았다. 다만 너와 나의 사랑의 크기가 너무 차이가 나버려 내 사랑이 무거워 도망쳤다고 믿겠다. 하지만 도망친 이를 계속 바라보는 것은 나의 사랑이 내 어깨에서 모두 내려가지 않아서 차마 돌아볼 수 없음이라.


 또 나는 후회 없는 이도 되어봤다. 내게 주어진 무거운 사랑을 신경 쓰느라 바쁜 와중에 다가온 타인의 사랑. 이미 주어진 무게가 있었던 탓에 이 감정을 그 사람에게 나눠줄 여력은 없었다. 타인이 주는 사랑은 하나도 무겁지 않았다. 고작해야 이런 무게를 견뎌내지 못해 도망간 사람이 다시 한번 미워질 뿐이었다. 한데 점점 그 사랑이 부담스러워졌다. 대체 내가 이 사람에게 이런 감정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 사람의 감정을 가볍게 생각하는 것이 정말 상대를 위한 일인가. 나 자신이 점점 나쁜 사람이 되는 기분이 들어 밀어냈다. 날이 갈수록 어두워지는 사람이 될 바에는 일찍이 멀어져 타인에게 어둠을 안겨주지는 않겠다는 다짐으로.


 이 모든 선택에 밝은 날을 맞이한 사람은 없었다. 각자의 고민과 후회와 죄책감을 떠안고 살아간다. 사랑이란 빛이 내려와 만들어낸 그림자에 묻혀서 살아가는 이가 된다. 하지만 그 속에서 미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분명 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며 그 사람들이 다시금 밝게 빛나는 모습을 전해 들을 때면 내 마음에도 다시 빛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가 어둠에 빠졌을 때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를 사랑하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 나가는 모습으로 벗어나려 하는 것은 훌륭하다. 하지만 이런 일로 지난 사람을, 감정을 지워내기란 어려운 것이다. 그렇기에 매번 마주 본다. 그 시간을, 감정을 보고 또 보며 다치고 또 다친다. 그리고 회복하고 성장한다.


 세상 사람들은 오직 앞으로만 흐르는 절대적인 시간 속에서 산다. 뒤로 걸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시간에 붙잡혀 뒤에 남겨진 것들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앞으로 걸으면서도 뒤를 보는 것뿐이다. 그것을 부르는 이름이 다양할 뿐이다. 누군가는 미련이 남아서 후회하기 위해서 본다 하며 누군가는 그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기억한다 말한다. 그 모든 행동의 이유는 사랑이며 결론 또한 사랑이다.


 사랑이란 참 단순하면서도 복잡하다.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불쑥 찾아올지 예상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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