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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부는날 Oct 03. 2018

이 계절, 이 햇살.

끔찍하게 더운 여름이 지나고 서늘한 공기가 불쑥 찾아오기 시작할 때. 아, 가을이 왔구나. 하고 고개를 들면 하늘의 색에 눈이 시릴 때.


가을이 오면 늘 설렜다. 어딘가 떠나고 싶기도 했고.


올해는 점점 무거워지는 아기를 안고 땀을 뻘뻘 흘리며 그 좋은 가을을 기다리고 기다렸다. 그리고 막상 가을이 왔는데 자꾸 눈물이 난다.


계절은 공기와 바람과 냄새와... 기억으로 오나보다.

나에게 가을이 아픈 계절이라는걸 올해 처음 알았다. 아니 올해가 첫 아픈 가을이다.


2년 전 가을 엄마가 떠났다. 1년 전 가을엔 은유를 낳았다. 모두 10월 초, 이제 막 가을의 절정이었다.


그땐 현재로 살았던 가을의 아픔이 올해 기억으로 돌아왔다. 기억은 감각으로 왔다. 두해 전에 무너졌던 마음과 한해 전에 무너졌던 몸의 아픔이 뒤섞여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이상한 감각으로. 등줄기와 명치를 따라 들어왔다. 느 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찬란한 햇살이 흔들리는 나무 사이로 달려와 내 등에 내려앉았을 때. 그 버거운 감각이 한꺼번에 돌연 되살아났다.


하지만 아주 아프지만은 않았다.  가을이니까.


조금 우울해져도, 멍해져도, 아파도 거기에 낭만이 있을 수 있으니까. 가을은 그런 계절이니까. 그러니까 가을이라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년 전, 엄마를 납골당에 안치하고 나오던 날. 그날 나에게 가장 큰 위로를 주었던 것은 가을이었다. 어른들이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고 했다. 엄마로부터 몸을 돌려 바깥을 향했을 때 가장 아름다운 가을이 눈 앞에 펼쳐졌다. 그날 본 산과 하늘의 색이 잊혀지지 않는다. 올해 가을은 어김없이 그 색을 다시 펼쳐놓았다.


나의 가을.

사랑하는 나의 아픔.

이 계절, 이 햇살이 지나간다. 나도 천천히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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