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가 되니 시간이 쏜살같다. '지금이 1월이라고?'라고 말했던 날이 기억나는데, 벌써 12월 31일이라니. 나이 들수록 비슷한 일상을 보내기 때문에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일과 집을 반복했을 뿐인데 1년이 지나갔다. 빨리갔어도 365일 모두, 헛되이 보내지 않았겠지. 작년 목표는 글, 건강, 회사 적응이었다. 목표를 잘 이뤘는지 한번 돌아봤다.
회사에선 분 단위로 계획하며 업무를 쳐내기 바빴다. 입사했던 6월 이후로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이 사실이 쓸쓸하게 느껴져 잠 못 드는 날도 많았다. 그럼에도 일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야근이 없어서 저녁의 삶이 어느정도 보장됐고, 일도 어렵지 않고 무난했다. 대표님이 내게 다 맡기는 만큼 책임감을 필요로 하는 일은 많았지만, 크게 터치하지 않아서 스트레스 받을 일도 많지 않았다. 마감일을 빠듯하게 잡은 건 힘들지만, 그건 어느 회사나 다 그렇다 보니 뭐 이해하고 넘어가야지. 오자마자 업무를 받아서 자연스럽게 적응했던 것 같다.
글 쓰는 것도 꾸준히 했다. 매주 토요일, 단골 카페에서 좋아하는 라떼를 마시며 2시간 정도 글을 썼다. 에세이, 일기, 소설 등 가리지 않고 쓰고 싶은 글에만 집중했다. 이렇게 쓰는 사람이 된 것도 글을 읽고 자기 생각을 잘 전달하는 사람을 봤기 때문이었다. 그런 사람들과 가까이 하다 보니 글을 잘 쓰고 싶어졌다. 덕분에 하성란 작가님의 소설 쓰기 수업을 들었다. 이런 수업과 모임을 할수록 내가 좁은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내 한계를 알면서도 그 한계를 넘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이 정도의 애매함과 이 정도의 꾸준함도 나쁘지 않다며 나와 타협했다. 그러다 글에 대한 애정이 깊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난 정말 열심히 '척'만 했구나. 새로운 시도와 경험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것저것 할 뿐 깊이가 없었구나.
최근에 쓴 글을 읽어 보니 늘 쓰던 단어만 사용하고 있었다. 표현력이 멈췄다. 글을 쓰고 싶다면서 비슷한 단어로 비슷한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니. 반성과 다짐이 같이 있으니 2025년 목표가 생겼다. 독서, 영화, 전시 등 문화와 문학을 가까이에 두고 표현력을 키워야겠다. 그래서 올해 김이설 작가님 소설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1년에 6편 작성한다는 목표도 세워졌다. 수업을 들으면 쓸 수밖에 없다. 피드백을 꼼꼼히 해 주셔서 글의 방향을 설정하고 상상력을 글로 옮기는 방법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꽤 재미있다. 행동력 하나만큼은 끝내준다!
필라테스를 다닌 지 2년이 됐다. 바른 자세와 근육을 만들고 싶었지만, 근육은 그대로였고 유연함은 늘었다. 이것도 나쁘지 않지만, 건강한 몸매를 만들고 싶다. 필라테스를 멈추고 2월부터 PT를 등록했다. 11자 복근을 만드는 게 목표이다. 운동 목표를 묻는 선생님께 “건강이요.”라고 말했다. 건강해져야지. 건강검진도 예약했다. 2030이 되면 갑상선 초음파, 복부 초음파, 자궁 초음파, 유방 초음파, 대장 내시경, 위내시경을 받아보는 게 좋다고 한다. 이 항목이 들어간 패키지로 예약했다. 돈… 손이 떨리지만 해야 히는 걸.
다행히 내 일상의 안정감은 있었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내고 있고, 그 안에서 어떻게 하면 내 기분이 좋아질지도 안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드라이브하며 울적한 기분을 달래곤 했다. 꾸준히 할 취미를 만들고 싶었는데 다행히 재봉틀도 쉬지 않고 있다. 내 취향의 옷을 찾기 어려워서 시작한 취미였는데, 1년 동안 치마, 바지, 원피스, 파우치 등 다양한 걸 만들었다. 그 옷을 입을 때마다 “이거 내가 만든 거야.”라고 자랑하고 다닌다. 쇼핑몰에서 내 취향의 옷을 찾기보다 내가 만들고 싶은 옷을 더 찾게 된달까. 진심으로 내 취미를 좋아하고 즐기고 있다.
반면, 2024년에 이별하면서 누군가를 만날 에너지를 잃었다. 모든 게 귀찮았고 딱히 누군가를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내 일상을 지키며 일하다 보니 소개팅이 들어왔다. 그 소개팅을 시작으로 내가 누군가를 좋아할 준비가 됐다는 걸 알게 됐다. 근데 그맘때 그 인연이 끊어졌다. 지하철 파업이 있던 때였다.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힘들었다. 안그래도 지하철 타는 게 무서웠는데 집에 가도 혼자라는 게 더 무서웠다. 그다음 날 병원에 가니 공황장애 초기 증상이라 했다.
첫 번째 상담이 끝나면 문장을 완성하는 숙제를 내준다. 예를 들면 “난 아빠를 보면 제일 먼저 ______” 이런 느낌이다. 내가 완성한 문장을 보면서 선생님은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생각해 보면 이별했을 때 모두에게 버림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들 내 안부를 물어줬지만, 그 걱정이 와닿지 않았다. 물론 내가 힘들 때 내 곁에 있어줄 거라는 건 안다. 하지만 각자 생활이 바쁘기 때문에 그 힘듦을 계속 나눌 순 없다. 나눠주고 싶지도 않고. 한번 정도 힘들다 하고 혼자 힘듦을 삼켰다. 그래서 내가 결혼을 하고 싶었구나 싶었다. 평생 내 편. 헤어질 두려움 없이 온전히 나일 수 있는, 내가 힘든 일이 있을 때 기댈 수 있고 내가 좋은 일이 있어도 함께 나눌 수 있는 내 편. 안정감 있는 생활같은 거 말이다. 최근에 만나던 사람도 내 편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었기에 실망이 컸고 그만큼 상심도 컸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마음 놓고 사랑해 본 적이 없었다. 늘 불안한 연애를 했다. 이 사람도 언젠가 떠나가겠지,라는 생각 때문에 좋아해도 마음껏 좋아하는 마음을 전하지 못했다. 상처받기 싫어서 스스로 막은 마음이 오히려 상처받게 했다. 이젠 있는 그대로 사랑을 해야 후회도 없다는 걸 안다. 잘해주지 못한 마음이 미련으로 남고 그게 더 나를 괴롭혔다. 내가 이런 사람이 된 건 내가 과거의 상처에서 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라 한다. (아니면…) 나이들면 외로움만 더 선명해진다는데 외로운 건가. 아직 감정을 구분하기 어렵다.
그래도 내가 어떻게 하면 기분 좋아지는지 알고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선생님은 빠르게 극복할 거라고 말했다. 공황장애에서 벗어나고 싶은 의지가 있어서 일까. 점점 좋아지고 있다. 아직 지하철 타는 게 무섭긴 해도 두려움은 이전보다 줄었다. 혼자 있는 것도 괜찮아졌다. 결국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나. 계속 내 과거의 상처와 마주 보는 연습 중이다. 내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고 해결 방법을 찾으려 한다. 그 중심에 글이 있을 것 같다. 이전엔 일기 쓰는 거에서 그쳤다면 지금은 이야기를 만들어내서 더 깊은 글을 만들고 싶어졌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고 했지만, 2024년에도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잘 보냈던 것 같다. 2025년에도 나를 알아가며 하고 싶은 일을 더 가까이하다 보면 나와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