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에서 멈춰있는 듯했지만, 성장하고 있었다.

<나의 비정규 노동담> 리뷰

by 매실


20살이 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집 근처에 있는 빵집이었는데, 3층에 영화관이 있어서 영화 시간만 되면 많은 사람이 한 번에 들어왔다 나갔다. 그럴 때마다 서로 하이파이브하며 한숨 돌렸다. 그때의 기억이 좋다. 동생만 있던 내게 언니 오빠가 생긴 것도, 마감 때 남은 빵을 가져갈 수 있었던 것도. 무엇보다 몇 십만 원이라는 월급이 제일 좋았다. 엄마 아빠에게 저녁을 사주고도 돈이 남던 그때를 잊을 수가 없다.


기숙사 생활을 위해 일은 그만뒀지만, 우린 꾸준히 연락하면서 지냈다. 그러다 서로 연락이 뜸해졌고, 9년이 지난 지금은 번호도 남지 않았다. 아쉬웠다. 처음의 서먹함, 잦은 실수에 위축되던 그때, 친해지면서 일 외의 이야기를 할 수 있던 그때가. 모르고 지냈던 사람이 아는 사람으로 변하면서 내 삶의 일부분을 차지했다.



아르바이트에 로망이 있었다. 사실 드라마가 한 몫했다. 편의점에서 일하거나 주유소 혹은 카페에서 일하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으니까. 돌이켜서 보면 다 생활비 벌기 위해, 월세 내기 위해, 핸드폰 비 내기 위해 일하는 거지만. 일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고, 울기도 했으며, 즐겁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이번 <나의 비정규직 노동담> 책은 지나간 직업을 떠올리게 했고, 여전히 방황하는 내 상황을 이야기해주는 것 같았다.


글 쓰기 위해선 일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 일 때문에 글 쓸 시간이 줄어들었다. 이 반복적인 굴레를 겪으며,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야기가 담겨있다. 사람은 다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일상에서 불안을 느끼고, 글 쓰고 싶은 의지를 억누르며 다시 현실을 찾는 모습에서.


하루 종일 책을 만지고 책 속을 들여다보는 일을 해서인 걸까.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돈을 벌어야 한다는 마음을 그새 또 눌러버린 걸까. 일한 지 육 개월쯤 지났을 때 나는 팀장에게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조금만 더 버텨서 같이 엠디로 일하면 좋을 텐데, 하고 팀장은 아쉬워했지만 그런 말을 듣고서도 어쩐지 아쉽지가 않았다. 더 늦기 전에 어서 등단을 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두 달 뒤, 다시 아르바이트 구직 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하는 나 자신을 만나고야 만다. 글을 쓰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지만, 글을 계속 쓰기 위해서는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구해야만 했다.

-나의 비정규직 노동담 중에서



어떤 일을 하면 좋을지 혼란스러웠을 때도 난 아르바이트를 했다. 28살 때까지 아르바이트하던 나를 부모님은 답답해했고, 친구들 역시 응원한다곤 했지만, 눈빛은 정신 차리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르바이트를 그만둘 수 없었다. 내겐 생활비가 필요했으니까.


내 모습을 보면 20살에서 멈춰있는 듯 보인다. 여전히 불안하고 답답하다. 부모님과의 잦은 다툼으로 자취를 선택하면서 더 이상 일을 그만둘 수 없게 됐다. 일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쯤이면 혼자 있기 싫었고, 늦은 밤이라도 카페에서 책 읽다가 집으로 들어가곤 했다.


이 사람, 작가가 꿈이라더니? 그랬다. 하지만 꿈은 꿈이고 돈은 벌어야 했다. 언제나 무언가를 쓰고 있었고 머릿속으로는 온통 작가가 되는 길을 생각했지만 되지 못했다. 졸업할 즈음엔 등단도 하고 시상식에도 가고 책도 나오고 그럴 줄 알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나는 단순하게 생각하려고 했다. 내게 시간이 좀 더 필요한 거라고. 글을 쓸 수 있는 시간과 정신을 확보하면서 최소한의 노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내가 이미 알고 있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믿었던 일)


-나의 비정규직 노동담 중에서


카페엔 친구들과 대화하는 사람, 공부하는 사람, 나처럼 책 읽는 사람이 있었다. 모두들 나와 같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곤 했다. 그랬던 시간들이 지나고 드디어 하고 싶었던 에디터 일을 구했다. 그전에 받았던 월급보다는 많았으며 적금도 시작할 수 있었다. 가장 기분 좋은 것 중 하나는 부모님께 저녁을 사줘도 돈이 남는다는 것이다. 20살 때 그때처럼.


매번 어떤 일을 할지 고민하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을지 생각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그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지난 선택 덕분에 현재의 내 일과 삶을 찾을 수 있던 것 같다. 친구들은 내게 물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한다면 돌아갈 거야?" 그럴 때마다 싫다고 했다. 분명 좋았지만, 그 과정을 또다시 겪고 싶지 않다. 그리고 난 지금의 내 모습도 좋다. 사는 데 바빠서 과거를 돌아볼 시간이 없었다. 과거를 추억하고, 지금을 보면 좀 단단해진 걸 느낄 수 있다.


사실상 나의 어린 시절은 여기서 끝이 났다. 그땐 몰랐는데 지금 도아보니 그렇다. 세상에 태어나서 부모오 함께 한 시간도 여기까지였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시간도 여기까지였다. 무엇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절망하고 방황하던 시간도 여기까지였다. 이후로 나는 몇 년을 훌쩍 뛰어넘어 미래로 가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 같은 건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빨리 늙어버려서 아무 감정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은 이제 와 생각하면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만 나온다.

-나의 비정규직 노동담 중에서



<나의 비정규직 노동담>은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고 말해주는 책이다. 이런저런 일이 있었고, 그 일을 묵묵하게, 그것도 잘 헤쳐왔다고 말해준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 사이에서의 갈등에서 나도 모르게 위로받는다. 하려는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업으로 인해 상처가 많다면 <나의 비정규직 노동담>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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