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끌벅적하고 군데군데 모나 있던 세상이 하얗게 덮여 있다. 주변에 온통 하얀색 밖에 보이지 않는 조용하고 깨끗함과 동시에 포근한 느낌이 드는 세상. 그곳으로 한 발자국을 내딛자 포근해 보이던 풍경이 갑작스레 얼어붙어 버렸다. 맑아 보였던 하늘은 구멍이 뚫린 체 바람이 쏟아져 내려오고 있고 내딛는 걸음마다 보이지 않는 눈 속의 두려움이 나를 더욱더 소극적으로 만든다. 동심에 가까운 따스한 마음을 안고 들어선 길에서 불어오는 한기는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다시 뒤로 돌아갈까, 눈 길이 아닌 다른 길로 돌아갈까 싶은 마음이 생겨날 무렵, 문득 발 밑이 보였다. 보이지 않던 속은 밟자마자 푹 꺼져 버리는 눈과 다르게 나를 온전히 받아 주고 있다. 쉬이 닿기 어렵다 생각했으나 한번 내딛는 순간 바로 마주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맞닿은 원래의 세상은 이상했다. 따뜻한 듯하면서도 냉철했고 넓은 듯하면서도 좁았다.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인 세상을 모두가 보아도 똑같게 보이도록 눈으로 덮어둔 것이었다.
그 눈 속에서 꽃 한 송이를 찾았다. 이렇게 차가운 곳에서도 얼어 죽지 않고 견디고 있는 그 작은 꽃이 온전할 수 있도록 그 주변에서 온기를 주려 했다. 내 마음이 통한 것인지 작았던 꽃은 점점 커지고 잎사귀에 윤기가 돌았으며 이제 서로의 온기를 공유할 수 있었다. 나는 꽃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고 이런 나를 아는 듯이 꽃은 더욱더 아름답게 커갔다. 이 꽃을 중심으로 하얗게 쌓인 눈들이 사라져 갔고 점점 더 넓은 본래의 세상을 알게 됐다. 중간에 한 번씩 눈발이 날리며 꽃잎을 상하게 했지만 또다시 함께 껴안으며 더욱더 예쁜 새로운 꽃봉오리를 만들어 냈다. 그렇게 맞이한 것이 꽃과 나의 세상이다.
그런 따스한 나날을 보내는 우리가 질투가 났을까, 어느 순간 해는 숨었고 눈이 내렸다. 가혹하게 내리는 눈발은 내가 꽃에게 어떻게든 온기를 나누려 붙어있게 했지만 어느 순간 온기를 거둬버린 꽃잎이 하나, 둘 떨어지는 것이 보였고 결국 놓아버렸다. 더 이상 꽃에게 내 온기를 나눌 수 없다. 그동안 서로의 온기로 마주할 수 있었던 세상이 다시금 눈으로 덮이고 있고 함께 온기를 나누던 시간이 허무해졌다. 나는 온기를 거뒀다. 발걸음을 옮겼다. 더 이상 이 꽃에게 내 온기를 나누어 준다면 내 스스로가 눈에 파묻혀 버릴 것이 훤했다. 그렇게 다시 하얀 세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눈으로 덮인 세상에 살리라 다짐하며 눈 밑을 동경하지 않았다. 그저 깨끗하고 포근해 보이는 세상만 바라보며 나의 온기를 지킨 체 걸어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상은 한 번씩 눈에 덮이지 않은 면을 보여준다. 또다시 그곳에서 따스함을 나누는 것이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