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카드
4월 11일. 생의 첫 기억은 무엇인가요?
기억이란 늘 질서 정연하지 않다. 뒤섞이고 희미해지고, 때로는 내가 만들어낸 환상과도 구별이 어렵다. 기억 속의 시간도 겹겹이 쌓이기보다 뒤죽박죽 섞여 있어서, 어떤 날엔 유치원생이고, 어떤 날엔 고등학생이 된다. 그렇게 무작위로 튀어나오는 기억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기억 하나를 골랐다. 엄마와 동생과 함께 영화관에 가던 어느 날의 오후였다. 그 영화가 <집으로>였는지 <해리포터>였는지는 가물가물하지만, 엄마의 손을 꼭 잡고 거리를 걸을 때의 감정만큼은 또렷하다. 나는 그 순간 행복했다. 분명히.
어릴 적, 엄마와 아빠는 맞벌이를 하셨다. 어린 나로선 함께 있는 시간을 당연히 바랐겠지만, 떼를 쓰지 않았다. 어렴풋이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가 살던 곳은 작고 오래된 집이었다. 그 공간만으로도 나는 우리 형편이 넉넉지 않다는 걸 알았다. 그럼에도 엄마는 언제나 우리를 위해 애썼다. 우리가 원하는 걸 최대한 해주려 했다. 그래서 나는 엄마를 미워할 수 없었다. 아니, 밉지 않았다. 주말마다 우리와 함께하려 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오히려 주말을 기다렸던 것 같기도 하다. 그때를 떠올리면, 애틋하여 그립고, 따듯하여 더 그립다.
4월 12일. 가장 사랑하는 장소는 어디이며, 그곳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나요?
사랑하는 장소는 참 많다. 하지만 질문에 '가장'이란 단어가 붙었기에 나의 대답은 어쩌면 뻔하다. 바로 ‘집’이다. 한때 수원에 머문 적이 있다. 직장과 가까운 곳에 집을 구했고, 마음에 들지 않았음에도 오로지 ‘가깝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계약을 했다. 입주할 때 청소비를 냈지만, 냉장고와 화장실 구석엔 곰팡이가 억세게 남아 있었다. 닦아도 닦아도 지워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집에 정이 들지 않았다. 잠시 살 집이라며 애써 무심해지려 했다. 그래서일까. 그 공간엔 이불과 큼지막한 책상, 그리고 몇 개의 그릇뿐이었다. 야근이 많은 날엔 잠만 자도 그만이라 여겼지만, 야근이 없는 날에는 이상하리만치 집에 가기 싫었다. 그 마음이 커질수록 집은 점점 더 낯설고 머물기 싫은 곳이 되어갔다. 결국 이사를 결심했다. 이번엔, 집을 선택하는 조건을 늘렸다. 햇살은 잘 드는지, 벽에 곰팡이는 피지 않았는지, 교통은 편리한지 꼼꼼히 살폈다. 정말 많은 집을 봤고, 그만큼 마음에 쏙 드는 집을 만났다. 처음부터 마음에 들어서일까. 문에 예쁜 포스터를 붙이고, 요리하기 좋은 넓은 테이블을 구매하고, 책 읽기 좋은 작은 소파도 들여놓았다. 물건 하나하나, 내 취향이 반영되니 그 공간은 점점 나를 닮아갔다. 어느새 집은 ‘돌아가고 싶은 곳’이 되었다. 오늘은 LP를 틀고 책을 읽어야지, 오늘 저녁은 김치찌개를 끓여 먹어야지. 일상이 조금씩 풍성해졌고 내가 좋아하는 곳에서 하고 싶은 일도 많아졌다. 나는 여전히 취미 공간과 쉴 공간, 일하는 공간을 구분하며 산다. 내 집에 놀러 온 친구는 내 공간을 보며 "네 삶이 보인다"라고 말했다. 나의 취향이 더욱 선명해졌고, 그만큼 내 시간도 소중해졌다. 집은 잠시 머무르는 공간이지만, 내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집을 사랑할 수도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 집의 의미를 알았기에 나는 내 공간에서 가장 나답게 지내고 있다.
4월 13일.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당신의 루틴은 무엇이며, 그것이 삶에 미치는 영향은 어떤가요?
한때는 안정적인 루틴이 싫었다. 정해진 흐름에 따라 움직이는 삶은 너무 평범해 보였고 지루했다. 그래서 언제나 새로운 것을 좇았다. 낯선 길, 낯선 일, 낯선 취미, 늘 이런 새로움이 나를 살아있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자극이 없으면 불안해지고, 새로움이 익숙해지면 또다시 허탈해지는 나 자신을 마주했다. 그제야 내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왜 늘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는 걸까? 무엇을 위해 이렇게 나를 다그치는 걸까?’ 그 질문엔 명확한 답이 없었다. 결국 나는 어느새 한 가지에 오래 머물지도, 그렇다고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는 애매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겉으론 열정적이지만, 내면은 늘 어딘가 비어 있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신선함이 조금만 있어도 하루가 달라질 방법은 없을까? 그때 안정적인 루틴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평일, 아침마다 화장을 하며 스픽으로 영어를 연습하고, 출근길엔 유튜브로 영어 브이로그를 듣는다. 퇴근길엔 책을 읽고, 집에 돌아와선 밥을 차려먹으며 유병재, 문상훈, 찰스엔터의 유튜브를 본다. 기획과 공감, 재미가 고루 담긴 그들의 이야기는 내 일상에 작은 웃음을 더해준다. 또는 평일 저녁에 약속을 잡아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단골 카페에서 글을 쓰거나 새로운 모임에 나간다. 그게 내게 주는 일상의 새로움이다.
주말에도 평소처럼 일찍 일어나 집을 정리하고, 샤워 후 밥을 차려 먹는다. 익숙한 골목을 지나 좋아하는 카페에 들러 소설을 쓰거나 일기를 쓴다. 그 외 시간엔 친구를 만나거나 서점에 들러 책을 사거나, 내가 좋아하는 취미에 집중한다. 그렇게 나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약간의 새로움을 더하며 살아간다. 자극 없이도 하루는 충분히 다채롭고, 새로운 시도 없이도 삶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걸 안다. 안정적인 루틴이 내게 선물해 준 건 ‘평온’이었다. 그 평온이야말로, 내가 그토록 갈망하던 삶의 한 형태였을지도 모르겠다.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 하루가 달라지고 내가 어떻게 하루를 정리하느냐에 따라 하루의 기분이 달라진다는 걸 알기에 비슷해 보이는 하루를 오히려 더 들여다보려 한다. 덕분에 내 삶이 안정적으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