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냐, 안 하느냐
모든 것에 서툰 한 남자, 하다못해 일부러 모성애를 자극하려는 거냐는 농담을 들을 정도로 손이 많이 가는 남자도 연애가 하고 싶었다. 그도 여느 남자들처럼 자신의 여자를 잘 챙겨주고 아껴주며 보다 완벽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욕망은 있었을 터이나 그는 연애마저도 서툴다. 일전에 지나온 연애에서 들은 말들은 모두 목석같다는 얘기. 표현도 서툴고 배려나 이벤트 같은 행동까지 모두 곳곳에 서툼이 묻어있어 처음에는 귀여우나 시간이 흐를수록 신경 쓰이고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포인트가 되어버려서 금세 이별을 맞이하곤 했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만 서면 지은 죄도 없는데도 괜히 고개를 숙이고 떨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렇다 할 말도 잘 못하고 자신의 마음도 잘 내비치지 못했다. 그런 남자도 한눈에 반해버렸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여자가 나타나니 용기가 생기나 보다. 마치 술이라도 한 잔 한 것처럼 심장이 빠르게 뛰고 등에서 한줄기의 식은땀이 몽글거리다 흐르는 것이 느껴지다가 미쳐 떨어지기 전에 벌떡 일어나서 옷 안에 붙잡아 둔 체로 용기를 꺼낼 이슬로 사용했나 보다. 과감히 달려가 초면에 번호를 묻는 것도 잠시 시간을 내달라는 것도 아니고 곧장 고백을 해버린 이 서툰 남자, 한데 신은 도전하는 자에게 기회를 준다 했던가, 그녀는 마치 신처럼 그에게 기회를 줬다.
그렇게 용기 낸 보람인 걸까, 처음에는 서로 없으면 못 살 것 같은 분위기로 마치 인생의 마지막 사랑을 찾은 듯이 행복해 보였지만 똑같은 위기가 찾아왔다. 마치 높은 산의 만년설이 녹지 않듯이 변함없으면서도 물러터진 마음을 가진 그에게 여자는 지치고 있었다. 사랑에 의심이 싹텄다. 이전에 보여줬던 뜨거운 태양 같은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따뜻함이 느껴지는 열기로 생각했던 것은 시리도록 차가운 것에 닿아 순간 뜨겁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처럼 자신이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꾸준히 보여준 애정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여전히 서툴게 표현하지 못했고 여자는 이별을 결심했다. 남자는 이마저도 몰랐을 것이다. 최근 들어 쌀쌀해진 말투와 모든 것에 부정적으로 보이는 듯한 여자의 모습에 단순히 자신이 서툴러서, 여자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겠거니 하며 넘기고 다른 걸 생각할 뿐, 헤아리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알게 모르게 이별을 결심하고 있던 여자는 날을 정했다. 오랜만에 남자가 데이트를 하자며 자신이 준비한 데로만 가면 하루 즐거울 것이란다.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여자를 풀어주려고 하는 노력이 가상하지만 여자는 이 날로 끝을 결심했을 뿐이다. 여자가 바랬던 것은 이런 자리가 아니었을 테지만. 우연찮게 친구의 꽃집이 오픈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 남자는, 친구의 가게에 매상도 올려줄 겸 큰 꽃다발을 준비한다. 여자친구에게 줄 것이라 하자 꽃말도 더욱 좋은 것으로, 꽃도 조금이라도 몽우리가 이쁜 것으로 골라서 넣어준 친구는 이 서툰 남자에게 카드를 하나 써서 가는 것을 권했고 남자는 한 문장을 적어 넣었다. 차 조수석에 올려둔 꽃은 오랜만의 행복한 시간을 가지게 될 오늘만큼은 서툴지 않은 남자가 되어줄 자신감을 불러일으켜주는 듯하다. 여자가 조수석 문을 열고 커다란 꽃다발을 본 순간, 여자는 한참을 소리 없이 울었다. 남자는 당황해서 또다시 자신이 잘못한 것이 있는지 혹은 너무 감동을 받은 것인지 고민하다 극에 치달았다. 여자가 더 이상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닌지-하는.
둘은 잠시 걸었다. 그리고 여자는 얘기를 꺼냈다. 헤어질 생각으로 오늘 나온 것이라며 남자를 보지 않고 길바닥에 떨어진 작은 돌멩이를 발로 툭툭 치며 말했다. 서툰 남자는 묵묵히 얘기를 들었다. 여자의 이별에 대한 고민이 모두 이해되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는 자신이 서툰 만큼 기다리고 인내하는 것에 도가 터있었다. 얼마를 걸었을까, 다시금 차로 돌아가는 거리가 걱정될 때쯤 남자가 잠시 벤치에 앉아 쉬자는 말을 꺼냈다. 아무런 말 없이 허공을 보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평소 미안하단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남자는 이번만큼은 단순히 그 말로 맺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단순히 자신은 그런 것을 못한다고 말했다. 여자의 마음이 이해가지 않는 것은 아니나 노력으로 안 되는 것이 있을 줄은 몰랐다고 나는 서툰 사람이기 전에 한없이 모자란 사람인지라 누군가에게 쉬이 무언가를 건네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말을 꺼냈고 여자는 그런 것이 아니라 말했다. 여자는 받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확인하고 싶은 것은 단순한 것, 남자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이 있느냐는 것, 그런 간단한 일을 못해주는 게 너무나 서러운 자신이 못나 보여 지쳐갔다는 것은 그들의 눈물을 이어주지 못했다. 남자는 주머니에서 아까 써왔던 카드를 꺼냈다. 말없이 여자에게 전해준 카드.
'사랑해-말로 하지 못해 미안한 한 마디.'
여자는 말했다. 우리는 헤어졌었다고. 이에 덧붙여 이제 다시 만나는 거라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뜻이 아니라 이제 정말 단순히 사랑한다는 감정에 휘말려 여자친구, 남자친구로 보는 것이 아닌 서로를 사람 대 사람으로 마주 볼 수 있게 되자고, 그러다 서로가 지쳐 있을 때 이 한 마디를 꼭 건네주자는 약속을 지켜주기로. 남자는 지금이 이 말을 꼭 꺼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녀를 처음 만난 것처럼 술 한 잔 한 것 같은 기분이 아니라 마치 포근한 소파에 앉아서 무엇도 신경 쓰이지 않는 편안한 상태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자연스레 이 어렵던 한 마디를 뱉어냈다. 그렇게 그들은 다시 연애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