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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부는날 Jun 27. 2018

남학생들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

나의 교사 경력은 5년이다. 첫 해 1년 기간제는 남고에서 했고 나머지 4년은 지금 적을 두고 있는 서울의 남녀공학 고등학교인데 2년간 남자반 담임을 했다. 남학생들과 인연이 많다.


스물일곱 싱글의 초짜교사일 때는 남학생들이 재미있기도 했고 불편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혼과 임신의 과정을 거치면서 불편함은 사라졌다. 왜냐면 걔네가 더이상 날 불편하게 하지 않았기 때문.


열일곱, 열여덟의 남학생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아이와 어른 사이 선상에 여기저기 찍힌 다양한 아이들의 위치와 그래서 혼란스럽고 신나는 모습들이 사랑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대부분은 그랬다. 힘들 때도 많았지만 대체로 아이들의 생각과 말은 겉으로는 좀 거칠지 몰라도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아이들의 말 앞에서 가슴이 먹먹해질 때가 종종 있었다.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지 몰라서 그냥 멍하게 있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꽤 자주 그랬다.


아이들이 페미니즘에 대한 말을 할 때였다.


야한 농담이나 음란물 이야기는 흘려들을 수 있었다. 같이 농담을 하거나 받아칠 생각은 없었지만 그냥 못 들은 척 했고 기분 나쁘지 않았다. 그럴 때니까.


하지만 아이들이 인터넷에 팽배한 페미니즘에 대한 조롱을 그대로 입에 올릴 때, 그게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아이들에게 받아들여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너무도 무거운 무력감을 느꼈다.


인식은 계기가 없으면 바뀌지 않는다. 나는 아이들에게 계기를 마련해줄 수 있을까. 섣부른 시도가 아이들과의 관계를 망쳐버리지 않을까. 그리고 내가 그럴 자격이 있나.


고민은 늘 포기로 끝났고 결국 아이들에게 거기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해본 적이 없었다. 비겁하게도 난 페미니즘에 대한 아이들의 반감. 무지에서 비롯된 그 사나운 반감이 나에게 향할까 두려웠다.


인식은 확실한 계기가 있어야 바뀐다는 것. 난 잘 안다. 내가 그랬으니까.


난 페미니즘이 싫었다. 그 말 자체에서 나만 대우해달라는 응석과 불평이 느껴졌나보다. 내가 대학에 갈 때, 2000년대 중반에는 된장녀라는 말이 유행이었다. 된장녀의 소굴은 이대였다. 이대는 된장녀 뿐만 아니라 꼴페미의 집합소였다. 이대생들에 대한 이미지는 그랬다. 그래서 배부르게도 이대에 가기 싫다고 고집부렸었다. 결과적으로는 일단 갔고 잘 다녔다.


대학에서 학문으로서의 페미니즘을 처음 접했다. 처음에는 모든 수업에서 조금이라도 페미니즘을 주제로 다루는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알고나니 바꼈다. 당연한 일이지만 제대로 알고 나니 제대로 보였고 우리 사회가 어느정도까지 와 있는지 느껴졌다.


나의 인식이 전환된 결정적 계기는 가부장제에 대한 이해였다. 가부장제. 당연히 남성에게 유리하고 여성에게 불리한 문화 혹은 제도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이분법적으로 볼 수만은 없는 것이다. 가부장제는 사실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유리 혹은 불리하다.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가부장제의 희생양이라고 하면 평생을 가족을 위해사 죽어라 노동하고 뒷바라지만 하느라 자신을 잊은 희생적 어머니를 주로 떠올리지만, 가장이라는 책임감에 평생 일만 하며 직장에선 군대식의 서열문화에 두들겨 맞고도 남자답지 못하게 눈물도 보일 수 없는 아버지는 떠올리지 못한다.


가부장제의 혜택을 받은 사람이라고 하면 남자다운 리더십과 무자비함으로 위에는 충실하고 밑에는 꾹꾹 밟으며 세상의 위에 올라간 남성 기득권층을 떠올리지만, ‘여성스러움’을 영악하게 이용하며 남자들의 주머니를 기반으로 조금의 죄책감이나 감사함 없이 불로소득을 얻어내는 여성들을 떠올리지 못한다.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남학생들에게. 너희가 까는 ㅇㅇ녀들이 비난받아야 한다면 페미니즘이 아니라 가부장제와 연관되어 비난받아야 한다고. 그리고 그게 옳지 않은 일이라고 말하는게 페미니즘이라고. 페미니즘이 맞서는 것은 남성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 모두를 억압하는 가부장제라고.


덧붙여 너희가 남자다워야 한다는 말에 짓눌려본 적이 있다면, 성장하며 남자라서 이래야 하고 또는 저러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부당하다고 느낀 적이 있다면. 이제 더이상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페미니스트와 같은 생각인 거라고.


글쎄. 조만간 학교로 돌아가면, 이제 어엿한 애엄마로서 아이들 앞에 좀 더 여유가 생길까. 그래서 기회가 되면 아이들의 언어로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그럴 필요가 없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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