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신정

by 정다훈

오늘도 기다림 없이 떠오른 해는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매일 뜨는 해지만 이상하게 오늘따라 인기가 많은 자신을 더욱 뽐내고 싶은지 맑은 하늘에 붉은빛을 잔뜩 머금고 떠올라 보는 이로 하여금 기도하게 만들었다.


여느 때와 똑같은 하루, 그저 주어진 휴일 하나에 불과하지만 별의별 의미부여를 해가며 '새해니까'하는 마음으로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이것저것 만들어내는 중이다. 몇 년을 시도해도 성공하지 못한 금연을 바라며, 이젠 나이도 있으니 험한 말을 줄이기 위한 약속을 해보지만 뒤돌아서서 담뱃불을 붙인 채로 또다시 나이를 먹은 것에 자연스레 씨발이라고 읊조린다.


어릴 적 새해 아침에 먹던 떡국의 의미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었다. 내가 한 살을 더 먹고 어른에 한 발더 가까워지게 해주는 자유의 상징. 마냥 어른이 되기만 한다면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으리라 막연한 기대감을 가졌었다. 이제 와서 먹는 떡국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냥 소화하기 편한, 만들기 편리한 한 끼 때우기용 식사일 뿐이다. 그 마저도 잘 챙겨 먹기 힘든 것이 현실이고.


전에도 말했던 적이 있다. 점점 한 해 한 해가 지날수록 매일같이 기념하던 날들이 점차 의미가 사라지고 있다. 세상에서가 아니라 나한테서. SNS에 남아있는 기록을 들여다보니 매해 1월 1일에 해를 보러 가고 있었다. 이것만큼은 몇 년간 꾸준히 해오고 있었는데 이마저도 올해는 하지 않았다. 그냥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졌다. 새해라고 주변에 연락을 돌리는 것도 당연시했지만 점점 가까운 사람 외에는 오는 연락이 귀찮게만 느껴진다. 새해와 생일이 가까이 있는 탓에 일주일사이 연락을 많은 곳에서 받아서 그런 걸까, 유독 연초에 몰리는 연락이 너무 피곤하다.


나이를 먹는다, 이 말을 단순하게 여기게 되었지만 정말 숫자로 나타나게 되는 나의 나이를 실감할 때면 그렇게 가볍지 않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10살의 나와 20살의 나, 30살의 내가 가지고 있는 책임의 크기가 똑같을 수는 없다. 거기에 가지고 있어야 하는 생각이나 마음가짐 또한 다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나는 사회의 약속으로 어른이 되어있다. 나의 성장과는 별개로. 특히나 우리나라에서는 이 현상이 심각한 편인 듯하다. 각 나이에 맞는 해야 할 것, 할 수 있는 것, 이뤄야 할 것, 평균치 같은 것이 세부적으로 정해져 있어서 매번 '이 정도는 했지?' 하는 평가의 잣대가 들이밀어진다.


이 모든 것을 잊기 위해서라도 흘러가는 시간에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 애쓰는 듯하다. 그저 흐르는 것은 흐를 뿐이라는 마음으로 언젠가 내가 원하는 모습이 되어 있지 않을까-란 마음으로 경계선을 정하지 않으려 애쓴다. 그러기 위해선 귀중한 시간이지만 하루하루에 깊은 의미가 있어서는 안 된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쓰이는 시간이 결코 아까워서는 안 된다. 그러니 그 사이에 있는 자잘한 이벤트쯤이야 무시하게 되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느껴지는 것은 결국 잃고 있는 것이 많다-라는 것. 나이를 먹으며 생각할 것, 책임질 것은 늘었지만 늘면 늘어난 대로 잃은 것도 늘어간다. 결국 나의 파이는 한정적이고 무언가를 담기 위해서는 버려야 하는 것이 존재하는 법. 새해는 나는 담아갈 것을 정했다. 어떤 것을 잃게 될지는 담아서 넘쳐 나오는 것을 지켜봐야만 알 수 있겠지.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07화용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