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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탄고토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

by 정다훈

가볍게 사랑 얘기를 하나 해볼까. 만나는 상황이야 뻔하다. 같은 모임에서, 우연찮은 자리에서 만난 사람에게 호감이 생겨서 혹은 그 사람이 나에게 호감을 가져서 연락을 하고 감정을 표현하고 잘 맞는다 싶으면 연애를 하기 위해 같이 노력하고 맞지 않으면 밀어내고. 그러다 멀어진 사이면 그저 그런 시간으로 치부되고 연애를 시작하면 둘만의 시작이 달달한 기억으로 포장된다. 시작된 연애는 뜨겁게 시작하는 것이 대부분, 처음에는 서로가 없이 그동안 어떻게 산 건지 모를 정도로 붙어 다닌다. 한시도 서로를 놓지 못하고 매 순간을 궁금해하며 매일같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다. 둘은 너무 좋은 사람을 만난 행운아라는 생각에 빠진 듯하다. 매일같이 함께하는 모습이 밤송이 속에 단 둘이 쏙 들어간 듯이 보인다. 아마 시간이 지나 밤송이가 벗겨질 때까지는 행복한 시간이 유지될 것이다. 시간이 지나 껍질이 조금씩 잘려 나왔다. 알고 보니 이런 사람이었네, 하는 점이 한두 가지씩 생겨나자 원래 좋아했던 모습조차도 뭔가 마음에 안 들기 시작한다. 괜히 트집 잡는 것이 늘어나고 이해하지 않는 것이 억울하며 배려하지 않는 것이 서운해진다. 그러면서 본인이 트집 잡히는 것은 짜증 나며 이해하는 것은 귀찮고 배려하는 것은 굳이라는 생각이 늘어날 때쯤, 먼저 껍질을 찢고 튀어나온 사람이 결심한 것은 이별이다. 밖으로 나온 세상은 원래의 자신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의 땅 같았고 더 이상 속에 갇힌 알쌍한 열매에 그치지 않고 나무가 되어보고 싶다. 이 모든 것은 함께 있던 알맹이와 멀어지고 싶은 마음이다. 더 이상 똑같기는 싫다. 결국 갈수록 차가워진 반응과 서로보다 중요한 것이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레 이별을 직감하게 만든다. 그렇게 뜨겁고 장난스러우며 때론 진지하고, 가벼워 보였지만 무겁게 느껴졌던 사랑은 끝이 났다. 지나온 감정이 무색하리 만큼 차갑고 단단하게.


떠나가는 것에 미련을 두진 않지만 나서려는 것에는 두려움을 둔다. 새로운 것을 도전하는 것은 두려워하면서 기존의 것을 저버리는 것은 어려워하지 않는다. 사랑을 줄 때는 그렇게 조심스럽던 사람이 떠나가버릴 때는 이렇게 가차 없을 줄이야. 서서히 데워진 물이 차가운 공기와 마주쳐 폭발이 일어났다. 짙은 안개가 눈앞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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