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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부는날 Aug 20. 2019

Love yourself?

여자에게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는 말 만큼 황된 조언이 있을까. 그 말은 뭐랄까. 늘씬한 몸매에 타고난 예쁜 얼굴의 여자가 헤진 청바지에 흰티를 입고 화장기 없는 얼굴로 이를 잔뜩 내놓은 채 환하게 웃는 느낌이랄까. 혹은 그런 여자가 아름다운 휴앙지에서 꽤 힘이 드는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느라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 느낌이랄까. 그런 이미지 위에 세련된 필기체로 갈겨 쓴 메시지 같달까. Love yourself!


누구나 아름답고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 그걸 누가 부정할 수 있겠냐만은, 정작 자신을 생긴 것 그대로, 가진 것 그대로 사랑하는 여자가 얼마나 될까. 아니, 괜한 일반화 할 것 없이 나는 그렇지 못하다.


굵어진 허리와 뱃살 때문에 뭘 입어도 태가 안 난다. 바지 위로 튀어난 허리를 쳐다보다 너무나도 우울해졌다. "괜찮아요, 넉넉한 뱃살 역시 나 자신의 일부니까요, 사랑하는 아이를 가졌던 흔적이라고 생각하면 더더욱 사랑스럽죠." 도저히 이렇게는 말 못하겠다. 얼굴은 어떤가. 화장을 하고 머리를 잘 만져 놓으면 그래도 좀 인정이 되는데, 자연 그대로의 내 모습은 도저히 인정이 안 된다. 사실 전자가 거짓이고 후자가 진실인데 이상하게 거꾸로인 것 같다.


그래서 자존감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려면, 정기적으로 좀 제대로 꾸미고 외출을 해 줘야 한다. 그래도 구제불능일 때는 머리를 하거나 손톱발톱에 색칠을 하거나 화장품을 사거나 뭐 그런 소비로 마음을 달래주어야 한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다독이면서.

"나아질 수 있어, 니가 안 꾸며서 그래!"


산후, 육아기에 여자들이 우울증에 빠지는 이유 중 아주 커다란 부분은 외모의 변화일 거라고 확신한다. 사실 외모의 변화는 남자들도 마찬가지인데. 여자들은 임신 때 찐 살이 안 빠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고 맘 때 남자들도 못지 않게 배가 나오는 걸 보면 그냥 나이탓인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유독 여자의 자존감은 외모 요인이 무지하게 크다. 이유야 명확하지. 우리는 외모가 경쟁력이라고 아예 배우며 자랐고, 역시 외모는 경쟁력이구나 라는 걸 몸소 체험하며 살았으니까. 그리고 나의 경쟁력이 얼마만큼인지 알고 싶지 않아도 알 수 밖에 없는 여러 가지 상황들을 지나쳐 왔으니까. 그렇게 형성된 나의 외모와 나의 자존감 사이의 관계는, 마치 외국어의 뉘앙스처럼 남자들은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일 것이다. (물론 수많은 예외가 있겠지만!)



는 머리카락이 유독 빨리 자라서 그냥 두면 어느새 긴머리가 되어 버리는데 이번에도 미용실에 발길을 끊은지 1년 정도 되자 치렁치렁해졌다. 더이상 더워서 못 살겠다 싶어서 미용실에 갔다. 길이를 자르기만 했는데 정성들여 드라이도 해 주고 매끌매끌하게 뭔가도 발라주었다. 미용실에서 걸어 나오는데 가벼워진 머리카락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렸다. 뭔가 내 맘 속에 쳐 박혀 있던 밉고 굳은 녀석이 그 바람에 나풀나풀 날아가는 것 같다. 길가에 정차된 차 유리에 비친 나의 실루엣이 나쁘지 않다. 나는 내가 싫지 않다.


이렇게 쉽게 내가 괜찮게 느껴지는 걸 보면 여자로 사는 것도 나름 재미있는 것 같고. 예쁜 옷도 하나 사고 싶고. 살은 무조건 빼야 하고. 그런데 달콤한 커피 한 잔은 땡기고. 결국 죄책감을 끌어 안고 카페에 들어와 바닐라라떼를 마시며 배에 약간 힘을 주고 앉아서 이 글을 썼다.


저녁은 조금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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