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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않던 일

by 정다훈

길을 걷다 문득 고개를 들어 올렸을 때 맞이한 드넓고 맑은 푸른 하늘과 그에 어우러진 흰 무늬의 구름들, 바쁜 현실에 신경 쓰지 못하던 좋은 날씨와 나를 지켜주는 따스한 햇살, 중간중간 살랑살랑 불어오는 얕은 바람.


이런 날에 기분이 좋아진 탓일까 지나치는 모든 풍경과 사람들이 아름다워 보인다. 평소에 신경 쓰지 않던 길거리에 피어난 이름 모를 야생화들의 이름이 궁금하고 지나치는 상가들을 한 번씩 들려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결국에는 늘 가던 카페에 들러서 늘 먹던 메뉴를 시켜 들고 걷는 것이 일상이다.


평소보다 더 밝게 인사를 나누고 카페 문을 여는 순간, 앞에 있는 여자가 들어오려다 문에 부딪혔다. 만화처럼 콩하는 소리로 머리를 부딪히고 철푸덕하는 소리와 함께 땅에 주저앉았다. 통이 큰 청바지에 흰 반팔 카라티를 입은 그녀는 날씨가 좋아 집에 있기 아쉬운 것인지 책을 들고 카페로 나오고 있었나 보다.


넘어진 그녀에게 괜찮냐고 물으며 일으켜주려다 땅에 떨어진 짐에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있는 것을 보고 책을 먼저 집어 들었다. 멋쩍은 미소를 띠며 고맙다고 짐을 받아 드는 그녀. 그 순간 부끄러운지 얼굴이 살짝 붉어진 그녀가 긴 머리를 뒤로 넘기며 카페로 들어가는 뒷모습에 홀린 듯 카페에 다시 들어섰다. 주문하려 고민하고 있던 그녀 옆에서 내가 좋아하는 메뉴를 추천하며 나 때문에 넘어지신 것 같아 사과의 의미로 한 잔 사드리겠다고 했다. 그녀가 한사코 거절했지만 이보다 더 궁금한 게 있었던 나는 꼭 받아달라며 이미 카드를 사장님께 드린 후였다.


자연스레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음료를 기다리던 중, 어색한지 계속해서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며 멋쩍은 웃음을 짓는 그녀. 살짝 올라간 입꼬리와 드러나는 이, 살짝 지어지는 눈웃음에 튀어나오는 애교 살이 귀여워 보였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것일까. 살면서 모르는 사람에게 자연스레 말을 걸고 첫 만남에 이런 자리를 가지게 되는 것은 처음인 나는 너무 긴장되어서 온몸의 물이 땀으로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사장님께서 음료를 가져다주시며 서비스라고 평소에 자주 먹던 달콤하면서도 부드러운 빵을 하나 가져다주셨다.


테이블에 아까의 그 책을 꺼내올리는 그녀. 비록 스토리는 전개와 내용면에서 아까운 면모가 많지만 작가만의 주관적인 철학이 온전히 녹아있으며 정말 아름다운 문장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책보단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선택할 만한 책이었다. 나도 읽어본 적 있는 책이라 말하며 작가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글 좋아하시나 봐요."


별다른 말없이 우연히 마주친 단순한 인연이 떨어진 책 한 권으로 조금 특별히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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