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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부었고 물을 마셨다

한 잔에 담긴 너와 물에 잠긴 나

by 정다훈

세상이 돈다는 말을 이해하는 중이다. 한 걸음을 내딛을 때 발에는 감각이 없고 다리는 내 것처럼 움직이지 않으며 상체는 내 맘도 모른 체 휘청거린다.

숨도 마음대로 쉬어지지 않아 입으로 헐떡이는 소리를 내며 겨우 시 살아남겠단 의지를 보인다.

다시 정신을 부여잡고 걸음을 내딛을 때 닿은 땅의 느낌이 지독히 딱딱하고 차갑게 내 속을 파고들어 순간 속에서 무언가 정수리로 빠져나가는 듯이 느껴져 고개를 위로 젖혔다가 이내 푹 떨군다.

차마 걸을 수 없어 등을 받치고 엉덩이를 땅으로 붙이며 발을 땅에 끌며 스르르 주저앉는다.

기댄 등은 딱딱하고 토돌토돌 튀어나온 벽의 느낌에 간지럽고 엉덩이는 점점 저려오기 시작했지만 쭉 뻗은 다리와 힘을 푼 팔은 편안했다.

눈은 분명히 앞을 보고 있지만 옆을 보고 있고 속을 바라본다.

그 순간 입으로 헐떡이며 마시던 숨 탓인지 메마른 입 속이 따갑게 느껴져 억지로 침을 뱉었다.

그러다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아서 물을 찾으러 나섰다.

잠시 뚜렷한 목적이 생겨서일까, 편의점까지 비틀거리고 괴상한 걸음걸이로지만 별다른 일 없이 도착해 물을 사서 나올 수 있었다.

아마 조금만 더 힘들어 보였다면은 직원이 119를 불러줬을 정도.

사온 물을 마시면서도 목이 따가워서 차마 많이 마시지 못하고 금세 내려놓았다.

한 모금밖에 마시지 않았지만 들고 있기 힘들어 땅에 떨어트린 체 벽에 기대어 서있다.

하지만 우습게도 그 물을 다시 주섬주섬 주워 억지로 마시려 한다.

점점 진정되는 몸상태에 물이 보물처럼 느껴져 소중히 안고 있다.

물을 든 채로 집으로 걸었다.

비틀거리던 다리가 언제 돌아온 건지 멀쩡히 걸어가고 있다.

아까까지는 힘겹게 한 걸음씩 걸어온 거리를 쉽게 돌아다니며 원하는 방향을 짚어 가는 중이다.

나에겐 새로운 물이 생겼고, 너는 술이 되었다.

매일같이 없으면 안 되는 물과 함께하며 가끔씩 마시는 술에 너를 담는다.

위태로웠던 세상을 다시금 잡아준 물에게 감사를, 술로 변해 한 잔속에 담긴 추억에 감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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