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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뒤로한 채 앞으로 걷는다

이별

by 정다훈

사랑해서 용기를 냈으며 연애를 했고 다툼이 있자 이별을 맞이했다. 심장이 미칠 듯이 빨리 뛰는 역사적인 순간을 시작하겠다는 마음가짐은 시간이 흘러 뻔한 관계가 되었고 남들이 다 하는 것만 하는 사랑이 되었다. 지나와 보니 다른 사람들과 별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연애였으며 이별 또한 드라마틱하지 않고 슬프지도 않게 그냥 멀어진 사이가 되어버렸다. 늘 그렇듯 뻔한 사랑이었다.


사랑할 때는 달랐다. 함께하는 모든 것이 소중했다. 함께할 것을 생각하면 행복했다. 함께할 수 있는 것을 찾아다녔다. 혼자라는 생각은 할 수 없었고 무조건 우리는 둘이어야 했다. 잠시라도 떨어져 있을 때는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해 분리불안증이 생긴 것처럼 보였고 잠깐이라도 볼 수 있을 시간이 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당장 달려가서 얼굴을 보고 손을 잡았다. 그러다 하나 둘 다툼이 생겼다. 우연히 마주친 순간에 화를 내며 질투를 했고 처음에야 그럴 수 있지-하며 설명하고 오히려 사과하며 기분을 풀어주려 노력했다. 하지만 이 이후에 생긴 몇 가지의 의심들은 나의 신뢰를 깨지게 했고 조금씩 설득보다는 이해해주지 못하는 모습에 회의감을 느꼈다. 그때쯤부터는 혼자인 시간이 필요해졌다. 매일매일 만나지도 않았고 잠깐의 시간이 있을 때에는 만나기보다는 휴식을 선택했으며 잠시도 멈추지 않았던 연락은 조금씩 띄엄띄엄하게 됐다. 꼭 둘이 같이 가 아니더라도 따로 하는 일이 늘었고 서로 공유하는 일상이 줄어들었다. 그러다 의심이 든 것은 우리 사이의 필요성이었다. 더 이상 사랑이 있어 보이지도 않고 서로를 끔찍이 아끼지도 않으며 지날수록 다툼보다는 지쳐서 놓아버리는 점이 늘어나는데 이 정도면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별을 결심하고 나서는 안 보이던 것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예전의 애틋하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사라진 애정의 정도가 과거의 네가 눈에 비치며 비교되어 더욱더 변해버린 우리 사이를 깨닫게 됐다. 이미 서로가 알고 있던 관계의 끝은 결국에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놓아버렸다. 슬펐다. 하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다. 사실 그렇게 슬픈지도 잘 모르겠다. 이미 이별을 준비하고 결심하면서 마음정리는 끝나있었다. 그럼에도 지우지 못한 것은 함께 했던 기록과 기억이었다. 이건 슬픔이 아니라 그리움이라 하는 게 맞겠지. 그리고 이 그리움이 비추는 것은 너와의 연애가 아니라 행복했던 시간이겠지. 아마 그래서 오늘도 잊지 못하고 사진첩에 미처 지우지 못한 사진들을 뒤적이며 그날의 기억들을 훔쳐보는 거겠지.


눈을 뒤로한 채 앞으로 걷는다. 어디쯤인지 확인하려 고개를 돌릴 때, 멀어졌다는 것을 느낀다. 걸어온 거리의 길이만큼의 시간을 잃었다. 그렇게 이별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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