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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부는날 Oct 09. 2019

내 이름은 다혜

마늘? 마늘이라니!

양파나 당근이었다면 나았을까. 아무래도 마늘은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어릴 적 어른들은 아이에게 이름의 뜻을 아느냐는 질문을 자주 했다. 젊은 부모가 아이를 얼마나 잘 가르쳤는가 시험하는 음흉한 의도가 숨어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부모님은 다소 성급하게 내 이름의 뜻을 일러주었다.


"다는 마늘 다, 혜는 으내 혜, 알겠지?"


으내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마늘이 무엇인지는 알았다. 마늘이라니! 왜냐고 따져 묻지 못했다. 어린 나이에도 부모가 자식의 이름을 매우 고심해서 짓는다는 걸 알았다. 어차피 바꿀 수도 없고, 이제와 싫다고 하면 부모님이 서운할 것 같았다.


남몰래 냄새나는 이름을 미워했던 꼬마는 자랐고, 지적 수준도 발전하여 이름에 대한 오해는 풀렸지만 이름을 좋아하게 되지는 않았다. 그 아이는 더 자라서 자기가 누구인지 고민하게 되었고 그즈음부터 이름을 다시 싫어하게 되었다.


엄마는 딩동댕 유치원의 다혜 언니를 보고 내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다혜라는 이름은 영화나 소설에서 예쁜 조연으로 자주 등장한다. 엄마는 이 이름에서 떠오르는 순수하고 해맑은 여자아이, 그런 느낌을 좋아했던 것 같다.


나는 내 이름이 가벼워서 싫었다. 왠지 다혜라는 여자는 지적이거나 중요한 일을 할 것 같지 않달까. 어떤 남자의 여자 친구 이름 같달까. 나는 내 이름이 좀 더 '있어'보였으면 했다. 책 표지나 포스터에 써 놓으면 어울리는 그런 이름 있지 않나, 뭔가 심오하고 독특한.


심오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다혜라는 소녀 나이가 더 들었고 , 더 이상 름이 좋은지 싫은지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필이 연필이고 가방이 가방인 것처럼 김다혜는 김다혜. 이름은 타인이 나를 부르는 것이지, 내가 나를 부르는 것은 아니니까. 요한 것은 이름이 아니니까. 그리고 알고 보니 나에게 그다지 심오한 구석이 없더라.


은혜가 많은 사람. 새삼 생각해보니 참 좋은 이름이다. 여태 참 좋은 사람들이 사랑스레 불러. 렇게 풍요로운 이름을 이미 가지고도 가지지 못한 것을 원하던 어린 마음은 지나갔. 그래서 지금이 좋다.


오직 내가 되고 싶을 뿐이다. 떤 시간, 어떤 공간에서도 떳떳하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그런 내가 되면, 다혜는 그런 이름이 될 것이다. 그렇게 나의 이름과 잘 살아가야지.


사랑스러운, 내 이름은 다혜.




고수리 작가님의 고유글방에서 함께 쓰기 시작했습니다. 떨렸던 첫 시간, 나의 이름에 대해 쓰고 나누었던 짧은 글을 수정했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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