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라이킷 10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사랑하지 않을 이유

by 정다훈 May 10. 2023

 이해가 안 된다. 사랑하는 이유를 매일 같이 말해야 하는 까닭이 뭘까. 나는 항상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혼자서 머릿속에 탐험을 떠난다. 내가 정말 너를 좋아하는 이유를 찾기보다는 네가 바라는 너의 모습이나 장점들을 말해주기 위해서 흩어진 기억의 파편 중에 네가 말한 적 있는 점들을 찾아 나선다. 이 말을 듣고 기뻐하는 너는 나의 사랑에 기뻐하는 것일까, 스스로 그런 사람으로 타인에게 비친다는 것이 기쁜 것일까. 물론 사랑이야 하겠지만은 그 속에 깊은 이유들을 모두 말로 표현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몇 번을 했는지 세는 것도 지겨워 이제는 장난을 칠 때가 됐을 무렵, 사소한 일로 살짝의 감정다툼이 있었고 또다시 사랑확인을 하지만 이번에 들려오는 사랑이란 단어의 무게는 사뭇 달라 보여 진지하게 속마음을 내비칠 수밖에 없었다. 


 사랑에 이유가 필요할까. 개를 키우다 보면 자연스레 사랑하고 함께 지나온 시간이 쌓인 물건들을 사랑하며 먹고 맛있었던 음식을, 길을 가다 우연히 발견한 그 시간의, 그 장소의 분위기를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에 큰 이유는 필요하지 않다. 다만, 사랑하지 않을 이유만 생기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과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다르지 않냐며, 그렇다면 그동안 해온 모든 말들은 거짓이었다는 거냐며, 또다시 흐려진 눈빛으로 나를 원망하는 것을 보고 순간 나마저 울컥해 버렸다. 그동안 해온 나의 노력이 무시당한 기분이었고 그 순간에 그렇게 말을 해주는 것조차 나의 사랑이 없었으면 못할 행동이었는데, 너는 끝까지 자신의 사랑이 채워지길 갈망하면서 타인의 사랑이 비워짐을 신경 쓰지 않는다.


 연애는 그냥 외적으로 좋아서 시작하지만 좋은 성격에 반하고 행동거지에 매력을 느끼며 언행에 정을 붙인다. 그리고 지나와 이상형이 네가 만든 틀에 짜여 결국은 너 자체를 사랑하게 되는 것인데, 왜 사랑하냐니. 지나온 시간을 모두 설명해야 하는 것인가. 나는 밝고 매사 장난기는 있으나 진지한 면모를 보여주는 너의 성격에 반했고 주위 사람들에게 매너 있으며 자신이 손해 보는 한이 있더라도 모두 챙기려고 노력하는 행동에 매력을 느꼈고, 가게의 종업원들에게도 예의 있게 말하며 대화할 때 흔한 비속어조차 사용하지 않는 모습에 정이 들었다. 그게 내가 좋아했던, 사랑할 수 있게 해 준 너라는 사람의 틀이었다.


 하나, 사랑하지 못할 이유가 생겼다. 타인에게 밝은 모습을 보여줄수록 나에게 어두운 면모를 감내해 주길 바랐고 주위 사람들을 챙기는 만큼 나와의 시간이 멀어졌다. 항상 예의 바르며 욕을 하지 않던 언행은 나에게 투정 부리는 말투를 쓰는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럴 때면 생각한다. 만약 내가 연애상대가 아니었다면 그때의 너로 돌아간다면, 나는 지금까지도 너를 사랑하지 않았을까. 흔히 말하는 콩깍지가 벗겨진다는 말은 무섭다. 수많은 장점들로 사랑할 이유를 만들어 쌓아 온 탑이 사소한 단점들이 조금씩 갉아먹다 결국 무너트리는 것이다. 그렇게 무너진 사랑을 다시 다듬어 세우고자 함은 결국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그럴 이유가 없다고 인증해 주는 꼴이 되어버렸다.


 탑을 쌓는 것은 즐거웠다. 알게 모르게 갉아 먹힌 밑바닥이 결국에 탑을 무너트렸을 땐, 슬프다는 생각보다는 떠나야겠단 생각이 큰 노릇이다. 탑을 정리하기에는 단순히 쉽고, 어렵다의 개념이 아니다. 지나온 것 이상의 시간과 감정을 나에게서 뺏어가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 모든 것은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생긴다면 뺏길 것조차 없어져버린다. 이미 사라진 감정 따위로 거짓된 탑을 지을 이유가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냥, 생각이 나서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