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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부는날 May 04. 2018

아기의 시간은 부모의 것

아이를 낳기 전엔 내가 살아온 삼십 몇 년의 시간이 오롯이 다 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시간들이 쌓여서 내가 되었고, 그 시간 속의 배경과 사건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의미를 부여하는지는 나의 영역인 줄 알았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내 팔뚝보다 작은 것을 받아 와서 (내가 낳았다고 하는데 잘 믿기지가 않아서 원) 제법 몸이 단단해져 발차기에 배를 맞으면 억소리가 나는 7개월 아기가 되어가는 것을 여태 지켜보다... 인간의 아기 시절은 부모의 것이라는 걸 알았다.


자기가 무엇인지,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은지 혹은 짜증이 치솟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요놈이 아무런 목적없이 몸을 버둥거리고 표정을 짓고 깜짝 놀라고  머리를 박고 졸다 울어제끼고... 하는 이 모든 시간을 자긴 전혀 기억하지 못하겠지. 우리가 찍은 사진, 우리가 기억하는 이야기들로 짐작하겠지. 아니 사실 별로 궁금하지 않을 것 같다. 대부분 아기들은 다 비슷하니까. 나도 그랬겠지... 하고 말겠지. 하지만 자기가 얼마나 특별하게 사랑스러웠는지, 도대체 얼마나 독보적으로 깜찍했는지 절대 죽어도 상상하지 못할거다. 절대.


아이들은 아기일 때 그 귀여움으로 평생 할 효도를 이미 다 클리어 한다는 말이 있던데, 참 재밋는 말이구나 했었는데 정확한 말인 것 같다. 지금 아기의 귀여움을 기억 속에 차곡차곡 잘 저장해놨다가 나중에 이놈이 속을 벅벅 긁는 날이 오면 그 기억들을 꺼내서 스스로 위로해야겠다.


뭉친 어깨가 부서질 것 같고 아기와 닿아있는 몸에 땀이 줄줄 흐르고 제발 잠시라도 혼자 있고 싶어 하지만, 난 알고 있다. 힘든 기억은 흐리멍텅하게 대부분 잊혀질 거라는 걸. 보드랍고 말랑한 행복감만 기억속에 과장되어 남겠지. 그리고 그리워하겠지.


남들은 아이가 생기니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이 커진다 하던데... 난 오히려 이런 기쁨을 부모님께 주던 시간들이 있었다고 생각하니 부모님에 대한 마음의 짐이 조금 덜어지는 것 같다. 너무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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