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간의 동의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도전을 결심한 남자. 그 끝이 환하게 타오르는 불빛이 될지 자신을 태워버릴 불꽃이 될지는 모르지만 이미 굳힌 마음을 되돌릴 순 없다. 그럼에도 피어오르는 '만약'이란 불안감에 실패를 걱정하지만 이미 마음먹은 마당에 부정적인 조언은 귀에 들어오지도 못한다. 결국 눈도 귀도 막은 체로 골라인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고백성공이란 목표만 보고 직진하는 것이다. 고민에 빠진다. 과연 어떤 고백을 해야 성공할 수 있을까. 썸을 타다가 거의 연애가 확실시 됐을 때에 확정 짓기 위한 말 한마디인 고백이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낭만 있는 고백이라 생각해서 확실히 자신을 각인시키고 싶나 보다. 그렇다 해도 커뮤니티에 나도는 수많은 실패작들처럼 공개고백이나 큰 이벤트를 통한 고백은 무조건 실패할 것이라 생각해 접어둔다. 그녀의 주변사람들에게 부탁해서 좋아하는 것이나 로망을 알아두고 비슷하게 해야 조금이라도 확률이 높아지지 않겠냐는 말에도 그렇게 하면 어느 정도 귀에 들어갈 것이란 생각에 차마 못 물어보고 나눴던 대화로 유추나 조금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단순히 로망과 현실은 다르다는 말을 뱉으며 자신만의 매력을 보여주겠다 하지만 그냥 부끄러운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그녀와 연관된 것에 내비치는 것이.
낭만은 있다. 하지만 배려는 모르겠다. 고백이 괜히 예전처럼 자신의 마음만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확실히 확인하는 것으로 변한 데에는 보다 남을 존중하자는 사회의 흐름 때문이다. 그런 마음이 일절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러운 고백은 만화처럼 사랑에 빠져드는 상황도 있을 수 있지만은 오히려 그 사람을 당황케 하고 원치 않은 선택을 강요하는 상황이 더욱 많기 때문에. 서로를 알아가면서 접근하기보다는 가까워진 후에 알아가고 싶다는 이 답답한 남자는 대체 어느 시대에 태어난 것인지 모르겠다. 아니면 로맨스를 다루는 영화나 만화를 너무 많이 본 것은 아닐까. 대뜸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여자의 어느 부분을 보고 좋아서 갑자기 고백을 하고 싶다고 하는 것인지.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같은 학과라는 것, 학교 앞 카페에서 알바를 하는 것 빼고는 크게 아는 것이 없지 않은가- 하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 “예뻐서.” 함께 있던 모두가 동의했다. 남자란 무엇인가, 이런 되지도 않는 이유와 말도 안 되는 도전에 의리로 함께 달려들었다. 그렇게 성사된 친구의 고백 프로젝트. 말이 프로젝트지 이 핑계로 모여서 놀고 마셨다. 그러다 언제쯤 도와줄 거냐는 말에 영화처럼 불량배인척을 해줄 테니 네가 구해라, 벽치기나 해 봐라 하면서 말도 안 되는 얘기나 늘여놓으며 놀았고 친구는 정색하며 이럴 거면 왜 도와준다 한 거냐고 역시 믿을 놈이 없다는 말을 했다. 그래봤자 우리한테는 재밌는 놀이가 하나 생겼을 뿐. 어차피 성공할 거라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왜? 위에서 말했듯 이 놈은 이유부터 생각하는 것까지 모든 것이 자기중심이었고 배려할 생각은 단 하나도 없다. 그녀를 함께 연애를 할 대상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전리품으로 생각할 뿐이라서 괜히 쓸데없는 짓 못하게 오히려 막는 느낌이 강했다. 그래도 친구 놈이 커뮤니티에 고백남으로 수치를 당하는 것은 막아줘야 하지 않겠나.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그놈은 결심을 내렸는지 내일 고백을 하겠다는 선언을 해버렸다. 급히 연락을 단체로 계속했지만 받지 않았고 결국 우리가 자취방 앞까지 가서 막고 있었다. 역시 자신을 도와 줄려는 게 아니었다는 말을 하며 배신감을 느끼는 놈에게 어떻게 설명할까 하던 찰나에 결국 다른 친구가 폭발했다. 이따구로 달라드는 놈을 계속 막아주는 것도 정도가 있다며 적당히 하라는 말과 이제 자기 알 바가 아니라며 돌아가버렸다. 그렇게 도화선에 지펴진 불은 우리 모두를 한탄하게 만들었다. 생각해 보니 이걸 계속 보고 있는 것보단 이 놈이 알아서 도전해서 망하면 우리도 덜 피곤하겠거니 하는 생각에 ‘그래, 니 맘대로 해라-’하며 다 같이 돌아갔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고백을 한 친구는 우리가 알아보기도 전에 과에서 다른 친구들이 우리에게 와서 물어볼 정도로 소문이 퍼져 있었고 그 여자애는 너무 당황스러웠는지 그날 수업도 다 빼먹고 집으로 돌아갔다. 얘기를 들어보니 고백자체도 뜬금없어서 당황스러웠지만 거절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져 난감한 나머지 아무 말도 못 했고 학교에서 일어난 고백에 주변의 시선을 받아 무서웠다는 말을 전해 듣고 그 날밤 다 같이 그놈의 자취방에 모였다. 침울해하고 있는 놈은 불쌍하기보다는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그러게 진작부터 우리가 말렸는데 결국 직접 데어야 알아차리는 것은 불이 뜨거운지 모르는 원시인 아니냐며 독설을 퍼부었고 놈은 아무런 반박도 못했다. 이런 와중에 그녀에게 미안하기보다는 자신의 쪽팔림을 고민하는 놈에게 정이 떨어질 데로 떨어져 끝내 친구들도 하나 둘 떠나갔다.
결국 남자는 휴학을 했다. 이 결정으로 여자애는 한동안 남자를 휴학시켜 버린 것처럼 시선과 뒷얘기가 따라다녔고 그럴 때마다 주변에서 말도 안 되는 짓 하지 말라며 감쌌지만 그 모두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멍청한 고백이 불러온 두 사람의 일상 붕괴다. 그놈은 언젠가 잠잠해져서 돌아오면 또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무리한 고백을 해서 다른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 것이다. 이 사건으로 배려를 배웠으면 좋겠지만은 이미 자신을 먼저 걱정하는 순간 절대 바뀌지 않을 놈이 확실하다. 이런 무책임한 결정들이 낭만을 없앴다. 사랑을 계산적으로 만들었고 모두를 이기적으로 바꿨다. 쓸데없이 높은 자존감이 남을 생각지 않게 만들었고 괜한 자신감이 불행을 불러왔다.
사람은 자신만의 전유물이 아니고 사랑은 그 핑계가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