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되새기고 현재를 살며 미래를 고민하는 요즘

질문카드

by 매실

4월 14일. 당신이 가장 즐겨하는 행위(활동, 일 등)가 있나요? 그 행위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아침마다 하는 작은 의식, 돈 계산하기. 여행지에서 하루하루 얼마를 썼는지, 그리고 얼마가 남았는지를 계산하는 습관이 생겼다. 어느 날은 풍족했고, 또 어떤 날은 빈 주머니를 의식하며 하루를 보냈지만, 이상하게도 그 모든 날이 만족스러웠다. 그 작은 만족이 좋아서일까. 나는 지금도 매일 아침, 통장 계좌를 확인하며 어제는 얼마를 썼고, 오늘은 얼마를 쓸 수 있는지 확인했다. 오늘도 역시 가난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했는데, 뜻밖에도 이사님이 점심을 사주셨다. ‘돈을 아꼈다’는 생각만으로 괜히 기분이 좋아지고, 내일은 조금 더 써도 되겠다는 여유에 부자가 된 기분까지 들었다. 하루살이처럼 산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살아진다는 게 어쩐지 뿌듯하다. 하루 용돈을 체크하며 시작하는 아침은, 오늘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해주는 나만의 작은 의식이다.


4월 15일. 자주 상상하는 자신의 미래의 모습은 어떠한가요?

나는 상상을 좋아한다. 웬만해선 이루기 힘든 상상을 말이다. 다소 현실성이 떨어지더라도 혹시 모르니 상상에만 머물러 있을 거라고 단정 짓진 않겠다.

음악을 들을 때면, 자연스럽게 그 음악에 어울리는 장면들이 떠오른다. 일단 가정은 이렇다. 내가 스토리 콘서트를 여는 상황이다. 그 무대에는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이 공연을 하고, 나는 그 음악 위에 이야기를 더하는 연출가이다. 오늘은 박창근의〈잊지 말아줘>를 들었다. 그 음악을 듣자마자 머릿속에서 혼자 오르막길을 오르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연출됐다. 나는 묵묵히 그 길을 걸으며, 가끔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끝이 보이지 않는 오르막길을 힐끔 보며 계속 걷는다. 중간중간 무덤처럼 솟은 작은 동산들도 보이고 바람에 떨어진 팻말도 보인다. 방향성을 잃은 팻말을 보고 더 오를지 망설이다 바닥에 털썩하고 눕는다. 그때 하늘에 수많은 별이 보인다. 사실, 처음부터 별은 그곳에 있었는데 계단만 보며 오르기만 하느라, 별이 있는 줄도 몰랐던 거다. 잠시 별을 보면서 별자리를 만들며 숨을 고른다. 하늘을 보며 숨을 고른 이후로는, 길을 오르면서도 종종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볼 여유가 생긴다. 뭐, 이런 식이다. 이렇게 떠오르는 스토리들은 때론 진부하고, 때론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극적이다. 그러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글로 남긴다. 비록 완성되지 않더라도, 나는 계속 이야기를 만든다. 어쩌면 내가 하는 이 상상들이, 결국은 나 자신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싶다. 이왕 이렇게 상상하는 거 나중에 진짜 스토리 콘서트를 열고 싶다. 한 편의 영화를 본 듯한 여운이 남는 콘서트를 말이다.


4월 16일. 당신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요?

행복이란 무엇일까. 예전엔 꼭 필요한 감정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행복을 좇으면 오히려행복하지 않은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제는 행복을 크게 염두하지 않는다. 배고플 때 밥 먹을 수 있다는 것, 커피마시고 싶을 때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것. 그정도의 소소한 즐거움이면 충분하다. 그 순간에도 행복하다는 말은 굳이 꺼내지 않는다. 계속 행복을 꺼내지 않으려 했기 때문일까. 행복이란 감정을 떠올리려면 애써 과거를 파헤쳐야 한다. 그러다 혹시 내가 행복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나 하고 좌절할지 모르니 그건 하지 않겠다. 그런데 요즘, 주변에서 종종 내게 말하곤 한다. 너무 쉽게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다고. 날씨가 좋아 기분이 좋고, 밥이 맛있어서 기분이 좋은 그런 사람. 그 말을 들었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행복이 항상 곁에 있는 사람이었던 건 아닐까.


4월 17일. 삶에서 가장 큰 깨달음을 준 순간은 언제였으며, 그것이 삶에 어떤 변화를 일으켰나요?

삶에서 가장 큰 깨달음의 순간을 꼽으라면, 21살, 인도로 떠났던 여행이 떠오른다. <지구별 여행자>책을 읽고 무작정 인도 한 달 살기를 떠났다. 그리고 그 여행은 내 삶을 다른 결로 바꿔준 여행지로 남아있다. 인도를 여행하면서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나고 스쳤다. 다른 문화, 낯선 풍경, 자유로운 사람들 속에서 내가 정말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실감했다. 그런 만남들이 이어지면서 나 역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마음이 생겼고, 그 여유 속에서 조금씩 나를 풀어놓았다. 덕분에 익숙했던 내 모습과 다른 나를 만날 수 있었다. 내가 이렇게 자주 웃는 사람이었나? 모르는 사람과도 이렇게 편하게 말을 나눌 수 있었던가? 스스로 놀랄 만큼, 다른 사람이었다. 영어가 좀 더 능숙하다면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쉬움은 영어 공부를 하게끔 만들었다. 인도를 계기로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을 또 경험하고 싶어졌다. 그 뒤로도 여러 나라를 여행했지만, 인도만큼 깊이 각인된 곳은 없다. 그래서일까. 해외 어디가 가장 기억에 남냐는 질문을 받으면, 늘 주저 없이 인도라고 말한다. 그곳에선 하루가 지나가는 것이 아쉬웠다. 그 기억이 사라지는 게 아쉬워, 인도 여행 이후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아직도 바람, 공기, 그 분위기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인도는 내 세계를 넓혀준 여행지이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만든 곳이기도 하다. 지금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더라도, 나는 또다시 인도로 떠날 것이다.


4월 18일. 자주 피하거나, 피하고 싶은 상황은 무엇인가요?

자주 피하거나, 피하고 싶은 상황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자연스레 ‘업무 환경’을 떠올린다. 현재 회사 특성상 한 사람이 감당해야 할 일의 양이 많은 편이다. 일에 대한 욕심이 있는 편이라, 쉽게 불평을 입 밖에 내진 않았다. 문제는 실수가 생겼을 때다. 상사는 내 잘못을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를 꺾으려는 말투로 꾸짖는다. 감정을 덜어내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니지만, 꼭 상대를 작게 만드는 싫은 말까지 덧붙여야 할까 싶다. 의견을 내보려 해도,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목구멍에서 삼켜버리는 일이 잦아졌다. 출근길도 점점 무거워졌다. 매일 아침이 버겁고, 회의 시간이나 피드백을 받는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초조해진다. 도망치고 싶은데, 피할 수 없는 문을 향해 걸어가는 기분이다. 불만이 딱히 없었던 업무의 양도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나가 불만족스러우니 그와 연결된 모든 게 싫어진다. 사실, 내가 피하고 싶은 건, 일이 아니라 나를 위축시키는 말의 방식인데. 내가 말이 줄어들고 축 늘어지는 모습에서 변화가 필요함을 느끼고 있다. 이런 걸 보면 나는 정말 말의 영향이 큰가보다.


4월 19일. 인생에서 가장 큰 도전은 무엇이었으며, 그 도전의 의미는 무엇이었나요?

인생에서 가장 큰 도전은 무엇이었을까. 어릴 적 내가 생각한 도전은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거나, 가진 돈을 모두 털어 세계여행을 떠나는 것이었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기에 도전이라고 말하기엔 조심스럽지만, 한 번쯤은 청춘이라는 말에 기대어 무모한 걸 해보고 싶었다. 이것저것 생각만 하며 나서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 내 감정에 솔직해지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하고 싶었다는 말에서 느껴지듯,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한 편으론 아쉽다. 내가 그 시절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 같아서. 드라마나 영화에서 청춘을 시각적으로 보여줄 때마다 마음이 복잡해진다. 지금이라도? 아니야!의 마음이 계속 싸우고 서로를 설득한다.

그때 당시 나는 도전대신, 일을 선택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나를 알아가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그 마음이 있어서인지, 조금만 관심있으면 바로 시도했다. 어떤 날은 바리스타, 어떤 날은 기획자, 어떤 날은 마케터. 이 모든 시도들이 나름대로 도전적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어느 날에 나를 보니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고민의 기로에 섰다. 하던 걸 계속 해야 할까, 아니면 정말 하고 싶은 걸 해야 할까. 고민 끝에 나는, 그 동안 해오던 일과 다른 길을 택했다. 에디터. 사실, 글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라 생각했기에 쓰고 싶다는 내 마음조차 외면했다. 그러다 아주 뒤늦게, 내가 뭐 어때서, 내 글을 좋아하는 사람도 한두명은 있지 않을까? 아무나가 안 되면 되지!라고 생각을 바뀌었고, 나는 마침내 쓰는 사람으로 살기로 결정했다. 원래 하던 일이 아닌 새로운 직종을 바꾼 선택이 내 인생에선 가장 큰 도전이었다. 에디터를 뽑는 회사는 많지 않고 보수도 높지 않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내가 이 직종을 선택했다는 건 그만큼의 내 가치관이 단단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선택을 하기까지 수많은 불안과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에디터를 선택한 뒤로 불안은 없다. 오래 고민한 만큼, 불안보다 나아짐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에디터에서 머물지 않고 나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소설수업도 듣고 있다. 내 글이 얼마나 확장될 수 있을지 나조도 기대된다.


4월 20일. 겪었던 가장 큰 시련은 무엇이었으며, 그 시련을 극복했나요, 그대로 두었나요?

시련이라고 할 만한 일이 딱히 없는 것 같다. 크게 힘들었던 순간을 떠올리자면, 아마도 이별과 이직이 아닐까. 둘 중에 더 힘들었던 건, 첫 번째 이별이었다. 그는 나의 첫 남자친구였고, 이별 또한 처음이었다. 모든 게 처음이라, 모든 행동이 서툴 수밖에 없었다. 나는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고, 그가 없는 이후의 삶을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는 노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연락이 되지 않아 오해가 생기는 날들이 많아졌고, 그럴수록 나는 불안했다. 내 마음까지 챙길 여력이 없던 그는 나를 떠났다. 나는 그 허전함을 견디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새벽 여섯 시부터 늦은 저녁까지, 바쁘게 움직였다. 일을 하는 동안은 생각이 나지 않았고, 그래서 견딜만 했다.하지만 일이 없는 순간, 그동안 외면했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건 그냥 ‘잠시 미뤄둔 감정’이었지,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었다. 처음 겪는 일이었기에, 그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도 몰랐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최대한 오래 외면하는 것이었다. 감정을 바라볼 용기가 생길 때까지, 그냥 조금 더 밀어두기로 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비로소 그 감정을 마주할 준비가 되었다. 내가 왜 아팠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나를 다뤄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첫 이별 이후, 나는 남자친구에게 쏟았던 관심을 나 자신에게로 돌렸다. 지금 생각하면, 더 많은 사람을 만나보는 것도 괜찮았겠다 싶지만, 그땐 그게 최선이었다. 이별이 두려웠고, 마침 취업도 했기에 나에게 더 많은 관심이 생겼다. 결론적으로, 그 시기 덕분에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 사람인지 알게 됐다. 그래서 외면이 꼭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준비가 될 때까지 나를 기다려주는 것도, 어쩌면 나에게는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그 외면의 시간 덕분에 나는 이성적으로, 그리고 나를 위한 선택을 할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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