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이런 때에

몸을 생각지 않는 마음

by 정다훈

춥다. 잠에서 깨어나 자연스레 뱉은 말. 어느덧 가을이 지나 겨울이 다가오는 듯한 날씨는 내 방안까지 찾아와 나를 괴롭히고 있다. 나오기 싫은 이불속에서 얼른 자신을 느껴보라는 듯한 겨울의 한기를 무시하며 버티고 버티다 못 이겨 밖으로 끌려 나왔다. 아무런 생각 없이 화장실로 향해 씻고 나올 때 또다시 격렬히 나를 환영해 주는 겨울. 이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있나,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괜스레 나오는 짜증을 옷을 입어 덮었다. 역시 이불보다 못하다. 오늘의 할 일을 챙겨 집을 나설 때 괜히 하-하- 하면서 입김이 나오는지 보며 겨울이 다가왔다는 것을 느낌과 함께 붕어빵 장사가 언제부터 시작할는지 하는 생각으로 길을 걷는다. 계절의 이름은 바뀌었으나 하루의 일과는 바뀌지 않았다. 고작해야 입은 옷이 바뀌었을 뿐. 하루 일과를 끝내고 나면 또다시 피곤이 몰려와 옆에서 한참을 불어대는 겨울의 바람이 걸어오는 말에 대꾸조차 하지 못한다. 따뜻하게 옷을 입고 나온 사람들과 여름에는 차마 서로의 체온을 손으로 밖에 주고받지 못하던 연인들이 이제는 더욱 가까이 붙어 서로의 온기를 나눠가진다. 이럴 때 눈치도 없는 내 핸드폰은 아무런 알림이 뜨지 않는다. 의무적으로 sns를 기웃거리고 만화를 보며 시선을 애써 밖에 두지 않고 내 좁은 세상에 가뒀다. 집에 다 와갈 무렵, 찾지 않은 손님이 찾아와 핸드폰의 연락처를 뒤졌다. 외로움을 애써 돌려보내려 전화를 해볼까 했으나 그마저도 마땅치 않고 ‘굳이’라는 생각에 그냥 손님을 반겼다.


아침의 집은 따뜻함을 머금은 겨울이라는 공포에서 도망치게 해주는 안식처였지만 어느새 바람이 가져다주는 추위보다 더욱 서늘한 한기를 머금은 외로움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럼에도 차마 이 외로움을 외면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애써 힘을 내고 있었다. 지독한 외로움이 가득 차 있다 해도 내가 들어간 순간 그리움 가득한 곳으로 변해주리라 믿는 유일한 공간은 그렇게 매일같이 나를 배신한다. 저녁을 먹고 귀찮다는 생각에 설거지도 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 잠시만 쉬다 씻자는 생각으로 또다시 작은 세상에 들어갔다. 우습게도 그렇게 외롭던 순간들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다 이따금 돌아온 나의 집은 내 세상을 부정하는 듯이 고요하고 차갑다. 이런 재미도 흥미도 새로운 환경도 마주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이 지겨워 또 다른 경험을 시도할까 하면서도 체력과 돈이 없는 그리고 함께할 이도 없는 팍팍한 현실을 마주해 ‘굳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또다시 뒤처지기를 간청한다. 그러면서도 작은 세상에서 보이는 다른 이들의 행복한 세상을 동경하고 바라는 우스운 모습이다. 나만 힘든 것인가-하는 생각에 외로움이 또다시 다가오려 하는 순간이다. 그러다 작은 세상에서 한때 같은 세상을 살던 이를 마주친다. 나는 더욱 깊은 추위에 빠진다. 함께 가지고 있던 온기는 온데간데없고 모든 열기를 빼앗긴 체 추위에 버려진 기분이다. 네가 내 모든 온기를 가져간 것이라 부정하면서도 춥지 않기를 바라는 우스운 마음이다.


이제 추위를 느끼지 않는다. 지독한 추위는 아픔이 되었다. 그리움은 외로움이 되었다. 온기 있던 세상은 이런 나를 더욱더 내몰아 세울 뿐, 지금의 나에겐 어떠한 따뜻함을 주지 못한다. 돌아가고 싶다는 허황된 상상을 하면서도 그 시절을 부정한다. 행복했던 시간이 거짓된 것이라 부정하고 상처만 남은 시간에 가해자를 만든다. 사랑니가 생긴 것인지 이가 시리고 아리기 시작했다. ‘하필 꼭 이럴 때에.’라는 생각뿐이다. 꼭 이런 타이밍에 찾아와야 하는 걸까. 시린 이빨이 서러움을 덮어주는 듯하다. 이렇게 외롭고도 추운 시기에 찾아온 사랑니에 억울한 마음뿐이다. 나만의 세상은 이렇게나 시리고 춥다는 사실에 또다시 그 시절의 온기가 떠오른다. 애써 부정하고 잊으려 함에도 마음은 나를 믿어주지 않는다. 결국 오늘도 이불속의 온기에 속아 추위를 잊으려 한다. 그럼에도 시린 이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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