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매실 Aug 01. 2022

행복하고 싶으면 행복하면 돼

울진 1박 2일

여행 테마를 표현하는 일을 한다. 기획자가 만든 여행 코스를 콘셉트화하여 리드 글을 쓰다 보니 어느새 100개 넘는 글을 썼다. 그중에서도 괜찮은 곳은 지도 어플에 찜해놨는데, 그중 하나가 울진이었다. 다행히 친구랑 시간이 맞아서 연차 쓰고 울진에 갈 수 있었다. 그간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냈다. 여유가 없어지니 평소라면 웃고 넘길 말들도 가시처럼 느껴지고 예민하게 받아들여졌다. 자존감이 낮았다. 안 좋은 상황이 다 내 탓같기도 하고, 다른 사람 잘못을 왜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하는지 화가 나기도 했다. 하루하루 우울이 쌓였다. 행복하고 싶은데 그렇지 않은 일상을 보내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오랜만에 떠난 여행이 설레었다. 잠깐이라도 회사와 우울한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바다를 마음껏 볼 수 있었으니까.



8시 30분에 출발했는데 울진에 3시쯤 도착했다. 운전한 친구만큼 피곤하진 않았겠지만, 온몸이 뻐근하고 고됐다. 그렇게 겨우 도착한 울진 스카이레일. 오프라인 선착순 예약이라 못 타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는데, 다행히 사람이 많지 않아서 10분 대기 후 탑승할 수 있었다. 열차 안은 작은 선풍기 한 대만 초라하게 돌아갔다. 바람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더웠기에 부채질하며 바다를 봤다. 바닷물이 얼마나 깨끗한지 바다 안에 있는 바위가 다 보일 정도다. 바다를 배경으로 스노클링 하는 사람, 낚시하는 사람, 수영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우리가 여름을 즐기는 것처럼 사람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스카이레일에서 내려서 드라마 <폭풍 속으로> 촬영지에 갔다. 드라마를 보지 않았지만, 이 촬영지에서 보는 바다는 훨씬 동화스러웠다. 촬영지 안은 너무 시원했고. 등대가 보이는 쪽, 산책로 따라 걷다 보면 바다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전망대가 나온다. 원래라면 바다만 멍하게 바라봤을 텐데, 날이 더워서 눈으로 빠르게 스캔하고 이동했다. 먼 길을 달려와서 그런지, 너무 빨리 보고 가는 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자꾸 뒤돌아보게 만들었다. 좀 더 있을까 망설이다 햇빛이 나를 쏘아보니 그 자리를 뜰 수밖에.



스카이레일에서 봤던 아저씨. 우리에겐 여행이지만, 현지인에겐 일상인 순간을 담는 걸 좋아한다. 옆에 펜션이 있는 걸 보니 펜션에 나와 잠시 휴양을 즐기는 듯했다.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으니 내 기분에 따라 상상해야지. 난 머무는 공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예전에는 집은 잠만 자는 장소라고 생각했다. 이불과 책상밖에 없었다. 편해야 하는 공간이 이상하게 싫었고 최대한 늦게 집에 갔다. 그러다 취미가 생기고 내가 만든 물건과 내 취향의 물건을 하나둘 채우다 보니 집이 좋아졌다. 그 기분을 알기에 잠깐 머물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순간으로 바꾸려 했다. 늘 같은 짚 앞 풍경이라도 파라솔을 설치하고 돗자리를 깔면 휴양지가 탄생하는 걸 아는 아저씨처럼.



죽변항에서 대게를 사서 덕구온천리조트로 갔다. 7월 콘도 패키지로 22평 콘도, 스파 온천 무제한 이용권, 삼겹살 500g 제공까지 받아서 159,000원에 예약했다. 숙소는 깨끗했고 스파도 사람이 많지 않아서 적당히 즐길만했다. 대게는 가락시장에서 먹은 것보다 조금 짭조름했지만 살이 실하고 맛있었다. 먹기 편하게 손질해 주셔서 버벅거리지 않고 먹었다. 늦게 출발해서 스파 이용은 어렵고 온천은 오후 10시까지 이용할 수 있었다. 자연 온천수로 물을 데우지 않아도 따뜻했다. 피로가 풀리면서 노곤노곤.


아침에 스파를 즐기고 라면까지 먹은 뒤 성류굴에 갔다. 인스타그램 핫플이라 오고 싶었는데 날이 흐려서 어디서 찍든 어둡게 나왔다. 친구가 덥다고 빨리 가자고 하기도 했고. 결국 인생샷은 못 건졌다. 아까비. 동굴 안은 신비로웠다. 이런 걸 보면 무섭다. 자연은 어떻게 이런 모습을 하고 있을까. 악몽을 꾼다면 이런 공간이 아닐까. 물은 깊이를 알 수 없었고 천장에서 무언가가 떨어질까 봐 손잡이를 꽉 잡으며 걸어갔다. 하마, 마귀할멈 등도 있다.

원래 성류굴 갔다가 이게 대게 왕비천점에 가려고 했는데, 하필 브레이크 타임에 걸렸다. 비까지 와서 결국 집으로 발을 돌렸다. 아쉬운 표정을 하자 친구는 가다가 괜찮은 곳에 가자고 했고, 바로 앞에 있는 불영사 표지판을 본 나는 친구의 말을 놓치지 않았다. "불영사 가자!" 난 불영사가 가장 좋았다. 비가 와서 풀냄새가 났고, 그늘이 있어서 많이 덥지도 않아 걸을만 했다. 오름막길에선 말이 없어졌지만. 온 세상이 푸릇한 걸 보면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은지 모르겠다. 시멘트 건물에서 벗어났다는 걸 실감해서 일까. 흙길을 밟는 것도 좋고. 가는 길이 생각보다 멀어서 친구 눈치는 보였지만, 돌아가는 길은 멀지 않았다.



뜬금없이 오징어 게임에서 상금 타면 뭘 할 건지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는 최고급 요리를 먹고, 최고급 집을 사고, 최고급 의료진에게 건강 관리를 받을 거라고 했다. 돈이 최고란 말도 덧붙였다. 친구는 내게 돈이 최고가 아니면 뭐가 최고인지 물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가 많아서 대답을 망설이다가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돈은 중요하다. 돈이 있어야 먹고 싶은 걸 먹고, 돈이 있어야 사고 싶은 걸 산다. 예전의 나였다면 나도 '돈'이 최고라고 답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돈이 전부는 아니다. 돈으로 어떤 행위를 할 순 있어도 행복까진 얻을 순 없다는 걸 알아서일지도 모른다. 부유하지 않은 환경에 자라서 늘 돈에 시달렸다. 엄마 아빠는 내게 눈치를 주지 않았지만, 스스로 눈치 받으며 돈을 아끼려고 애썼다. 그렇게 아끼다 보니 난 나한테 돈 쓰는 법을 몰랐다. 뭐든 저렴한 것만 찾았다. 어느 날 친구들이랑 찍은 사진 속 나를 보고 무언가의 잘못됨을 느꼈다. 화려하고 예쁘게 꾸민 친구들과 달리 나는 화장도 하지 않았고 예쁘지도 않았다. 초라하고 안쓰러워 보였다. 그 뒤로 옷도 사고, 미용실도 자주 다니면서 나와 맞는 스타일을 찾으려 했다. 그러다 보니 내게 취향이 생겼다.

 


그때쯤 학과가 맞지 않아 전과를 했다. 남들보다 뒤처진 진도를 채우기 위해 도서관에 갔다. 책을 완독 한 적 없었기에 쉬운 책을 찾다가  <지구별 여행자>를 발견했다. 인도 여행 에세이. 이 책을 읽고 인도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뭘 하고 싶은지, 잘하는 게 뭔지 나에 대해 하나도 알지 못했기에 인도에 가고 싶다는 그 호기심을 외면할 수 없었다. 모두의 반대를 뒤로 하고 하루에 아르바이트를 3개씩 하며 인도로 떠났다. 웬걸 인도는 너무 넓었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좋았다. 한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여운이 남았다. 난 이 감정을 잊지 않기 위해 글을 썼다. 막연하게 좋다고만 느꼈던 것들이 글로 옮기니 왜 좋은지, 내 마음은 어떤 상태였는지 눈에 보였다. 이런 마음을 블로그에 옮겼고 사람들은 내 글을 보고 ‘위로받았다, 좋은 경험 부럽다’ 등의 댓글은 남겼다. 나를 위해 쓴 글이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그때부터 조금씩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다 보니 일상을 다르게 보는 시선까지 얻을 수 있었다. 이건 돈이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돈만 벌었다면 느낄 수 없었고 지금의 내가 될 수 없었다.


돈은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다. 돈이 없을 때를 알아야 돈 없는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고, 돈이 있을 때를 알면 돈 있는 사람의 여유를 알 수도 있다. 어떤 경험이든 중요하다. 경험이랑 돈은 연결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돈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오랜만에 잊었던 무언가를 되찾고 온 기분이었다. 행복하고 싶다. 그럼 행복하면 된다. 나는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를 잘 안다. 어떻게 하면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러니 행복을 바라기만 하지 말고 지금 실행하면 된다. 좋아하는 과자를 먹으며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거나 카페 가서 일기를 쓰거나 헌책방에 가서 책을 사면서. 간단하게 채울 수 있는 행복을. 멀리 있지 않은 행복을.


이번 여행과 많이 닮아있었던 잔나비 - 슬픔이여 안녕.

무언가를 찾으러 떠난 거 같은데, 그게 뭔지 몰라 방황할 때. 원래의 나를 잃어버릴 만큼 힘들지만, 행복해야 한다며 나를 괴롭힐 때.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가보자고 말하는 것 같았다. 슬픔은 이 자리에 두고 나아가 보자고. 뒤돌아봤을 때 지난 슬픔이 아름다운 빛이 되어 한층 성장한 내 뒷모습을 보며 웃고 있을 테니. 지친 나를 위로하는 것 같아서 울진 여행하면 슬픔이여 안녕이 생각난다.


이젠 다 잊어버린 걸. 아니 다 잃어버렸나. 답을 쫓아왔는데 질문을 두고 온 거야. 돌아서던 길목이었어. 집에 돌아가 누우면 나는 어떤 표정 지을까. 슬픔은 손 흔들며 오는 건지 가는 건지. 저 어디쯤에 서 있을 텐데. “이봐 젊은 친구야 잃어버린 것들은 잃어버린 그 자리에 가끔 뒤 돌아보면은 슬픔 아는 빛으로 피어-"

나는 나를 미워하고 그런 내가 또 좋아지고 자꾸만 아른데는 행복이란 단어들에 몸서리친 적도 있어요. “이봐 젊은 친구야 잃어버린 것들은 잃어버린 그 자리에 가끔 뒤 돌아보면은 슬픔 아는 빛으로 피어" “저 봐 손을 흔들잖아. 슬픔이여 안녕- 우우-" 바람 불었고 눈 비 날렸고, 한 계절 꽃도 폈고 안녕 안녕 구름 하얗고 하늘 파랗고 한 시절 나는 자랐고 안녕 안녕

잔나비 - 슬픔이여 안녕
매거진의 이전글 찬란한 빛이 주는 황홀한 위로, 강릉 아르떼 뮤지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