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의 기억

by 정다훈

기억한다. 기억이란 그 순간의 장면이 눈에 담기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알 수 없지만 뇌리에 깊이 박히는 냄새나 익숙한 듯하면서도 어디서 들었는지 모르겠는 소리로 남기도 한다. 또한 무언가를 맛을 볼 때 분명 먹어본 적 없는 것이며 상상하는 맛 또한 말로 형연하기 어렵지만 분명히 그런 맛이 난다고 느낄 때도.


우리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머릿속에 기억을 남긴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무언가를 먹을 때 무슨 색깔의 맛이 난다고 표현하거나 전혀 먹어본 적 없는 음식이 왠지 이런 맛일 것 같다고 말할 때가.


나는 그런 순간이 신기하지만 때론 행복하다. 나도 모르는 무언가를 알아낸 듯한 기분. 호기심으로 생긴 탐구심을 하나 해결한 것 같아서.


어떤 기억들이 남아 있는가. 분명 살아오면서 굴곡은 존재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오르내렸던 곳도 있다면 누가 봐도 느껴질 만큼 급격한 경사를 오르내린 적도 있다. 그 속에 존재하는 감정은 헤아릴 수도 없으며 느꼈던 향과 맛, 들었던 소리, 보았던 장면은 군데군데 검은색로 칠해진 필름이 영사기에 틀어진 듯이 머릿속을 지나간다.


그 기억들을 떠올릴 때의 나는 어떤 것을 느끼는가. 불행했던 쓴맛을, 괴로운 소음을, 지독한 향기를, 눈을 감게 만드는 끔찍한 순간들이 정말 그대로 떠오르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 순간들이 내 필름에 묻어있는 검은색의 모습으로만 보여서 단순히 ‘그럴 때도 있었지’하면서 넘겨냈는가.


행복했던 순간들은 어땠는가. 기억에 확실히 남아있는가. 내가 신나게 웃고 떠들고 이 순간이 너무 즐겁고 행복하다고 느꼈던 때의 대화와 일들을 정확히 기억하는가. 그 또한 검은색 필름일 뿐이다.


헌데 나는 과거를 떠올릴 때 하얀색의 도화지에 무지개를 그리고 단맛을 느끼고 은은한 향을 느끼며 잔잔한 새의 지저귐을 듣는다.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넓은 지평선이 보이는 모래사장에 주저앉아서 여유를 만끽하는 모습. 이 모든 기억은 나의 필름에 담긴 체.


내 과거의 불행이 인상 깊지 않아서 별로 나쁜 일도 아니었어서 그럴 수 있다고 말하는 이들은 오직 자신의 불행에 갇혀서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소인배일 뿐이다. 5살의 아이가 즐겨 노는 카드를 잃어버리는 것과 그 카드를 가지고 지내다 성인이 되어 잃어버렸을 때의 색이 똑같을 수 있는가.


사람마다 정하는 색, 맛, 향기는 모두 다르기 마련이다. 내가 여유를 즐기는 그 필름이 다른 사람에게는 어떤 순간으로 기억되어 있는지는 모른다. 하나 분명한 것은 우리는 시간이 흘러서 그 기억들을 아무렇지 않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그 형태로 남아주지 않은 것이 아쉽다. 결국 모든 것이 아무렇지 않은 무채색으로 돌아가 그저 그런 모습이 되어버렸다는 뜻은 내가 그만큼 무뎌졌다는 뜻이 아닌가. 나는 아직 젊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생각하던 시절의 나라고 믿고 싶지만 머릿속에 채워진 필름은 그 생각을 가로막는다.


그런 맛을 느끼지 않음에 안심하고 향을 맡지 않음에 만족하고 그저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한다. 어떤 것이든 보고 듣고 맛보고 즐기며 아파하고 슬퍼하고 기뻐하던 정말 다양한 색이 될 수 있었던 때의 내가 그립다.


지난날의 내가 전혀 생각할 수 없었던 이 도전적임은 지금에 와서야 겨우 할 수 있는 말이겠지만. 그렇기에 이 시간 또한 지나고 나면 결국 말할 것이다. 그때가 좋았지-하면서.


아, 나는 기억한다. 이 순간들이 모두 행복하지 않았음에도 결국에 나를 비추는 석양이 되어주었던 것처럼, 결국에 지는 해일 지라도 그 순간에 나를 뜨겁게 비춰줄 것이라는 것을.

keyword
작가의 이전글6주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